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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Oct 26. 2021

불안과 친해지기-3, 끝

 아이는 결국 어린이집을 옮겼다. 적응이 어려워서도, 내가 변덕을 부려서도 아니다. 이사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이사를 재고할 정도로 어린이집을 옮기는 것이 두려웠다. 20개월부터 40개월까지 적응하는데 20개월이나 걸린 어린이집이었는데, 새로 옮기고 나면 다시 또 그 어려운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하는 것이 내내 가슴을 짓눌렀다.


 여전히 남편은 나와 의견이 달랐다. 남편은 "우리 아이는 잘할 수 있을 거야. 할 건 해야지. 우리 아이 성격에는 오히려 환경을 옮기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라고 설득했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의 첫 면담에서 나는 원장 선생님께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동안 어린이집의 적응이 너무 힘들었다며 도와달라는 심정이 전부였던 것 같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은 이전 어린이집과 환경이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이전에는 규모가 큰 국공립 어린이집이었다면, 옮긴 곳은 소규모 민간어린이집이고 아담했다. 통학시간도 차이가 났다. 이전에는 내 차로 20분이나 데리고 가야 했지만, 여기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나서서 30초면 닿았다.


 아이는 내 생각과는 달리 훨씬 빨리 적응했다. '집과 가까운 곳'이라는 환경이 주는 안정감이 큰 듯했다. 이전 어린이집에서는 20개월 동안 매일 나가는 바깥 산책을 늘 거부했는데, 여기서는 단번에 산책을 나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나 원하던 산책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될 수 있다니. 감동이 밀려오면서도 허무했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이는 '순하다' '잘 먹는다' '주사를 맞아도 안 운다' 소리를 듣고 자랐다. 자연스레 순한 기질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순한 기질이었다고 내가 '믿고 싶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수월한 아이, Easy Baby에 대한 욕심과 환상이 내 눈을 가린 것이다.  


 예민하고 겁이 많으며 감각에 민감하고 불안감이 높은 편이라는 아이의 기질을 인정하게 되면서 나의 불안도 많이 줄어들었다. 아이가 무언가를 이루어서 줄어든 것이 아니다. 내가 그저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수월한 아이, 까다로운 아이 모두 다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나는 왜 우리 아이를 '수월한 아이'로만 생각하고 싶었을까. 내 불안의 시작은 아마 여기에서부터 출발했던 것 같다. 

 


 

 이제부터는 아이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 임을 안다. 그리고 남편은 말했다. "앞으로 수많은 '처음'이 우리 앞에 나타날 건데, 그때마다 우리 아이의 이런 성향 때문에 많이 울고 힘들 수도 있어. 마음 단단히 먹자." 


 실제로 아이는 여전히 '처음'을 어려워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처음 오줌 싸기, 처음 버스 타기, 처음 소풍 가기, 처음 새로운 친구들 만나기, 처음 보는 장소에 가기... 그런 아이의 세상은 얼마나 어렵고 두려웠을까. 남들보다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이라도 더 연습할 수 있게 엄마가 도와줄게. 예전의 나였다면 아이와 함께, 아니 아이보다 더 불안해하고 흔들렸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구보다도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안정감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안정감>

1.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 느낌. 

2.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고요한 느낌.





 올해 초부터 시작된 이런저런 고민과 불안으로 시의 지원을 받는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오프라인 육아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은 전문상담위원과 일대일로 한 시간씩 3회 정도 진행됐다.(위원의 판단에 따라 상담은 5회로 연장될 수도 있다) 양육태도 검사와 성격검사 등도 무료로 받을 수 있고, 허심탄회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도움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육아상담뿐 아니라 어린이집 문제, 부부 문제, 개인적인 정신건강 등을 두루 다뤄준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문제로 속앓이만 하고 있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또 병원의 문턱이 높은 것 같다면) 이런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곳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 내 안의 불안을 '직시'하고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크게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아, 불안이 또 왔구나.

 아, 내가 또 지금 불안한 상태로 빠졌구나.

 지금 내 상태가 '불안하다'는 걸 알아차리기만 해도 훨씬 좋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이다. 굳이 불안을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불안을 가지고 살아요. 불안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님. 오늘부터 불안하고 좀 친해져보세요. 왔으면 인사도 좀 해주시고. 하하."


 위원님 말씀대로, 네. 좀 친해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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