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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Apr 14. 2023

검지 손가락 살짝 베인 것뿐인데

다치면 너만 손해야

오른쪽 검지 손가락 살짝 스쳐서 베인 것뿐인데.....
며칠째 불편하다


지난 화요일 알바하는 곳에서 서류 작업을 하다가 얇고 날카로운 서류철에 검지 손가락 첫마디 부분을 순식간에 베였다.

악!

철철 흐르는 피가 휴지를 온통 붉게 만들었다.

피가 생각보다 빨리 안 멈춰서 당황했다.  한참을 휴지로 감싸고 이쯤이면 멈췄겠지? 하면서 밴드를 부착했다.

손가락은 통증은 계속되었다. 무언가 짓누르는 싸함이 꽤나 불쾌했다. 나름 사연 있고 애증 하는 검지손가락이라 왼손으로 잘 부여잡고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검지손가락 조금 베였을 뿐인데 불편함이 이리 클 줄이야.



오래된 아파트 공동현관 입구 도착했다. 카드키를 안 가지고 다닌 지 오래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통과할 수 있다.

(괜스레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에이 신발! 짜증 나! 대신 세 번째 손가락을 꼿꼿이 펴서 꾹꾹 그 어느 때보다 힘주어 번호키 7개를 입력했다.

그동안 몰랐는데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였다. 버튼을 7개나 눌러야 한다니 번호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공동현관 입구에서 바로 코 앞인 1층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다다랐다.

지문인식 시스템을 장착한 현관문이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정확한 검지 손가락 지문을 기다리고 있다.

지문인식만 완료하면 0.1초 만에 집안으로 쏙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서도 자연스레 짜증 섞인 신발이 터져 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숫자키를 누르기 위해 손바닥 전체로 숫자판을 켰고 6자리 번호를 누르기 위해 나름 큰 엄지 손가락의 도움을 받았다. 역시 엄지 손가락은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보다 많은 일을 해내는 기특하고 센스 있는 녀석이다.


힘겹게 집에 들어와서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자동으로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수전의 손잡이를 위로 올려 물부터 틀었다. 그 순간 아차 싶어 물이 닿으면 안 될 것 같아 살짝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어설프게 물로만 손을 씻었다. 어느새 그 사이로 물이 침투해 다시금 싸한 통증이 느껴지고 밴드가 벗겨질 준비를 하고 있다. 밴드를 벗기니 손가락의 베인 상처 틈이 벌어졌는지 또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휴지를 두른 채 집에 있는 밴드함을 뒤졌다. 다행히 예전에 사다 놓은 방수밴드 1개가 남아있었다.

최대한 밀착해서 붙인다고 노력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루 이상은 버텨 줄 거라고 기대했다.

검지손가락을 핑계 삼아 하루 정도 본인의 샤워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화요일은 아이가 치어리딩 운동을 다녀오는 날이다. 6시부터 7시 반까지 격한 운동으로 땀으로 범벅되어 귀가하는 걸 깜빡했다. 아직 혼자 머리 감기에 성공하지 못한 아이의 머리 감기와 샤워 마무리는 엄마가 해야 한다. 특히나 운동 다녀온 날의 머리는 더 꼼꼼하게 감겨줘야 한다. 난관에 봉착했다. 샴푸로 후루룩 거품을 냈으니 여기서 그냥 헹궈주고 나갈까? 아니면 열손가락으로 머리 지압 마사지를 하면서 땀으로 범벅된 머리카락 사이사이 말끔히 씻겨줘야 하는지 고뇌에 휩싸였다.

(얼마 전에도 늦은 저녁에 일찍 쉬고 싶고 읽던 책 내용이 궁금해서 빨리 드러눕고 싶은 마음에 대충 씻기고 말렸더니 다음 날 머리 안쪽에 기름기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살찔까 봐 엄마가 일부러 빡센 운동까지 시키는 그 와중에 너무나도 잘 다니고 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깟 검지 손가락 조금 베였다고 너의 머리를 대충 씻길 수 없지. 대충은 이제 내 인생에는 사라져야 할 단어다. 오늘부터 다시 힘차게 확실하게 감겨 줄거라 마음은 먹었으나 맘처럼 쉽지 않았다.

