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집 근처에는 작은 동네 서점이 있다. 어제는 원하던 책이 없었다. 사장님과 따님은 만화 쪽? 선반까지 샅샅이 뒤져보셨다. 하지만 결국 '손님이 찾는 그 책 3권 발주 넣어'라는 말이 들려왔다. 어휴. 나는 그냥 나갈 수가 없었다. 꼭 하나를 사야겠는데 그날따라 또 고를만한 책도 없었다.
그때 수상소설집이 눈에 들어왔다. 2023 현대 문학상. 집에 2011년 것이 있으니 12년 만이다. 반가웠다. 그래, 너구나. 우리 집으로 가자.
출근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수습기자 시절. 선배들에게 차례차례 불려 가서 교육 아닌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사진부장 선배한테는 기사 사진 찍는 법을, 편집부장 선배한테는 편집의 기초를 배우는 뭐 그런 식이 었다.
그땐 메모를 해가며 열성과 정성을 보였는데 기억나는 건 딱 하나밖에 없다. 편집국장이 했던 한 마디.
"매일 밤 자기 전에 수상작 단편을 하나 씩 읽고 자라."
그 말에 샀던 것이 2011년 현대문학상이었다. 2012년 이상문학상도 집에 있는 걸 보니, 내 열정은 딱 거기까지였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실 국장 입장에서는 새파란 병아리들에게 열정은 바라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저 책을 가까이 두고 읽는 습관을 기대했던 것 같다.
아이 둘을 키우는 나는, 그때의 국장과 거의 비슷한 마음인 것 같다. 책을 많이 읽고 지식도 쑥쑥 쌓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저 책을 오랜 친구처럼 곁에 두고 늘 꺼내보는 사람으로 큰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안다. 그건 아이가 아니라 나의 욕구인 것을. 그래서 2023 현대문학상을 또다시 기어이 골라왔다. 큰 아이는 이미 자기 전에 책을 3권 이상 읽고 잔다. 나는 자기 전에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할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