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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un 23. 2023

영유아검진 99P였던 아이의 10살 생일을 앞두고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그 한마디

출생 시
<키 51cm, 몸무게 3.59Kg>


태어날 때부터 보통이라 칭하고 싶었지만 살짝 크게 태어난 아이다. 4.2kg으로 태어난 아빠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가 태어났다. 싱크로율 100%로 아빠의 복사판이었다. 분명 내 뱃속에서 3일 동안 죽을 뻔한 진통을 겪고 낳은 우리 딸이 맞는데 아빠와 붕어빵이다. 얼굴만 닮은 게 아니었다. 평소 먹는 속도도 빠르고 워낙 잘 먹는 남편의 모습이 아이한테 태어난 날부터 똑같이 나타났다. 아이는 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 4kg를 돌파했다.

내 작은 가슴에 담긴 모유로는 아이의 배고픔을 달래긴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혼합 수유로 이중고를 겪었다. 몸은 몸대로 힘들었다. 모유는 모유대로 밤잠 재우기용, 간식대용, 엄마와의 애착용으로 6개월 이상 끌고 갔고 주식은 분유였다. 먹는 양이 많으니 분유값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개월수마다 젖병도 바꿔줘야 했고 젖병 설거지와 소독까지 일은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래도 아이는 진짜 아이답게 잘 먹고 잘 자랐다. 고마울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위로였고 기쁨이었고 감사한 이유였다.  


육아의 불변의 법칙 중 아기 때는 잘 먹고 잠만 잘 자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 아이는 아주 잘 먹었다. 너무 잘 먹어서 오히려 문제가 아닌 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신은 공평하다. 내 모습이 없을 것 같았던 아이가 날 닮은 점이 있었다. 잠귀가 밝은 예민한 엄마를 닮았다. 애 재울 때가 가장 힘들었다. 어렵게 재우기에 성공해도 자다 깨는 건 다반사였다. 모유를 먹이며 다시 겨우 재우면 자다 깨서 울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출장이 잦아서 남편 없는 날 자다가 2시간 넘게 우는 애 앞에서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와! 진짜 견디기 힘들었다. 눈물이 펑펑 나왔다. 도대체 우는 이유가 뭔데!! 말을 좀 하면 안 되겠니?? 제발......)

밤마다 미칠 노릇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이 고생을 누가 사서 한단 말이냐? 진짜 안 낳겠...... 지?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까지 몸소 몸으로 깨닫는 정신 수양의 기간은 꽤나 길었다.


언젠가는 아이가 자다가 도통 울음을 멈추지 않아서 출장 간 남편을 대신해 그 밤 중에 시부모님께 SOS를 쳤다. 아래층에 사는 시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밤에 1시간 동안 차를 타고 자유로를 달렸던 기억까지 생생하다.(한밤중에 자유로라뇨? 한번 달려보세요! 가슴이 뻥 뚫립니다. 어쩌면 그대로 쭉 북한까지 직진하고 싶어지는 충동이 옵니다) 평소 시댁 식구 마주치는 걸 최대한 피하고 싶은 사람이 오죽했을까?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 엄마의 모습이 여실하게 드러난 시기였다. (지금도 초보엄마이긴 하지만)


그래도 잘 먹는 거 하나로는 1등을 먹은 것 같아서 그 힘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워낙 안 먹는 아이들이 많다 하니 잘 먹는 거 하나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난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애 잘 먹는 게 나을 까요? 아님 시댁 위층에 사는 게 나을까요? 왜 대답을 못하시나요? 참고로 친정은 차로 4시간 걸립니다)



안 나오는 모유를 쥐어짜고 분유와 고군분투하며 꽉 찬 5개월을 보내며 대망의 첫 영유아 검진을 받았다. 몸이 무거워 100일은커녕 1차 영유아 검진 시기까지 뒤집기도 못한 채 반듯하게 누워만 있던 아이였다. (뒤집기를 아마 6개월 지나서 했더랬죠? 편했네요. 편했어!)


1차 영유아 검진 결과  
<키 69.4cm, 97P / 몸무게 9.2Kg, 99P>


설마설마했지만 5개월 동안 폭풍 성장한 아이는 몸무게에서 상위 1%가 나왔다. 판정부분에서 키와 몸무게에 정밀검사 필요에 체크되었다. 정밀 검사요?

정상범위의 참고치는 5~95P였다.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 정상에서 벗어난다. 참고치를 벗어난 결과에 놀란 가슴 부여잡고 시작된 걱정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1차 영유아 검진을 시작으로 그 뒤로 이어진 검진에서도 한동안 키와 몸무게는 95P 아래로 쉽게 내려오지 못했다.


