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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ul 06. 2023

점보도시락이 입고되었습니다.

조만간 다시 날 잡으려고요.   

너를 처음 알게 된 건 4주 전쯤이야. 옆단지 애친구 엄마의 인스타에서 널 봤지. 주말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식탁에 떡 하니 올라와 있었데. 그 집 남편이 깜짝 이벤트(?)로 사 왔나 봐. 지금 물 끓이는 중이라고 피드를 올렸더라고.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없었어ㅠㅠ 근데 이상한 점이 있더라고. 사진상으로는 비교샷이 아니어서 그런지 몰랐거든? 자세히 보니 점보사이즈라며 8인분이라는 거야. 말도 안 돼! 8인분이라니.. 내 눈을 의심했지. 설마... 분명 그 집 식구도 우리 집과 똑같은 세명이거든. 그 엄마가 뭔가 착각했나 싶어서 바로 검색에 들어갔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더라고. 정확히 8인분이 맞았어. 세상에나 즉석 라면이 8인분짜리라니? 믿기지가 않았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진짜로 코웃음을 쳤지. 면발이 8개나 들어있으니 그야말로 점보사이즈가 맞더라고. 게다가 분말수프는 3개, 건더기 수프 2 봉지가 들어있데. 나도 당장 먹어보고 싶었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 집 식구들에게는 일급비밀인데 나 역시 네 친구들을 무지하게 좋아해. 근데 이 사실을 우리 집 식구들이 알면 곤란해. 특히 우리 집 남자는 365일 매일 라면을 먹어도 매끼마다 라면을 처음 먹어 보는 사람처럼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남자야. 딸도 역시 마찬가지지. 내가 전에 말했지? 영유아 검진 99P출신으로 아빠를 담아서 먹성이 워낙 좋다고. 둘 다 면귀신이야. 특히나 라면은 말해봤자 입만 아파. 그래서 내가 맨날 네 친구들을 안 보이는 곳으로 숨겨두곤 해. 눈에 뜨이는 즉시 바로 그 자리에서 없어져버리거든. 나까지 라면귀신이라는 게 들통나면 우리 집은 1년 내내 라면 축제가 열릴 거야.

나는 어쩔 수 없이 낮에 혼자 있을 때 몰래 먹을 때가 많아.


그래도 널 한 번은 만나보는 게 라면 마니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되었어.

집 근처 마트에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남편이 일반 마트에서는 널 만날 수 없다는 거야. GS편의점에서만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 널리고 널린 게 편의점인데 무슨 걱정이겠어? 아파트 후문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당장 달려갔지.


"저기요... 호혹시 점보도시락 있나요?"

"아, 그거? 그거 요즘 구하기 힘든데... 발주 자체가 안 돼서 당분간 입고가 안 돼요, 죄송합니다"


난 크게 실망을 했어.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한때 구하기 힘들었던 포켓몬 빵이 생각나더라고. 혹시나 해서 당근앱을 열었어. 널 파는 사람이 있더라고. 와! 근데 포켓몬 빵처럼 가격이 뻥튀기가 되어있는 거야. 실제로 너의 몸값은 8,500원인데 3만 원까지 올랐더라고. 3만 원까지 주고 사기는 좀 거시기했지.

그래서 포기했냐고? 아니지.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잖아. 혹시나 해서 집 근처 다른 GS편의점에 전화를 돌렸어. 사전에 발주한 게 있는지, 입고 시간은 언제인지, 예약할 수 있는지 물어봤지.

다행히 한 군데에서 얼마 전 발주한 곳이 있더라고. 입고되면 연락 주신다고 해서 번호를 알려주고 예약을 했어. 그리고 며칠이 지났나 봐.


금요일 밤늦은 시간 문자가 왔어. 밤늦은 시간이라 광고나 대리운전 스팸문자인 줄 알고 지우려는 찰나, 어머! 웬일이야! 네가 입고 되었다는 문자였어.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나가도 두렵지 않은 40대 아줌마는 그 즉시 뛰쳐나갔어. 헉헉! 달밤에 무슨 체조? 아니 달리기? 물론 예약은 했지만 그 사이 누군가가 잽싸게 가져갈까 봐 초조해지는 이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를 거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여행 가기 전에 널 만난 건 운명이라 생각했어.  친구네와 강원도 여행을 계획했었거든. 그때 널 가져가면 타이밍 좋게 6명이서 남김없이 싹싹 비우고 네 국물에 흰쌀밥까지 샤워시키려고 했었어. 네 뚜껑은 뒤집으면 식판 모양을 갖추고 있다 해서 엄마가 보내주신 각종 김치도 올리고 혹시 삼겹살이라도 구웠더라면 남은 고기까지 식판에 올려두려 했지. 8인분이라 도저히 우리 세 식구는 엄두가 안 났어. 초등 여아 2명이 포함이긴 하지만 6명이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거야.

밖에서 누군가와 함께 먹는 라면이라면 더없이 행복한 라면이 될 것 같았는데 친구네 아이가 주말에 갑자기 열이 올랐어. 결국 독감판정을 받았더라고.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여행은 취소되었지. 당연히 너도 우리 집 싱크대 안으로 되돌아왔지.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를 너와 함께 만들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뿐이야. 다시 기회는 오겠지? 조만간 친구네랑 같이 번개로 당일캠핑을 잡아볼게.

 일단 널 꼭 밖에서 먹는다는 약속은 꼭 지킬게. 그래야 너의 만족도는 더 크게 오를 거야.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먹어야 서로 눈치 보며 더 빨리 맛있게 호로록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그 안에서 기다려줄래? 절대 널 당근에 비싼 가격으로 내놓거나 우리 세 식구가 꾸역꾸역 억지로 먹는 일도 만들지 않을 테니까.




사진 출처 : 직접 캡처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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