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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ul 17. 2023

오랜만에 나에게 십만 원 넘는 돈을 썼다

일 년에 두어 번은 괜찮겠죠?

작년 11월 <슬기로운 초등생활> 브런치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당시 계획에도 없는 지출로 15만 원을 결제했었다. 그나마 합격하면 5만 원이라는 돈을 환급해 준다는 문구에 이끌려 덜컥 신청했었다. 작가 합격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노력했던 그때가 벌써 반년 전이라니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만 흘러간다.


 15만 원이라는 돈을 오직 나 자신을 위해 결제한 건 그때 당시나 지금이나 나 스스로에게 큰 일이었다.

애 학원비는 매달 아무렇지 않게 꼬박꼬박 지출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가정주부인 엄마로서 본인한테 10만 원 이상의 큰돈을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고심해서 결정했는 데 결과적으로는 그 일은 천운이었다)

가끔씩 식구들과 여행을 가고 외식도 하지만 그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소비다. 그 뒤로도 나 자신한테 10만 원 이상이라는 큰돈을 한 번에 결제한 적은 적어도 몇 달 동안 없었다. 마땅히 쓸 일도 없었다고 말하면 솔직히 거짓말이다.(사고 싶은 건 지천에 널렸고 고가의 화장품도 한 개에 몇 십만 원 훌쩍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돈이라는 걸 아예 안 쓰지는 않는다. 혼자 있을 때 소소하게 자주 쓰는 편이다. 매일 스벅 커피를 마시지는 못하지만 저가형 L사이즈 커피는 종종 마신다. 가끔씩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사 먹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티 나지 않게 쓴 돈이 쌓이면 몇 만 원 이상은 하겠지만 이 정도도 못하면 어찌 사냐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본다.



그 와중에 지난달  반년 만에 드디어 12만 원이나 되는 금액을 한 번에 결제했다. 역시나 지난번처럼 계획에 없던 지출이었다. 그때는 자기 계발비였지만 이번에는 일종의 나 자신을 위한 꾸밈비라고나 할까?


6월 중순 즈음 누구의 생일도 아닌 날, 시부모님의 호출이 왔었다. 이유인즉슨 시아버님께서 티브이를 보시다가 갑자기 산 낙지가 드시고 싶다 하셔서 다 같이 먹자고 전화가 왔었다. 지인을 통해 공수해 온 낙지를 아가씨네 식구들까지 9명이 모여서 먹게 되었다. 그날따라 유독 시어머니의 얼굴이 전보다 더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셨다. 물론 펌도 하셔서 헤어 스타일도 한몫했지만 정확한 이유를 꼬집자면 바로 달라진 눈썹 때문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가지런하고 자연스러운 눈썹 덕분에 한결 인상이 좋아 보이셨다.  알고 보니 아가씨 절친이 시댁 근처에서 샵을 하고 있어서 거기서 눈썹 문신을 하셨다고 했다. 아가씨도 당연히 그 친구에게 예전에 눈썹 문신을 했었다고 했다. 나만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가씨가 눈썹 문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자연스러웠다. 속으로 '요즘 진짜 기술 좋아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용이 평소에 남들이 말한 가격보다 저렴하다는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저도 해보고 싶어요'라는 쓸데없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아가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우리 새언니도 한다는 데 이따가 할 수 있어?"


 아이고, 이게 웬일이야? 갑자기 눈썹 문신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당황했었다. 다행히 급하게 전화를 해서 그런지 그날은 예약 손님이 있다고 했다. 그 뒤에 취소의 기회는 있었지만 아가씨의 절친이라서 소심한 성격에 괜히 아가씨에게 누가 될까 봐 취소의 '취'자도 꺼내지 못했다. 안절부절못하다가 며칠 후 결국 나도 눈썹 문신을 하게 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10만 원 넘는 돈을 결제하는 순간이었다.