<생후 6개월 차에 찍었던 아이 성장앨범 사진-저 통통한 볼살을 한번만이라도 다시 만져볼 수만 있다면/ 지금은 전혀 딴 사람이다>

키와 몸무게의 P가 슬슬 격차를 보이기 시작한 건 5살 이후다. 키는 여전히 97P를 웃돌았고 몸무게는 80P 전후로 내려갔다. 점점 키가 자라고 몸이 커지며 사람다운 모습으로 변해갔고 활동량은 늘어났다. 그 시기에 다녔던 대형민간 어린이집에서도 다양한 대근육활동이 많았다. 엄마는 아이가 엄마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의 활동량 늘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평일에는 집 근처 공원을 거의 밤마다 나갔고 주말이면 애를 데리고 종종 등산을 갔었다. (여전히 아빠는 옆으로 큰 덩치 덕분에 듬직했고 엄마의 배는 부풀어있었다)


아이 7살 때 코로나의 여파로 집콕했던 시절 위기가 닥쳤지만 우리에겐 줄넘기가 있었다. 틈틈이 사람 없는 밤에 단지 놀이터에서 세 식구가 줄넘기를 하러 나갔다. 엄마는 지속적으로 아이의 성장 속도와 몸무게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빠는 군대 가기 전 줄넘기로 15kg를 뺀 적이 있다면서 라떼의 이야기만 했다. 순전히 입으로만 애한테 줄넘기를 가르쳐주었다. 시범을 좀 보이면 안 되겠니? (근데 지금은 왜 이모양인 거니? 지금 0.1톤에 육박하는 이 몸무게는 언제부터였던 거지?)


그 뒤로 쭉 운동은 계속되었다. 아이가 초등에 입학하면서부터는 1년 넘게 태권도와 줄넘기를 병행하며 운동을 했고 2학년 생일 전에는 새로운 분야의 운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갑자기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도 있는 동작과 미친 운동량을 보이는 치어리딩이었다. 그래, 얼른 등록하자! 고고고! 친구들 따라 치어리딩 사관학교에 입문했다. 아니 일방적으로 밀어 넣었다.

정규 운동 수업이 끝나고 내려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끔 안쓰러울 때가 있다. 미친 듯이 흐르는 땀방울을 보면 얼마나 빡세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안 그래도 날씬하고 연약한 아이들의 엄마들은 치어리딩을 하고나서부터 살이 빠졌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운동하고 나온 아이가 힘들어서 입맛이 없다고 먹지도 않고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연출했단다. 같이 시작한 친구들 중 일부 마른 아이들은 계속 살이 빠진다는 이유로 6개월도 안되어서 그만두는 사태가 벌어졌다. 1년이 지났는데도 지금까지 치어리딩을 다니고 있는 아이를 보니 다행히도 아이는 치어리딩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엄마도 아직까지 대만족이다. 그 뒤로 아이의 몸무게가 크게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먹는 친구들 어디 있나요? 운동 전후로 엄청 더 먹어댑니다. 식비가 두배로입니다)


7살 때 마지막 영유아검진을 키 123cm(97P), 몸무게 22.4kg(76P)로 마무리했다.

초등입학한 이후로는 대형병원 성장클리닉 다녔다. 6개월에 한 번씩 성장 추이를 지켜봤다. 혹시라도 성조숙증이라면 10살 생일 이전에 진단을 받아야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담당 교수님께서 8살 때는 성장 속도가 1년 이상 빠르다고 하셨다. 그 뒤로도 아이는 꾸준히 운동을 했고 적절한 식습관을 병행했다. 사실은 그동안 아이와 먹는 것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했고 힘든 시기도 있었다.

(엄마 몰래 아빠랑 편 먹고 아이스크림과 칼국수를 자주 먹은 사실을 알고 있다)

 얼마 전 10살 생일을 앞두고 성장 클리닉에 갔다. 아이의 전반적인 신체 성장 수치와 가슴 쪽을 확인하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더 이상 안 오셔도 됩니다.
이 정도면 정상입니다."


 아무리 빨라도 아이의 생리는 1년 반 후로 예상됩니다.
그때는 5학년 초반으로 12살 정도죠. 정상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쁜 OO아! 잘가렴!


10년 만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정상입니다"라는 말을 드디어 듣게 되었다.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다. 그동안 아이를 향한 내 모습은 항상 걱정투성이었는데 이제야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다. 애는 이런 엄마의 속마음도 모른 채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엄마, 이제 우리 여기 안 와도 되는 거야? 근데 우리 뭐 먹으러 갈 거야? 빨리 뭐 먹고 싶어.
맛있는 것 좀 사주면 안 돼?
"응, 그래! 그동안 고생했으니 오늘은 실컷 먹자! 뭐 먹고 싶니?"


그날 진료는 오후 3시 반에 끝났고 우리는 바로 식당으로 달려갔다. 간식으로 쌀국수와 볶음밥을 먹었고 저녁에는 닭강정을 먹었다. 닭강정에 맥주를 곁들이며 기분 좋게 남편한테 말했다.

"우리 딸, 정상이래! 병원에서 이제 오지 말라고 하셨어, 휴.
근데 이쁜 딸!!! 너 오늘따라 너무 먹는다!!
그만 좀 먹으면 안 되겠니?


오늘도 아이는 학교에 다녀와서 현관문을 열고 실내화주머니를 내던진다. 책가방을 짊어진 채로 간식부터 확인한다. 어느 정도 안심은 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진심으로 엄마처럼 잠자고 있는 저주받은 하체가 중학교 때쯤 깨어나지 않길 바라며 너의 10살 생일파티를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성대하게 치를 준비를 시작해 본다.


<9살 막바지에 엄마는 절대 입지 못하는 딱 붙는 청바지를 입은 딸 아이의 뒷태 :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덧붙임) 저의 딸뿐만 아니라 남편보다 9살 어린 아가씨의 딸 둘(현 8살, 6살)도 영유아검진 99P이었다네요.

지금 잘 크고 있답니다. 정상이라네요. 분명 남편의 피가 더 많이 흐르는 딸이 분명합니다. 또래보다 큰 아이들을 키우고 계신 부모님들 너무 걱정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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