풍성한 거품을 냈지만 아려오는 검지 손가락은 공중 부양을 한 채 나머지 아홉 손가락이 열일에 나섰지만 대체되지 않았다. 엉성하게 자리를 잡지 못해 손가락들이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머리를 제대로 감겨주지 못했다. 방수 밴드를 믿고 뒤늦게 검지손가락을 막판에 합류시켰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약국에서 산 검증된 방수밴드가 아니라 다 있는 가게의 저렴한 제품이라 방수밴드의 밀착력이 더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부착을 잘 못한 나머지 손가락을 탓했다.

이 밤에 어디 나가서 방수밴드를 다시 구할 수도 없고 물 닿을 일 없으니 일반 밴드를 부착했다. 하루를 돌아보며 잠을 청했다. 괜한 짜증이 밀려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검지손가락 하나 베인 것뿐인데 왜 이리 하루가 불편한 거야?



오늘이 4일째,

고작 검지 손가락에 살짝 베인 것뿐인데 아파트 현관문에 봉착한 그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종일 계속 불편한 삶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주부 생활의 키포인트인 식사 준비할 때 칼질과 전처리 작업부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밥을 먹을 때 젓가락질 할 때에도 거슬렸다. 간단한 설거지를 해야 할 때에도 굳이 고무장갑을 끼고 벗었다.

바닥 청소를 위해서 청소포를 밀대에 끼울 때조차도 검지손가락이 의식되었다. 잔뜩 쌓아놓은 빨래더미 앞에서도 손가락이 제 기능이 발휘되지 않음이 의식되었다. 머리를 감을 때에도 아이를 머리 감겨 줄 때보다 꼼꼼하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에도 페이지를 넘길 때 중지와 약지에 힘을 실었다.

무엇보다 어쩔 수 없이(?)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핸드폰을 사용할 때가 제일 문제였다. 패턴과 화면전환에서부터 조작과 결제의 그 모든 순간 엄지와 검지의 화합으로 완성되는 그 모든 순간이 불편한 삶이 되었다. 덕분에 며칠 동안 폰을 내려놓고 많이 걸었다.

노트북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불편하다.

마우스를 클릭할 때에도 미세한 통증이 느껴진다.

며칠 지나 통증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중이지만 베인 곳 사이가 완전 아물지 않았다. 불그스름한 베임 자국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이가 살짝 어딘가에 긁히거나 찍혀서 피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한 적도 수백 번이다. 밖에서 넘어지거나 다치는 경우도 많다. 그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조심해야지, 다치면 너만 손해야"

애아빠는 말한다. 다쳐도 보고 넘어져봐야 본인이 그게 얼마나 손해 보는 일이지 몸소 알게 된다고 한다. 뭐든지 본인이 직접 몸으로 경험해봐야 한다고 애한테 다치게 내버려두라고(?) 충언한다.

(그래서 그대는 맨날 다치고 넘어지고 얻어터지면서 자라온 걸 자랑이라고 소문내고 다니는거니?)


며칠 동안 베인 검지 손가락을 가지고 살아보니 알겠다. 애아빠가 말한 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고작 검지손가락 하나 살짝 베인 것뿐인데 불편하게 며칠을 지내왔다. 애한테만 맨날 조심하라고 말했지 은연중에 덤벙대고 실수로 다친 적이 꽤 있었다. 사람의 몸에서 어디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 어떤 곳도 흠집이 나서는 안된다. 심한 흉터로 남게 되면 평생 가고 살짝 찢기거나 베어도 며칠을 사서 고생한다. 며칠 동안 짧은 고생을 하면서 손해를 봤다. 애증의 검지손가락이 많은 일들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애한테만 조심하라고 타박하지 말고 이번 일을 경험으로 모든 행동에 있어서 조심하고 다치지 않게 또 조심해야겠다.






덧붙임) 설마 그 와중에 검지 손가락 지문이 다시 예전과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 앞으로 다시는 다칠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지만 혹시 모를 대비책으로 엄지와 중지 손가락도 지문 등록을 해놔야겠다. 아니다. 중지로 매번 욕하며 집에 들어올 수는 없다. 적응이 쉽지 않겠지만 엄지 손가락 지문만 입력해 놔야겠다. 엄치를 치켜들고 넘버원을 외치며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와야겠다.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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