(시술할 때 아플까 봐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살짝 졸았다는 후문이...ㅋ)


 사실 내 눈썹은 연한 편은 아니었지만  맘에 들지도 않았다. 미간을 사이에 둔 시작점에서 반절 정도는 진한 편이었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위아래로 연하게 퍼지는 모습을 연출하는 반반눈썹이었다.(반은 진하고 반은 연한 눈썹이라는 뜻으로 지금 막 내가 만든 신조어다) 그렇다고 해서 화장할 때마다 매번 나머지 반절에 해당하는 부분을 추가로 펜슬을 이용해서 굳이 눈썹을 그리거나 다듬은 적도 거의 없다. 귀찮기도 했고 시간 절약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몇십 년 동안 그린 적이 없으니 그릴 줄도 몰랐고 그려야겠다는 생각조차도 안 하고 살았었다. 외출을 위해서 화장을 할 때에 눈 화장은 꼭 했으나 눈과 함께 눈썹까지 진하게 그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눈썹은 미안하게도 몇십 년 동안 나의 관심밖이었다.


그런 관심 밖이었던 눈썹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 건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다닌 시절이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니 눈과 눈썹밖에 보이지 않던 시절, 외출 시 눈화장을 할 때마다 눈썹이 거슬렸다. 자꾸만 흐리멍덩한 눈썹이 사랑의 손길을 갈구하는 묘한 움직임이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살면서 처음으로 눈썹을 그리는 펜슬을 구입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쓰지 못했다. 다듬지 않은 눈썹에다가 덩그러니 펜슬만 그리는 것도 영 어색했고 적응이 안 되었다. 혼자서 다듬어 봤지만 엉성하고 자꾸만 짝짝이 눈썹이 되었다. 누군가가 눈썹 라인이라도 깔끔하고 단정하게 잡아줬으면 했다.  

가끔씩 남편에게 나도 눈썹 문신을 해볼까? 말을 꺼내보긴 했으나 나 역시 지금까지 이 모습으로 살았으니 그냥 이렇게 살지 뭐 하면서 한참 잊고 지냈다.  


그러던 와중 작년 여름 외국으로 떠난 친구가 출국 전 눈썹 문신을 했다. 그래, 너도 했는데 언젠가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면서 마음먹었던 일을 미루고 미루다 뒤늦게 코로나 종식 후 이런 식으로 쉽게(?) 진행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 뒤로도 계속 눈썹 문신을 하고는 싶어도 마땅히 정보도 없었고 직접 해본 사람의 경험담을 듣지 못해서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항상 얘기하던 아가씨의 절친이 그 업에 종사하는 줄 여태껏 몰랐다)


눈썹 문신을 하고 난 후 뜨거웠던 여름날 삼일 내내 집 밖에 나갈 때 벙거지 모자를 쓰고 다녔다. 처음 며칠 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한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 본인도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달라진 그 모습이 익숙해질 때까지 외출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애데렐라는 아이 픽업 시간에 어쩔 수 없이 나가야만 했다. 아이 운동 픽업시간에 모인 여러 명의 엄마들 중에 혹시라도 누군가가 알아볼까 봐 걱정이 됐다. 다행히 벙거지 모자가 제 역할을 똑 부러지게 해 주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해서 속으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그 뒤로도 내가 말하기 전까지 나의 달라진 눈썹을 알아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역시나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만큼 자연스럽게 티 안 나게 잘 된 거라 위로했다. 눈썹 라인이 잡히니 관리하기도 쉽고 그에 맞게 다듬기만 하니까 너무 편하다. 그전에 내 눈썹이 어떤 모습이었나?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비할바는 아니지만 20대 후반 라섹 수술 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처럼 눈썹 하나로 (나 혼자만의 착각 속에서) 전체적인 얼굴 인상도 달라져 보이니 전과 다른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어찌 되었든 내 기준에서 큰돈을 쓰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만족하고 있다. 오랜만에 쓴 그 큰돈은 이번에도 틀림없이 잘 쓴 돈인 게 분명하다.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소비의 주체가 아이한테 넘어간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 스스로에게 인색해질 때가 많아졌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이다. 엄마도 사고 싶은 것이 있고 먹고 싶은 것도 있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도전하고 싶고 배워보고 싶은 것도 많다. 그리고 엄마이기 전에 예뻐지고 싶은 욕심도 아직 남아 있는 여자다. 그러하기에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는 엄마도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정도 돈은 써도 되지 않을까? 그게 아직 찾지 못한 꿈을 위해서든 아니면 美를 위해서든, 學을 위해서든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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