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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ul 13. 2023

계란찜 덕분에 생긴 29분의 여유

다른 반찬은 만들  필요가 없어요.

"오늘 저녁 뭐 먹을래? 뭐 먹고 싶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까?"


"엄마 저 계란찜이요!"



"계란찜이야? 지겹지 않아?"

"아니요, 계란찜에 밥 비벼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다른 거 안 해줘도 된다니까요!"


오늘도 아이는 엄마의 출중한(?) 요리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오예!!


아이는 화, 목요일 오후 6시부터 7시 반까지 운동(치어리딩)을 간다. 시간이 그러다 보니 저녁밥시간이 참으로 애매하다. 저녁을 먹고 가기에는 살짝 이른 시간이지만 막상 일찍 먹고 운동을 갔다 오면 다시 허기가 져서 또 밥이나 간식을 찾는다. 그렇다고 끝나고 와서 땀을 비 오듯 흘린 아이를 바로 또 식탁에 앉히기엔 찝찝하다. 샤워를 시키고  긴 머리까지 말리면 훌쩍 8시가 넘어버린다. 그때 저녁을 먹으면 충분히 소화시키기도 전에 피곤함이 몰려와 금방 잠이 드는 날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화, 목요일에는 저녁을 5시 전후로 먹는 걸 선택했고 다녀와서는 과일종류의 간단한 간식만 먹기로 약속했다.


작년부터 다닌 운동이 그 시간으로 변경되고 나서 가기 전 먹는 저녁이 너무 과하면 속이 더부룩해서 운동하는 데 지장이 생길까 봐 보통 일품요리나 간단식을 차려주기 시작했다.(고로 반찬은 없다는 말이다. 엄마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한 때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던 간장계란밥을 시작으로 새우볶음밥이나 김치볶음밥, 콩나물국밥, 카레나 짜장 등 한 그릇 음식 등으로 돌려 막기를 했다.


일주일이 금방 간다. 오늘이 수요일인지 목요일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깜빡하고 아이 밥 할 시간을 때때로 놓친 적이 있다. 얼른 밥을 하던지 다른 일품요리나 다른 반찬을 만들어야 할 그런 날은 때마침 꼭 냉동실에 얼려둔 남은 찬밥도 보이지 않는다.(참고로 우리 집에는 햇반이 없다)

번뜩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계산한다. 쿠쿠밥솥에서 밥이 완성되는 시간은 정확히 29분이다.

시간은 점점 5시를 향해가고 아이는 밥을 먹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긴박한 순간에는 오히려 메뉴를 한식으로 결정한다. 30분 안에 밥과 반찬을 차려내는 엄마의 초능력을 발휘해 본다.

 이럴 때 생각나는 건 단연코 친정엄마표 밥솥 계란찜이다. 밥솥에 쌀과 물을 채운 후 스댕(스테인레스)대접에 계란을 풀고 냉동파와 깨소금을 뿌리고 물을 넣어 쌀 위에 올려놓는다.

그 사이 재빠르게 언제 쓸지 모르는 콩나물을 삶아 무쳐낸다. 냉동실에 365일 대기 중인 멸치를 볶아내고 영원한 나의 동반자인 도시락김을 꺼낸다. 거기다가 친정 엄마표 김치까지 꺼내면 임무완성이다. 아이를 위한 정갈한 한상이 차려진다.

(참고로 보통 급할 때는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계란찜을 하는 데 어쩔 때는 그 시간조차 빠듯한 날이 있다.

전자레인지에서 나온 계란찜보다 밥솥 계란찜은 오랜 시간 지나도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다. 내 입에는 더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밥솥계란찜을 선호하는 편이다)


초등 고학년 때부터 친정 엄마가 일을 시작하셨다. 밥시간에 엄마가 안 계실 때가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미리 밥을 다 해놓고 나가셨다. 식탁 위에 가지런히 준비해 두신 반찬과 함께 냉장고에서 김치와 다른 반찬들도 꺼낸 후 밥을 푸기 위해서 밥솥을 열면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김이 모락모락 하게 피어나는 몽글몽글한 계란찜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식어버린 반찬과 김치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계란찜은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최고의 반찬이었다. 그 시절 나의 최애 메뉴였다. 늘 매 끼니마다 따뜻한 국을 정성껏 직접 끓여서 내놓으셨는데 일을 하다 보니 국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는 바쁜 날이 점점 많아지셨다. 엄마는 그런 날에 마음이 영 불편 하셨는지 국 대신 항상 계란찜을 함께 준비해 놓으셨다. 사실 계란찜 하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큰 대접을 꺼내서 밥과 계란찜과 참기름 한 방울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최고급 일품요리가 되었다.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든든한 한 끼였다. 결국 다른 반찬은 거의 먹지 않고 그대로 다시 뚜껑을 닫아놓은 적도 많았다.


 아이는 갖지은 밥과 동시에 완성된 뜨거운 계란찜을 호호 불며 대접을 찾았다. 계란찜을 거침없이 한가득 퍼서 밥 위에 올렸다. 하얀 쌀밥에 계란찜이 애초에 한 번에 나온 음식처럼 야무지게 비벼서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금세 밥이 사라진다. 아이는 엄마가 해주는 계란찜+밥이 제일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최근 다른 일품요리는 계란찜밥 때문에 좀처럼 만나기 어려워졌다. 엄마가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거니? 너무 좋다앙! )


게다가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콩나물무침도 처음 그대로, 멸치볶음과 다른 반찬들도 양이 줄어들지 않았다. 누굴 닮았는지 계란찜과 밥만 먹었다. 일부러 입에 넣어주며 다른 것도 골고루 먹어야지! 잔소리해 보지만 별 소용이 다. 너무 맛있어서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고 했다.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더군다나 이제는 운동을 가지 않는 날까지 계란찜을 찾는다. 계란이 완전식품이긴 하지만 야채 섭취량이 현저히 줄어든 게 맘에 걸린다. 소량이지만 대파와 깨소금을 듬뿍 넣고 전남신안군에서 생산한 천일염과 맛간장도 적절히 첨가하여 나트륨까지 넉넉히(?) 보충해 주는 것으로는 영양이 한참 부족한 걸 알고 있다. 대신 생각날 때마다 아연과 비타민이 들어간 영양 젤리도 먹인다. 과일은 항상 쟁여놓는다.

아이는 원치 않지만 간간이 케일쌈과 양배추쌈도 만들어준다. 어떤 날에는 곤드레나물밥이나 취나물밥에 맛깔 난 양념장으로 비벼주는 날도 있으니 스스로 괜찮다고 위로해 본다.




 (결혼 13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좀처럼 요리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욕심인 양 모든 것을 통달한 듯 아이는 오늘도 운동 가기 전 저녁 메뉴로 계란찜이라고 크게 외쳤다. 하긴 덥고 습한 여름에 고기라고 대답했으면 열기가 가득한 주방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을 것이다. 참 다행이다. 오늘도 엄마를 극진히 생각해 주는 아이에게 고마울 뿐이다.

29분이라는 넉넉한 시간 속에 다른 반찬들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여유가 넘치는 오후를 보냈다.






덧붙임) 아이 덕분에 요리 실력이 점점 떨어지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애아빠한테 전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역시 이제 계란찜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진출처 : 오늘 저녁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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