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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Aug 19. 2017

우리 인생을 스치는 기만의 순간들

영화 <더 테이블>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어느 유명한 소설가가 TV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카페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에 있는 곳이라고. 그렇다. 카페는 표면적으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공적인 공간이지만, 5천원 남짓한 돈을 내고 작은 공간을 빌리면 그 안에서만큼은 부분적으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카페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사람 구경'이다. 카페는 이 세상의 '축소판'과도 같다. 한 장소에서 그렇게 다양한 인간의 군상들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는 '카페'말고는 거의 전무하다. 같은 테이블임에도 누가 앉느냐에 따라 그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공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누군가의 은밀한 모습과 이야기들.


 영화 <더 테이블>은 하루 동안 카페의, 저 창가 고즈넉한 테이블을 찾은 4쌍, 8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은 정말 카페에 와있는 듯 마음이 편해지게 한다. 이야기도 매우 담담하다. 그리 특별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현실감이 살아있다. 마치 카페에서 자기 일을 하는 척 하며 몰래 옆 자리의 이야기를 엿듣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다.


 이 영화가 들려주는 네 가지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만'이다. 서로 다른 네 이야기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때로는 자기 자신을 기만한다. 하지만 '기만'이라는 단어가 내뿜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에 이를 안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이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당신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필수불가결하게 존재하는 '기만'의 모습을.

AM 11:00

가끔 기만은, 믿는 자에게 스스로 찾아온다.


 오전 열한 시, 이 카페를 찾은 첫 손님은 유진(정유미)과 창석(정준원)이다. 둘은 예전에 사귀던 사이였지만, 헤어진 후 유진은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고, 창석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목적은 매우 다르다. 그들이 주문한 에스프레소와 맥주의 차이 만큼이나.

 

 대중들에게 비춰지는 이미지가 중요한, 진실보다 소문이 더 무성한 연예계에 있는 유진은, 평범했던 시절의 추억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창석과의 만남이 반갑다. 창석과 함께 있을 땐 남들에게 비춰지는 내가 아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석에게 유진과의 추억은 '전리품'일 뿐이다. 그저 평범한 자신이 이런 인기 여배우와 사귀었다는 '영광의 역사'를 누군가에게 증명하고 싶을 뿐. 그것이 창석이 옛 애인을 다시 만난 이유이다.  


나 많이 변했어.

 

 창석은 배우가 된 유진에게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피부도 좋아지고, 숫기가 없던 예전에 비해 말도 많아진 것이 예전과 많이 다른 것 같다고. 하지만 변한 건 유진이 아닌 창석이다. 창석이 대하고 있는 건 옛 애인 '유진'이 아닌, 여배우 '유진'이다. 서슴없이 입 밖에 꺼내기도 부끄러운 증권가 찌라시의 진위 여부를 묻고, 자신이 유명 여배우와 함께 있음을 증명하려고 그녀와 함께 셀카를 찍어 회사 단톡방에 올린다.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과거 얘기를 하며 잠시나마 진짜 '유진'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녀는 결국 그 앞에서 연예인일 수 밖에 없었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창석 앞에서 유진은 변하지 않았지만, 유진을 대하는 창석은 그때의 그 창석이 아니었다.


 유진은 창석에게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은 그저 이미지일 뿐이라고, 그런 루머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창석은 그런 유진에게, 사실인 것도 있는게 중요하다 말한다. 소문의 진위 여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진실이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소문들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으니까. 이미 창석에게 유진은 그저 '이야깃거리', '전리품'일 뿐이니까.

 

 우리는 연예인에 대해, 타인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소문만을 듣고 쉽게 그 사람을 예단해 버린다. 그리고 일부는 무자비한 악플을 남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과연 연예인이 대중을 기만하는 것일까, 대중이 연예인을 기만하는 것일까. 언론이, 대중이 스스로 루머를 만들고, 스스로 그 사실을 믿는다. 가끔 기만은, 속이는 이 없이 믿는 이에게 스스로 찾아오기도 한다.


PM 2:30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건, 기만이 아닌 진심이다.


 이 테이블을 찾은 두 번째 손님은 경진(정은채)과 민호(전성우). 두 사람은 5개월 전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을 나눈 뒤 5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둘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있으면서도 서로 그 마음을 감추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서로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거 보면 사진이라도 하나 보내줄 줄 알았어요.
경진 씨, 저 잘 모르시잖아요. 제가 뭐라고..

 

  '사랑'은 인간이 하는 일 중 가장 아이러니하다. 고도의 수싸움이 오가지만 논리적인 수학과 과학이 절대 설명할 수 없다. 그 기저에는 규칙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이 가장 먼저 내리는 가정은 상대방이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아끼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그렇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런 가정을 내려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감춰야한다. 눈물나게도 순수하고 이타적인 기만이다.

