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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Jan 30. 2018

'전사'들이 만들어 낸 '용기'의 드라마

영화 <12 솔져스>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인은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부품'이다. 도스툼은 미군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탄과 총으로 무장한, 그저 거대한 제국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탈레반의 '전사'들은 다르다. 그들 위에는 아무도 없으며, 오직 신의 뜻에 따라 싸운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반긴다. 율법에 등장하는 성스러운 전쟁, '지하드'에서 명예롭게 죽고 나면 알라 신이 그들에게 상을 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고민도 없이 스스로 수류탄과 폭탄을 들고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용기'였다. 그것이 숱한 제국들의 침략과 탄압에도 버텨 온 그들의 '힘'이었다. 도스툼은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들만큼, 아니 그들보다 더 강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던 많은 제국들에게 그곳이 '무덤'이 되었던 이유는, 제국의 군대는 '용기'없이 싸우는 '부품'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이 있다. 미국이라고 하는 초강대국이 통제하는 질서 아래에서 유지되는 평화의 상태. 과거 로마 제국의 '팍스 로마나', 대영 제국의 '팍스 브리타니카'에 이어 등장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세계 질서의 패러다임이다. 절대적인 한 사람의 지배자 없이 모든 국민이 평등하고,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미국'이니만큼 제국이라는 칭호가 붙지 않았을 뿐, 그들은 이 시대의 패권을 쥔 하나의 '제국'이다.


 

 그들에게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끔찍한 테러는 그들이 통제하는 질서에 대한 거대한 도전장이었다.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던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은 테러범들이 납치한 민항기와 충돌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진주만 공습 이후 단 한 번도 본토가 공격당했던 적이 없는 미국. 미국인들과 뉴스를 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영화 <12 솔져스>는 9.11 테러 이후, 공격의 배후라고 여겨지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탈레반'을  공격하기 위해 파견된 미 육군 제 5 특전단 소속 595 분견대의 12명의 대원들에 관한 실화를 담은 영화다. 미 육군 특전단은 우리에게 '그린베레'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저 '미국은 위대한 나라다'를 부르짖는 영화일 거란 생각이 앞섰다. 마치 박근혜 대통령 시절 개봉했던 '인천 상륙 작전'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이후 점차 우경화되는 미국의 모습을 반영하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영화를 보고 난 내 대답은, '그렇다'다. GPS 신호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험준한 협곡과 산맥, 사막으로 둘러싸인 아프간 북부에서 5만 명이 넘는 탈레반 반군을 상대한 12명의 미 특수부대 대원들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전쟁 영화가 그렇듯, 미국인이 본다면 애국심을 한껏 고취시킬 수 있을만한 영화였다. 하지만 2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작전을 단 3주 만에 끝마친 그들의 성공적인 작전 수행 과정을 그린 이 영화에는, '미국 만세'라는 확실한 주제 속에서도 분명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들이 몇 군데 있었다.



 영화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제국들의 무덤'이라 부른다.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호령했던 제국들의 숱한 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도 그들을 침략한 수많은 '제국'들 중 하나다. 미치 넬슨(크리스 헴스워스)을 대장으로 한 595 분견대 12명의 대원들은 탈레반과 적대 관계를 가진 '북부 동맹'의 라쉬드 도스툼 장군의 신뢰를 얻어 그들과 함께 탈레반을 몰아내야 했다.  


 도스툼 장군을 만난 미치 넬슨 대위는 장군에게 선물을 주며 마음을 얻으려 한다.


"우리가 하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치와 대원들이 해야 하는 임무는 말 그대로 아프간의 하늘을 지배하는 '성층권의 요새', 미군의 B-52 폭격기에게 탈레반 본거지의 정확한 좌표를 전달해 정밀한 폭격을 유도하고, 도스툼 장군과 함께 탈레반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12명의 대원들이 아프간의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하늘을 지배하고 있는 그들의 '제국'의 힘이었다.



 하지만 도스툼 장군은 미군에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 아니, 미군을 믿지 않았다. 도스툼 장군에게 그들은 함께 싸우는 '전우'가 아닌 '손님'이었다. 그저 탈레반을 몰아내기 위해 꼭 도움을 받아야 하는 '손님'. 도스툼 장군이 자기 부하 500명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12명의 미군 중 한 명도 다쳐선 안된다고 말는 장면은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도스툼은 전략적인 정보를 미치 대위와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도스툼의 태도에 미치 대위는 자존심이 상했다. 세계 최강대국의 군대를 믿지 않는다니. 미치는 도스툼에게 화를 내며 우리를 믿어준다면 당신들은 역사상 최강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도스툼을 설득한다. 그런 미치에게 도스툼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상 최고의 무기는 '용기'요."


 도스툼이 그들을 믿지 않은 이유는, 그들에게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전략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며 화내는 미치의 분노는 생존을 향한 '공포'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런 나약한 마음으로는 정신력에서 이미 '탈레반'을 이길 수 없다는 게 도스툼의 생각이었다. 그것이 아마, 아프가니스탄이 '제국들의 무덤'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도스툼 장군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


"너희들은 군인일 뿐이지만, 우리는 전사다."

"당신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내 위에는 오직 신뿐이다."

