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아이와 함께 동굴 속에서 지내다 보니 계획은 계획 일뿐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계획은 돌아섰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기에 우리는 지금 다시 계획을 세운다.
두 번째 기회가 되어 우리 곁에 신학기로 다가온 춘삼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들만의 봄방학이 시작되었으니 풍악을 울려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엄마들의 봄방학은 여름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이다. 이번에는 아이 학교학사일정으로는 7월 25일까지다. 길다면 긴 평일 낮 자유시간이 펼쳐진다.
하지만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다. 조건부 방학이기 때문이다.
조건 1. 평일에는 늦잠이 허락되지 않는다(단, 알림톡 이후 이른 낮잠은 13시 30분 전까지는 오케이다)
어찌 되었든 아이를 시간 안에 학교로 보내야만 엄마에게는 꿀 같은 자유 시간이 허락된다.
허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은 단순하게 보내는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전 날 저녁 숙제 봐주기, 준비물 챙기기, 당일 지각하지 않게 제시간에 깨우기, 아침먹이기 등이 포함되어야만한다. 마지막으로 학교 안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알림톡까지 울려야 비로소 안심이 되고 오롯이 혼자만의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조건 2. 평일 낮 시간 하루라도 오후 3시까지 아주 긴자유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꼭 방과 후 수업에 당첨되어야 한다.그래야 집 앞에서 버스 타고 서울까지 다녀올 수 있다. 올해도 인기 있는 수업은 아이들이 다소 몰릴 것 같다. 눈치 작전은 필수다. 흥부를 구해준 제비가 우리에게도 제발 행운을 가져다주길 바란다.
방과 후 수업만 확정되면 평일 하루는 오전 8시 40분부터 15시까지 통으로 자유시간이다!!!!
6시간 동안 혼자 보낼 수 있으려나? 덜컥 겁이 난다. 이리 긴 시간 동안 혼자 있어본 적이 언제인가?
아직 확정도 아닌 데 설레발이다ㅎㅎ
6교시가 있는 화요일에는개인적으로 작년과 같은 곳에서 알바를 지속하게 되었다. 덕분에 3학년 처음 6교시의 영광은 아이의 간식비 정도의 적은 돈을 버는 일로 맞교환했다. 주 1회 제대로 화장하고 옷까지 신경 쓰며 챙겨 입을 기회가 올해도 이어진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로 인해 제비가 우리에게 박씨를 물고 오지 않으면 어쩐담?)
나머지 요일에는 5교시라 13시 30분이 하교 시간이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직까지 예체능을 중요시하는 엄마라 오후 스케줄이 겹치지 않도록 주 3회 피아노, 주 2회 운동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한 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이 또 허락된다. 나이스! 밥하고 청소는 그 시간으로 최대한 미뤄야지!
조건 3. 평일 아침에는 아이를 위해 간단히 요깃거리만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여전히 돌밥모드는 이어진다. 지난번처럼 밥 하려고 대학 나왔냐고 남편한테 철없이 투정 부리며 주말 동안 주부포기선언이라도 하면 양심이 없는 거다. 평일 점심 한 끼 해방 되었으면 그 이상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대신 엄마와 아빠는 강제 다이어트로 우선 16:8법칙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지난 두번의 동굴 생활을 거쳐오면서 돌밥 생활에는 이골이 났다. 결혼 10년 훨씬 넘은 베테랑 주부라 이제 돌밥모드로 인한 스트레스는 내려놓기로 했다. 그때그때 필 받는 메뉴로 휘리릭(?) 차려내고 반찬 돌려 막기로 칸수만 채우면 그럭저럭 임수 완수다.
이런 악(?) 조건에서도 엄마들의 봄방학은 손꼽아 기다리는 대상이다.
매일 새로운 일상으로의 초대를 받는다. 일상 속 여행이 시작된다.
많은 시간 혼자서 때로는 벗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기대된다.
집 앞 산책로가 펼쳐지는 공원,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3일과 8일에 서는 5일장, 각종 공짜 강의와 책을 만날 수 있는 특성화 도서관들, 호수공원과 누리길로 연결된 자전거 도로, 울창한 나무들과 함께 도시 안에서 반듯하게 이어지는숲길을 걷는 모든 일상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아직은 쓸만한 두 다리로 움직이기만 하면 어디든 다 갈 수 있는 곳으로 매일 틈틈이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혹시 모를 울 동기님들과의 모임이 있을까 봐 서울 나들이도 계획해 본다)
특히나 이번부터는 글쓰기와 독서모임,운동인증까지 추가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지 아니한가?
나날의 일상이 여행이고 축복이다.
아이들도 아이들의 방학 기간에 본인의 루틴을 지켜가면서 할 일을 하고 열심히 놀았으니
엄마들도 엄마들의 방학 기간에는 기본 루틴을 지키며 시간관리,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 나태해지면 한순간에 무너지기 십상이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걸 잊지 말아야 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감사함을 찾는 긴 여정.
자칫하면 기억나지 않은 날들로 묻히기 쉬운 오늘이 새로운 여행의 기억으로 의미 있게 남겨지길 바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