 

 5개월이나 연락이 없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분명 서운해진다. 여행 가서 좋은 걸 보면 사진이라도 보내줄 줄 알았다는 경진의 말, 저를 잘 모르시지 않느냐는 민호의 말에는 분명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서로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담겨있다. 자기만 그 오랜 시간을 속끓이고 있었던 것 같아 서로가 더 야속해진다. 하지만 그런 서운함조차 서로에게 내비치지 않는다. 서로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서운함만이 남게 된다면 사랑은 사라지고, 상처만이 진실이 된다. 그리고 별 볼일 없는 잡지사 막내 기자인 경진과, 여행에서 돌아온 후 새로 직장을 구해야 하는 민호의 처지는 그 진심을 더 깊숙히 감추도록 만든다.


 하지만 결국 사랑을 완성하는 건 기만이 아닌 진심이다. 아무리 정교한 밀당 스킬과 연애 기술이 세상에 존재해도, 아무리 사랑이 밥먹여 주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사랑하는 이를 얻기 위해 필요한 건 고백의 순간, 단 한 번의 진심이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계속 숨기던 경진과 민호. 결국 참다 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경진의 손을 민호가 덥석 잡는다. 그리고 경진에게 선물하려고 프라하에서 산 시계를 내민다. 민호가 먼저 한 번 진심을 내보이자 봇물 터진 듯 경진과 민호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과, 서운함을 터뜨린다.

 

 카페를 나선 두 사람은 민호의 집에서 함께 파스타를 먹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사랑을 나눌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5개월 전과는 다를 것이다. 기만이 담겨 있는 하룻 밤의 사랑은 아침 햇살 아래 한 사람만을 침대에 남겨두지만, 진심을 나눈 달콤한 사랑은 햇살 아래 서로를 더 꼭 껴안고 깊은 잠에 빠져들게 만드니까.


PM 5:00

바란다. 이 번이 당신이 사랑에게 행하는 마지막 기만이기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온 세상이 붉게 물드는 다섯시 무렵, 은희(한예리)와 숙자(김혜옥)는 두 개의 이야기가 지나간 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누가 봐도 모녀 지간으로 보일 이 두 사람은 철저히 돈으로 묶여 있는 사이다. 은희는 지금까지 사기 결혼을 통해 돈 많은 남자들에게서 돈을 뜯어내며 살아온 사람이다. 숙자 역시 사기 결혼 업계에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돈을 받고 은희의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아직까진..."

 

 숙자는 당연히 이번 건이 남자를 등쳐먹기 위한 사기 결혼 건인 줄 알았지만, 은희가 이번에 행할 사기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다. 처음으로 상대방을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다. 사장을 등쳐먹으려다 막내 사원과 눈이 맞았단다. '아직까진...' 이라는 말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자기 자신을 쉽게 믿지 못하는 은희를 보게 된다. 때마침 지금의 시간은 오후 다섯 시, 이른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불리는 시간이다. 석양이 저물어가는 황혼 속에 빛과 어둠의 차이가 모호해지고, 저 언덕 너머로 넘어오는 개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날 해치러 온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시간.

 은희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모호함을 느끼게 되었다. 결혼으로, 사랑으로 상대방에게 사기를 일삼던 은희에게, 사랑은 그저 '돈'일 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 자체도 없다 생각하고 살아 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 그녀는 저 멀리 다가오는 그 사랑이 개인지, 늑대인지 아직은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은희의 마음은 확실하다. 그 사람을, 그 사람의 가족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진짜 사랑 앞에서 은희는 오히려 더 순수해진다. 진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녀는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 남자에게 사랑을 기만하고 살아왔지만, 이번만큼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이를 기만해야 한다. 그렇기에 은희의 순수한 마음이 그 결혼에 온전히 담겨있다. 꼭 잘 해주셔야 한다고 계속해서 숙자에게 당부하는 은희의 모습에서 그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은희는 갑작스레 찾아온 이런 마음에 걱정을 느끼지만 분명히 저 언덕을 너머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꼭 자신이 사랑하는 개이기를 바라고 있다. 숙자 역시 그녀의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오래 전 죽은 자신의 딸을 떠올린다. 그리고 성심성의껏 그녀의 어머니 역할을 해주겠다고 말로, 눈으로 약속한다. 비록 가짜 엄마이지만 그녀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숙자의 눈빛. 은희와 숙자의 마음은 그들이 주문한 두 잔의 따뜻한 라떼처럼, 인생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따뜻해져 있다.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 개를 늑대로 만드는 것도, 늑대를 개로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다. 영화를 보며 나도 바라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은희가 하는 거짓말이, 그녀가 사랑에 대해 행하는 마지막 기만이기를. 그녀가 사랑하는 자신의 개를 껴안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PM 09:00

기만은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다.


