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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an 06. 2023

54일 동안 뭐 먹나요?

고민이 끊이지 않을 긴 시간이구나!

내일의 재택근무를 사절합니다.

왕복 3시간 이상 걸리더라도 본사로 출근을 적극 권장하는 바입니다.

정확한 시간, 12시에  1식 4찬과 따땃한 국까지 제공되지 않습니까?

절대 아침에 우리 모녀를 깨우지 말아 주시고

배고프다고 냉장고 문을 열지 말아주세요.

귀가 밝아 냉장고 닫히는 문소리에 잠이 깰지도 모르거든요.




어젯밤 세 식구 방학 기념으로 10시 넘어서 치킨파티를 열었다.

지방 당일 출장으로 어제 11시간 운전한 집콕남이 피곤하겠지만 내일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컨디션 봐서 회사에 나간다는 뻔한 거짓말이 진짜이길 바라며 잠이 들었나 보다.



고운 숨을 내쉬며 살짝 꿈틀대면서 계속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평온했다.

거실에서는 업무 지시하며 통화하는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만 빼면 완벽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한참 전에 눈을 떴지만 오늘만은 깨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를 내버려두고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다시 살짝 깊은 잠에 빠져들었나 보다.



오전 9시 반.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OO주식 5% 올랐습니다'

! 오늘이 금요일이구나. 왜 토요일 같지?

 방학이구나, 깜빡했네.

.

이제 3월 2일에 학교에 가는구나.


그나저나 이 인간은 왜 또 회사를 안 간 거야? 재택근무 사절한다고 했잖아! 입으로만 일하나?!

밥 하기 귀찮은데!


게으른 엄마를 컨셉으로 잡은 그녀는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어느 순간 눈을 떠 엄마를 부르는 아이를 옆에 두고 자는 척을 해본다.

엄마가 인기척이 없으니 품 안으로 파고든다.

사랑스러운 아이와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며 다소 늦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방학 첫날부터 아이와 함께 가볍게 시리얼 요거트와 과일 등으로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방학 동안에 읽을 책을 몽땅 빌려오기로 약속했다.

몇 달 동안 가지 못했던 국숫집에 가서 잔치국수와 우동을 먹고 빌린 책을 읽기 위해 잠시 메가커피에 들리기로 했던 우리의 계획은 집콕남 덕분에 물거품이 되었다.


최대한 시간 끌기에 성공한 엄마는 10시가 넘어서 겨우 주방으로 기어 나왔다.

앞베란다 김치냉장고에서 시어터진 묵은지와 알타리김치를 덜어왔다.

압력솥에 김치와 함께 갖은양념과 두부와 돼지 목살을 꺼내어 골고루 섞고 불을 켰다.

밥을 누르고 허락된 25분의 시간 동안 어제부터 쌓인 설거지를 척척 해낸다. 식기 세척기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엄마의 손은 완벽하다. 기름기 하나 없이 뽀드득 윤기가 나게 완료된 그릇은 마치 새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 전자레인지에 넣을 계란찜을 준비하고 좀 전에 삶아 논 콩나물을 압력솥을 열어 위에 얹히고 고춧가루를 팍팍 뿌린다.

주방에 오자마자 냉동실에서 꺼낸 해동시킨 떡갈비를 약한 불에 굽기 시작한다.

어느새 설거지는 마무리되었고 아이를 위해 덜어놓은 콩나물을 무쳤다.

아참!

어제 섬초 사다가 삶아놨지? 내 정신 좀 봐.

냉장고 안쪽에서 삶아 논 섬초를 꺼내 물기를 제거하고 양념을 하고 깨소금으로 마무리한다.


목살 묵은지 김치찜, 콩나물과 섬초 무침, 계란찜과 떡갈비

대충 급하게 차려진 아침 아니 브런치 밥상이다.

"이 정도면 한 끼 잘 때운 거다"

"잘 때우다니, 김치찜 맛있게 잘 되었는데? 훌륭하고만"

"웬일로 칭찬이야?"

"맛있으니까 그렇지, 근데 저녁은 뭐 먹냐?"


우이씨, 아직 식사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저녁 메뉴를 얘기하는 집콕남이 오늘따라 긴 겨울방학에 합류한 느낌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겨울이라 공사 현장이 비수기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집에서 컴퓨터 작업 및 서류 작업만 하면 될 것 같다라는 말을 전했다.

뭐라꼬?!



방학이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꽃피는 춘삼월이 빨리 오길 무척이나 바란다.

자고 일어나면 3월 2일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와 함께 동굴 속에서 54일을 지내야 하는데 집콕남까지 중간중간 합류하는 긴 겨울방학은

매 순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오늘 뭐 먹지? 점심은 뭐 먹지? 저녁은 뭐 먹냐? 내일은 뭐 먹지?

계속 대충 때울 수도 없고 진짜 미치겠네!

앗, 어느새 저녁 시간이다.


우리 오늘 저녁 진짜 뭐 먹지?



사진 출처:

친구와 함께 갔던 식당에서 정성이 깃든 한 끼를 먹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돈을 주고 밥을 사 먹는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 앞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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