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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Oct 22. 2021

처음부터 다시

 요즘도 가끔 기자 시절의 꿈을 꾼다. 대부분 마감에 쫓겨 허둥지둥하는 꿈이다. 노트북 인터넷이 갑자기 말썽 나 송고가 안되거나 전원이 꺼져버리는 식이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하루 종일 온몸이 뻐근하다. 이제 기자라는 이름을 벗어버릴 때도 됐는데. 몸으로 익힌 것들은 쉽게 없어지지 않나 보다. 그리고 아직도 심지어 "김기자님 전화번호 맞나요?"라고 전화도 온다. (며칠 전에도 받았다. 내가 명함을 몇 장이나 뿌린 걸까. 2천 장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나는 사회부에서만 6년을 지냈다. 그 말은 매일 아침 모닝커피는 경찰서에서 마셨고, 주말에도 불이 나면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말이다. 지긋지긋한 사건 사고와의 싸움이었다. 6년 차에 교육청을 출입하고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경찰서를 떼어주지 않았다. 인력이 없으니 부서원 중 한 명은 무조건 경찰을 달고 가야 했다. 웃긴 건,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그렇게 진절머리 났던 경찰서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는 거다. 후배 기자들과 한 번씩 통화를 하면 꼭 이런 말을 한다. "선배랑 같이 마와리 돌던 때가 제일 재밌었는데."


 사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좋았던 기억은 많이 없다. 대부분 ㅈㄹ같고 압박감에 잠도 잘 이루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생활'면에서는 그랬지만, '신조'면에서는 좀 다르다. 나는 기자를 했던 그 시간에 몸으로 익힌 몇몇 가지 것들이 아직도 내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들.

 기자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저 욕구가 있었다. 그 욕구는 아직도 유효하다. 막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약자의 감정에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약자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 근본과 뿌리는 어디에 놓여있는지 늘 생각하고 살고 있다.


-관념적인 것보다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배적인 가치가 더 낫다.

 몸으로 체감할 수 없는 딱딱한 지식보다는 차라리 대중적인 것을 더 존중하고 있다. 이건 웃기게도 사람을 만날 때 더 많이 적용된다. 그러니까 있는 척, 아는 척, 뭔가 되는 척하는 사람보다 힘 좀 빼고 사는 사람들을 더 존경하게 된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고. 주변을 돌아보니 '지적'보다는 '경험적'인 친구들이 훨씬 많다. 


-신념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용기.

 이건 기자생활을 하면서 배웠던 가장 큰 덕목이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내가 취재했고 팩트를 모았고 글을 쓰다가도 이와 상충되는 정 반대의 팩트, 즉 불편한 진실과 마주쳤을 때. 과연 '내 고정관념과 신념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수 있는가'다. 여기에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용기를 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살면서도 이 용기는 내 삶에서 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 내가 맞다고 믿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에 저 '재검토'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다. 나의 신념체계와 부합했던 것들도 다시 되돌아보는 정신적 무장. 나의 30대 후반이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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