 

 그렇다. 군인은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부품'이다. 도스툼은 미군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탄과 총으로 무장한, 그저 거대한 제국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탈레반의 '전사'들은 다르다. 그들 위에는 아무도 없으며, 오직 신의 뜻에 따라 싸운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반긴다. 율법에 등장하는 성스러운 전쟁, '지하드'에서 명예롭게 죽고 나면 알라 신이 그들에게 상을 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고민도 없이 스스로 수류탄과 폭탄을 들고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용기'였다. 그것이 숱한 제국들의 침략과 탄압에도 버텨 온 그들의 '힘'이었다. 도스툼은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들만큼, 아니 그들보다 더 강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던 많은 제국들에게 그곳이 '무덤'이 되었던 이유는, 제국의 군대는 '용기'없이 싸우는 '부품'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스툼과 그들의 군대가 그들의 '전우'에게 원하는 것은,

강력한 폭탄이나 거대한 군대가 아니라  죽음에 맞서는 '용기'였다.


 미치가 작전 지역으로 떠나기 전, 멀홀랜드 대령은 미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무엇보다 싸우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 도스툼의 생각과 달리 미치 넬슨 대위와 595 분견대 대원들에게는 싸워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고국에 두고 온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죄 없는 미국 시민들이 무자비한 테러로 희생되었다. 지금 탈레반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음번 테러의 희생자는 그들의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멀홀랜드 대령은 떠나는 미치 넬슨 대위에게 무너진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의 잔해를 건네준다. 그것이 그들이 가족을 뒤로한 채 아프간에 올 수 있었던, 그들이 싸우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했다.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전장은 '제국들의 무덤'이었다. 험준한 지형 곳곳에서 5만 명의 탈레반 군대에게 언제 공격받을지 알 수 없었다. 위험한 작전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대원들은 어느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제국'은 왜 아직도 탈레반을 몰아내고 있지 못하냐며 그들을 재촉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치와 595 분견대 대원들은 말을 타고 탈레반과 싸운다. 최고 수준의 기술로 무장한 미국의 군인들이 말을 타는 모습은 자칫 매우 언밸런스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말을 타고 싸우는 미치와 595 분견대 대원들의 모습은, 그들이 자랑하는 무기와 기술이 무용지물이 되는 이 '무덤'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깨달은 미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치와 대원들은 B-52의 융단폭격에 의존하지 않고 말을 타고 선봉에 서서 탈레반과 맞서 싸운다. 깨끗했던 그들의 군복은 점점 더러워지고, 몸은 피투성이가 된다. 탈레반은 다연장 로켓포를 비롯한 무기로 압박하지만, 미치와 대원들은 그에 굴하지 않는다. 가족들을 만나고 싶은 그들의 '두려움'은 어느새 '용기'로 탈바꿈한다. 용기를 무기로 사용하는 법을 깨닫게 된 것이다.


 '미군'들이 보여주는 용맹한 용기에 도스툼은 그들을 점점 '손님'이 아닌 '전우'로 생각하게 된다. 싸워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그들이 그에 걸맞은 용기를 보여주자, 그들은 어느새 함께 싸우는 동지가 된다.


이 곳에 영원한 동맹은 없소.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하지. 당신과 나도 분명 그럴 것이오.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도, 당신은 내게 '형제'일 거요.


 전투가 끝난 후 도스툼이 미치에게 건네는 이 말은, 동지가 된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영화 <12 솔져스>의 영어 원제인 <12 strong>처럼 그렇게 군인들은, 강인한 전사가 되었다.


 그렇다. 595 분견대의 대원들이 단 21일 만에 탈레반을 몰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탄과, 총이 아니었다. 미치와 12명의 대원들이 보여준 '용기'가 그들을 5만의 탈레반 군대에 맞서게 했고, 그들을 죽지 않게 했으며, 미치가 바라던 대로 크리스마스 전에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탈레반은 '신'을 위해 싸웠지만, 도스툼 장군의 군대와 595 분견대 대원들은 '인간'을 위해 싸웠다. 탈레반은 '신'이 내린 율법을 지키기 위해 죄 없는 민간인들을 죽여가며 싸웠지만 도스툼과 595 분견대 대원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전우를 지키기 위해 서로에게 빵과 물, 용기를 건네며 싸웠다. 미군이 역사에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으며, 탈레반이 그들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는 사실은, '인간'을 잃어버린 신보다 '인간' 자체가 더 강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처절하게 싸우는 미군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게임처럼 '쉽게 싸우고 쉽게 이기는' 미국의 전쟁과 달랐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이 승리와 생존을 향한 그들의 '용기'를 더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물론 이 영화는 미국인들을 위한 '국뽕 영화'다. 하지만 난 영화를 보며 왜 미국이 강한 나라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의 군대 모습은 매우 자유롭다. 매우 수직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의 군대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매우 생소하다. 하지만 전장에서 그들은 끈끈한 '전우'가 된다. 가족을 사랑하고,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써 내걸며, 그 가치를 사랑하는 그들은 멀홀랜드 대령의 말처럼 그들이 왜 싸우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앞서 아프간을 침략했던 제국들과 달리, 그들은 제국을 위해서, 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해 싸웠다. 그것이 미국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고, 그것이 '팍스 아메리카나'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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