 비가 한 차례 쏟아지고 난 저녁 아홉 시. 혜경(임수정)과 운철(연우진)이 이 곳을 찾은 시간이다. 혜경은 한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 순간 운철을 만난 혜경. 혜경은 운철에게 지금이라도 이 남자와 헤어지고 그에게 갈 수 있다며, 혹여나 결혼을 하더라도 나와 바람을 피우자고 운철에게 제안한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혜경은 어쩌다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인생은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 사람에게 바람을 피우자고 말해야 하는 것이 지금 혜경의 처지다. 혜경은 앞으로의 삶을 버텨나가려면 남편을 속여야 한다. 아니, 사실 그 마음이 '진심'인데 사람들 앞에서 표면적으로 그 마음은 '간통'이 되어버린다. 너무 복잡해져버린 그녀의 처지를 알 만 하다.


 운철은 분명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다. 혜경이 분명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하지만 식어버린 커피처럼 그의 마음은 식어버렸다. 운철도 분명 혜경에 대해 사랑의 감정이 남아있지만, 누군가를 기만하면서까지 그 사랑을 억지로 이어나가고 싶지는 않다. 마음이 남아있더라도, 그것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식어버린 마음일 뿐인 것이다.

 

 나이가 쌓여갈 수록 가장 크게 와닿는 교훈은 '내 인생인데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하루하루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데에는 '기만'의 공이 정말로 클 것이다. 우리는 남을 기만하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기만할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마음이 원하는 길과 다른 길을 걷더라도 버텨갈 수 있다. 어쩌면 기만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세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본능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오직 진실만 말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마 자살률이 두 배 이상은 올라가지 않을까.


아마 다시는 연락 할 일 없을거야.
잘 생각했네.


  혜경은 운철에게 함께 서로를, 세상을 기만하며 행복하게 살자고 제안했지만, 운철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연락할 일 없을거라는 혜경의 말도, 잘 생각했다는 운철의 말도 지금으로썬 마음에도 없는 말이다. 앞으로 혜경은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쉽게 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운철에 대한 혜경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마음 가는 길과 다른 고통스런 길을 걸어갈 혜경은,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를 잊었다고, 이제는 나와 결혼하기로 한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그것은 운철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일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걷는 꿈을 꾼다는 운철도 이제는 스스로 혜경을 잊었다 기만해야 한다. 혹시 모른다. 너무 오래되어 습관이 되어버린 기만이 결국 진심이 될지도.    



 네 가지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테이블에는 꽃이 담겨 있는 물컵이 올려져 있었다. 마지막 혜경과 운철의 이야기에서 운철은 물컵에 담겨져 있던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평소에도 종이 찢는 버릇이 있더니 꽃잎을 왜 다 찢었냐는 혜경의 말에 운철은 이렇게 답한다.


어차피 죽은 꽃이었어.

  

 관객들은 몰랐다. 그 꽃이 죽은 꽃이었음을. 아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테이블 위에 예쁘게 장식을 잘 했다고만 생각했다. 그 꽃은 죽었음에도 테이블 위의 물컵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죽었음에도 죽지 않은 듯 관객들을, 영화 속 인물들을 기만하고 있었다. 마치 네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기만들처럼. 혜경은 하나하나 떨어져버린 꽃잎들을 다시 물컵 안에 넣었다. 물에 둥둥 뜬 꽃잎들은 그 자체로도 또 아름다움을 뽐냈다. 죽어서 갈기갈기 찢겨져 놓고도 다시 그 꽃은 아름답게도 관객들을 기만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기만'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직설적 말로 표현하는 것을 우리는 무례하다고 말한다. 당장의 마음에 관계없이 우리는 언제나 친절하게, 우호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누군가의 거짓에 대해 무조건 그것을 드러내고 화를 낼 수도 없다. 모른 체하는 것이 더 좋을 때가 분명히 있다. 속마음과 다르게 말하는 것도 그렇다. 알고도 모른 체하는 일은 상당한 노력을 요한다. 자의식과 생각을 지닌 인간은 공존을 위해 고도의 수읽기를 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렇기에 티끌 없이 투명하고 진실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 <더 테이블>에는 투명한 물에 검게 녹아들어가는 커피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물에 앞이 보이지 않도록 심연의 어둠을 입혔다. 그리고는 피곤하고 졸린 내 몸을 멀쩡한 상태인 것처럼 기만한다.

 가끔은 우리는 진실을 모두 알 수 없음에, 무엇인가 어두워서 보이지 않기에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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