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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ul 10. 2023

아이가 학교에서 울고 왔다

엄마가 미안하구나

 지난달 딸과 둘이서 3박 4일 제주도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패키지여행의 필수조건은 쇼핑센터 방문이다. 우리 코스에도 기념품 샵과 농수산물 센터 방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셋째 날 첫 코스로 기념품 샵을 방문했었다. 딱히 살 물건은 없었지만 30분이라는 시간을 배정받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엄마는 튼튼하고도 가벼운 제주산 말가죽 백팩의 유혹을 뿌리치느라 혼났고 아이는 다양한 제주도 굿즈 상품 앞에서 계속 눈이 돌아갔다. 이미 이틀 동안 다양한 관광지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구매한 상태였지만 아이 두 눈은 주어진 공간 속에서 또다시 매우 반짝였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참으로 더디게 흘러간다고 생각했을 때쯤 아이는 어느샌가 시식코너 앞에 서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아이는 초콜릿과 크런치, 젤리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버렸다. 아이는 이것저것 종류대로 다양하게 시식을 했다. 먹는 것마다 전부 다 너무 맛있다면서 엄마의 입에도 자꾸 이것저것 쑤셔 넣었다. 아무 이유 없이 엄마 입에 넣어 준 게 아니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하면서 손사래를 치며 은근슬쩍 판매원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 워낙 퍼주기를 좋아하는 엄마의 성격을 닮은 딸은 갑자기 반 친구들 전부(본인포함 23명)에게 초콜릿을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갑을 열어 아껴두었던 용돈까지 탈탈 털었지만 이틀 동안 돈을 꽤 써서 그런지 모자라보였다. 아이는 하는 수 없이 엄마에게 보태달라고 사정을 했다. 아이의 마음이 순수하고 그저 예뻐 보였다. 좋은 기분으로 여행까지 와서 자식이 저렇게 애절하게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그런 매정한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여행은 여행이니까~ 여행은 돈 쓰러 온 거니까 선뜻 알겠다고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친김에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까지 전부 다 돌리자고 통 크게 말했다.(엄마가 너무 오버한 거였어) 아이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다.



마지막 날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제주도에서 사 온 간식거리 포장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 일이 산더미였다. 아이는 옆에서 언제 포장하냐고 같은 질문을 수백 번 반복했다. (이럴 땐 며칠 동안 풀지 못했던 연산문제집이라도 스스로 꺼내서 풀면 얼마나 좋을까?) 고작 간식거리 포장 때문에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애한테 짜증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저리 좀 가 있어'라는 말 대신 재빨리 아이에게 수학 문제집을 들이밀었다. 짐 정리를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그제야 잠깐 의자에 앉았다. 억지로 문제를 푸는 둥 마는 둥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아이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달려왔다.


"엄마, 지금 포장하는 거야?"

"알겠어, 알겠으니까 얼른 준비해 "

아이의 재촉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초콜릿이라도 포장하기 위해서 잠시나마 앉아있는 게 휴식이라면 휴식일까? 휴식을 취하며 드디어 박스를 개봉했다. 다양한 간식거리를 보니 여행의 행복한 순간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빡빡한 일정이라 여행의 여파는 쉬이 가시지 않았지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와 개수 세는 데 열을 올리며 정성스레 포장에 집중했다.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과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나눠 줄 간식 꾸러미를 포장하며 우리만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미니봉투에 초콜릿과 크런치, 젤리 한 개씩 골고루 넣었다. 맛이 겹치지 않게 주의 깊게 봐가면서 하나하나씩 무슨 맛인지 확인하고 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고 신이 나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5일 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던 아이는 지금 당장이라도 학교에 가서 빨리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했다. (그날은 체험학습을 낸 상태였다)

설마 나눔의 미학을 그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깨달은 건 아니지?


아이는 책가방 옆에 배가 빵빵하게 불러온 꽉 찬 쇼핑백을 고이 모셔두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설렘 속에 내일을 기다렸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고.



다음 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온 아이는 의기양양해서 등교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돌아왔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엄마! 친구들이 맛없다고 했어, 게다가 J는 젤리가 맛이 이상하다고 토 나올 것 같다고 했고 K는 애들한테 왜 녹차맛을 주냐고 막 뭐라 했어. 그래놓고 또 크런치는 잘 먹더라고! 너무 속상해서 계속 눈물이 나왔어"

"어머! 안 그래도 녹차맛이 섞여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그걸 빼놓고 넣을 걸 그랬다. 엄마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데 미안하네. 엄마도 녹차맛 들어간 게 조금 맘에 걸리긴 했거든, 그렇다고 그렇게 심하게 얘기할 줄 엄마도 예상 못했어. 근데 J는 너무 했다, 젤리가 왜 뭐가 어째서 토가 나온다는 거야?!"

"나도 몰라! 차라리 나 없는데서 말하면 되잖아. 준 사람 앞에다 대고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뒤에 가서 나 없을 때 얘기하면 내가 이 정도로 속상하지 않았을 텐데 계속 내 앞에서 얘기하는 게 더 기분 나쁘더라고"

"많이 울었어? "

"응, 나중에는 선생님이 친구들한테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는 받아줬어, 그래도 H는 너무 착해. H가 맛있다고 했어. 근데 엄마! 이따가 치어리딩 들한테 저거 안 줄래! 누가 또 맛없다고 그러면 어떡해? 또 속상해지기 싫단 말이야!"

"에이, 괜찮아. 엄마가 가서 단장님께 말씀드릴게. 너무 걱정 마. 준비한 거 그래도 주는 게 낫지? 안 그래?"

".................."


(친구들이 너에게 그런 말까지 할 줄 예상 못한 엄마가 미안해,

주고도 욕먹는다는 게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다시 한번 미안하다, 딸아!)


속상한 아이를 달래주긴 했으나 아이의 속마음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해 보였다. 본인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한 아이들에게 꽤나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엄마로서 공감해 주고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면서 꽉 껴안아 주는 일밖에 할 수가 없어서 미안했다.

한편으로는 애초에 이런 일을 생기지 않도록 우리끼리만 먹고 깔끔하게 끝낼 것을 괜히 일만 벌였나 싶었다. (괜히 여행 왔다고) 내가 기분 좋아 내 돈 쓰고 후회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아서 아이만큼이나 속이 상했다.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고 후회하면서 왜 또 난 그런 실수로 인하여 이번에는 아이까지 속상하게 만들었을까?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서 준 선물이나 물건은 받는 이에게 전달하면 이제 그건 내 소유가 아니다. 그건 당연한 얘기다. 받은 사람이 주인이다. 그게 맘에 안 들어서 그걸 버리든 말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줘버리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다만, 그 선물이 맘에 안 든다고 그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진심까지 매몰차게 걷어차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 작은 포장 봉투 하나하나에 우리는 진심을 담았으니까.





덧붙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글을 읽고 언짢으신 분이 계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아이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의 허락하에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 준 것이니 부디 너그러이 이해 부탁 드립니다.

또한 저희 모녀의 감정만 내세운 부족한 글이라서 많은 분들의 댓글을 보고 저도 많이 깨닫는 계기가 되어서 이 글을 그냥 놔두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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