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주 Mar 29. 2023

정신과 의사인 남편과 산다는 것

 나는 남편 덕후였다. 지금은 아니다. 연애 7년, 결혼 7년에 남자아이 둘을 낳았다. '남편 덕후팸' 탈퇴사유는 충분하고도 남아돈다. 덕후팸 탈퇴 이후 나는 우리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굵은 감정에 대해 생각해 봤다. 사랑과 설렘은 진즉에 지나갔고, 의리와 연민이 찾아왔다. 따지자면 의리에 비중이 높은. 그래서 나는 '남편 디스팸'에 속하기도 힘든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다. 이 의리가 너무나도 강력하기에.


 처음 남편에 대한 소재를 생각했을 때도 단순히 '의사 남편'이라는 제목을 팔아먹어 조회수를 높일 요량이었다. 그런데 여러모로 깊이 생각하다 보니 남편에 대한 글을 한 번 쓰고 싶어졌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남편을 표현해보고 싶다고도 느꼈다. 남편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나와는 거리가 먼,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 글은 정신과 의사인 남편이 아니라 그냥 '내 남편'과 사는 소소한 이야기다. (제목에 낚이셨다면 죄송합니..)


 제목에 낚이셨을 분을 위해 의학적인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나. 일단 나는 남편 말을 듣지 않는다. 남편은 첫 아이가 태어난 그 해 겨울, 전문의 자격증을 땄다. 예과 2년, 본과 4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을 하고서 얻은 국가 공인 종이 쪼가리다. 나는 남편이 본과 1학년 때부터 그의 인생에 침입해 개입을 하기 시작했으니 꽤나 오랜 시간 남편의 공부를 봐온 셈이다.


 그럼에도 남편은 전직 기자 출신 일개 30대 후반 아줌마의 '맘카페 검색 결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산다. 나는 늘 남편에게 물어보고 난 뒤, 말한다. "그런데 여보가 소아과는 아니잖아.", "여보 친구 의사한테 전화해서 물어봐". 남편의 대답을 들으면서도 나는 계속 초록창에 병에 대한 증상을 뒤진다.


 남편은 정신과 의사답게 의연하게 대처한다.


"근데 그거 아나? 나는 니가 그렇게 말할 거란 것도 다 알고 있었다."





 

 연애시절, 우리의 전화기는 늘 뜨거웠다. 한 번 통화를 시작하면 한 시간은 기본이었다. 당시 나는 남편이 신기했다.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까? 이런 감정을 어떻게 세세하게 잘 캐치하는 거지.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 나는 늘 깨달음을 얻었다. 구름처럼 뭉한 마음이었는데, 남편은 그걸 꾹 짜내 비로 만들어서 가지런한 강물로 만들어주었다. 강물이 바다로 천천히 흘러갈 수 있도록. 남편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야 나는 남편의 그 능력이 '통찰력'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정신과 의사인 이전부터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통찰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예리한 관찰로 사물을 꿰뚫어 봄'. 남편은 예리하기도 했지만 관찰력도 뛰어난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핵심 요소가 가장 중요한데, 그건 바로 '기억력'이다. 남편은 기억력 또한 출중했다.


 그래서 남편이 하는 말은 좀 아팠다. 어떤 날은 화가 나고 어떤 날은 펑펑 울기도 했다. 그걸 남편은 '맞는 말'이라고 표현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정곡을 찌르는 송곳 같은 말'이었다. 뜬 구름을 잡아 강물로 만들어주는 섬세함은 연애 때 다 써버린 모양이다. 애 둘 키우는 이 시점에서 남은 건, 비유와 은유가 없는 직유뿐이었다.


 명의도 제 가족은 치료를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남편하고 싸운 날엔 속으로 늘 생각했다. "어떻게 지가 정신과 의사면서,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남편이 그동안 숱하게 들어준 나의 애환은 깡그리 잊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괘씸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었다. 남편은 나의 비뚤어진 눈깔을 보고서도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비뚤어진 눈깔에서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 고스란히 바다로 흘려보냈다. 그 덕분이었을까. 나는 헐렁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게 되었다. 어떤 가치든 간에 나만의 기준이 세워지고 있었다.






 남편이 처음부터 이렇게 빡빡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마 남편이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상상이상으로 자기 기준에서 나사가 빠진, 무계획적-비효율적 인간이란 것을 알아차린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웃기게도 나는 나의 이런 점을 썩, 아니 아주 좋아한다. 남편도 알 거다. 내가 바뀌지 않을 거란 걸. 나도 안다. 남편도 바뀌지 않을 거란 걸.


 다행인 것은,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거다. 남편도 나도 처음에는 이 바뀌지 않는 것을 두고 많이 다퉜다. 출발점은 '넌 왜 그래?'고 도착점은 '이래서 우린 안 맞아'로 끝났다. 7년을 똑같이 싸우다 어느 순간 깊은 바다로 풍덩 빠진 날이 있었다. 그날 남편이 던진 말은 명료했다. "나는 우리가 싸우더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같이 더 잘 살기 위해 싸우고 싶어. 그러니까 네가 힘들더라도 나에 대한 불만이나 고쳐야 할 점을 분명하게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나만 혼자 깊은 바다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옆을 돌아보니 남편도 함께였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헐렁한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예리한 너도 헐렁한 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구나. 헐렁한 여자와 예리한 남자는 바뀌지 않지만, 우린 같은 바다에 빠져 함께 손을 잡고 물 위로 올라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구나.


 나는 이 남자의 손을 절대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공기통 하나에 두 목숨을 걸고 있기에. 한쪽이 호흡기를 독차지하면, 다른 한쪽은 죽어버리고야 마는. 의리로 무장한 버디. 바뀌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알지만, 상대를 위해서 노력하는 버디에게 호흡기를 내어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즈음에서 MBTI가 빠질 수 없다. 나는 ENFP, 남편은 INTJ다. 무려 MBTI 최고의 궁합이다. 남편과 나는 우스갯소리로 '연애 때 한정'이라고 했다. 결혼을 하고 실전에 돌입하면, 미쳐버리는 궁합이라는 평이다. 미쳐버리는 궁합치고는 그래도 잘 살고 있는 편이다. 남편을 소재로 글을 쓴다 하니 남편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내 도마 위에서 갈기갈기 찢어져 다닥다닥 다져지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살을 내어준 남편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며.


 마지막은 사실, 이렇게 늘 끝난다.


 사랑해, 여보.

작가의 이전글 서먹한 우리 관계, 책과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