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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ul 19. 2023

해장 메뉴를 이제는 딸과 함께 먹는다.

당신은 해장으로 뭘 드셨나요?

동네 체인점 마트를 갔더니 여기나 저기나 요즘 아사히 맥주를 진열해 두고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요즘 같은 날씨에 시원하게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다. 한편으로 갑자기 맥주를 과하게 마신 다음 날 해장을 위해 먹었던 음식들이 더 생각이 났다. 이제는 맥주를 먹지 않고도 내가 즐겨 먹는 4가지 음식들이다.


1. 콩나물국밥

맛의 고향 전주가 고향이다. 전주에는 유명한 맛집들이 수두룩하다. 보통 전주 하면 비빔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라는 사람은 콩나물국밥이 더 유명하다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눈에 보이는 콩나물국밥집 어딜 가도 평균이상은 할 것이다. 본인의 기호에 따라 대충 골라도 맛집으로 매스컴에 한두 번 정도 나온 맛집일 가능성이 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왱이콩나물국밥집을 자주 다녔다.

(아빠와 친오빠는 남부시장 콩나물국밥집을 더 선호한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였던 20대 초중반 대학생으로서 패기 넘치던 시절, 어쩌다 삘이라도 받는 날이면 친한 친구와 새벽까지 감당하지 못할 술을 마실 때가 있었다. 뭘 믿고 그렇게 마셔댔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철이 없던 시절임에는 틀림없다. 세상 두려울 게 없었으니까.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숙취에 시달려 하루 종일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부모님 눈치를 보다가 느지막이 밖으로 기어 나갔다. 전 날 약속이나 한 듯 어김없이 친구와 콩나물국밥집에서 또다시 만났다. 저렴한 가격에 부드러운 수란을 한 번에 삼키고 뜨끈한 밥과 콩나물을 무한대로 리필해서 먹다 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거침없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두 그릇 같은 한 그릇을 뚝딱 하고 나면 몸에 있던 알코올의 기운이 순식간에 우주로 공중분해되었다. 어느새 가벼워진 발걸음은 또다시 어제 갔던 술집으로 향해 있었다. 그 시절의 미친 소화력과 체력만이라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그 시절의 국밥집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그 맛을 유지하고 있어서 고마울 뿐이다. 지금은 고향에 내려가면 해장이 아니라 친정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온 식구가 다 같이 가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한다.

 가끔씩 딸내미한테 저녁메뉴로 엄마표 콩나물국밥을 끓여서 대령한다. 얼추 비슷하게 흉내는 내보는데 결코 그 콩나물국밥집의 깊은 맛은 따라갈 수가 없다. 그건 당연하다. 그 집은 손님이 주무시는 동안에도 365일 계속 육수가 끓고 있다고 당당하게 자랑하는 맛집이었으니까.

<전주 왱이콩나물 국밥집에서 먹기 전에 찍은 사진>


2. 라면


라면을 말하려고 하니 벌써부터 입이 아파온다. 한국사람으로 태어나서 술 마신 다음 라면을 안 먹어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 20대 중반 취직을 해서 낯선 서울 생활을 할 때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회식을 밥 먹듯이 자주 하던 시절이었다. 특히나 회식의 꽃은 금요일이었다. 늦게까지 머릿수를 채워야 하는 어린 여직원은 결코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 주말에는 전주에 내려가지 못했다. 그렇게 원치 않는 회식 자리를 끌려다니며 불금(불쌍하고 불행한 금요일)을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외로운 토요일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내 곁에서 아픈 머리를 감싸주고 허기와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는 라면이었다. 쉬는 주말에는 전주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콩나물국밥을 먹었고 서울에서 주말을 보내면 어김없이 라면을 먹으며 20대를 보냈다.


서른 초반에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 꼬박 3년 후 육아 세계에 입문했다. (시댁 위층) 옥탑방에서 독박육아로 힘들었던 그 시절에도 라면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지방 출장이 잦은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종일 애하고 지지고 볶다가 겨우 재우는 일상에서 밤에 홀짝홀짝 마셨던 맥주와 다음날 아침 후루룩 했던 라면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라면 먹고 후식으로 믹스커피 한잔 더하면 이보다 더 훌륭한 조합은 없었다)

아이를 업고도, 아이를 재우고도 먹었던 그 라면을 지금은 숨겨놓고 낮에 가끔씩 혼자 먹는다. (전에도 살짝 언급했듯이) 우리 집에는 현재 나 말고 라면 귀신이 2명이나 더 있다. 결코 우리 집에서 매일 라면 파티가 열려서는 안 된다. 일주일에 1번, 그 이상은 안된다. 약속을 꼭 지키자.

<아이가 보는 영자 신문에 실린 라면 기사 사진>


3. 짬뽕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했었다. 라면을 좋아했지만 덜 매운 종류, 순한 맛의 라면을 선호했었다. 반대로 남편은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일부러 찾아다닌다. (신혼 초 신라면이 맵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열라면까지 소화해 낸다)

짬뽕은 매운 음식의 대표적인 메뉴이다. 고로 남편은 얼큰함이 한가득한 짬뽕을 좋아한다. 남편이 오랜 지방 떠돌이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정으로 현장을 출근해서 좋아했었지만 매일 야근에 회식이 이어졌다. 술 마신 다음 날 남편은 사무실 직원들과 해장을 위해서 자주 중국집을 다녔다. 토요일까지 회식을 하고 온 남편이 일요일 아침에도 짬뽕을 찾았다. 밥 하기 귀찮아서 억지로 따라나선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엄마라서 짬뽕보다 짜장면을 더 먹게 되었다. (그나마 탕수육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언젠가 애 재우고 남편과 함께하는 치맥 타임이었다. 기분 좋게 시작했다가 의견 충돌로 시댁문제와 돈 때문에 언성이 높아져 맥주만 들이키며 크게 싸웠던 날이었다. 화가 머리까지 치밀어 올라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아무 일 없듯이 '짬뽕이나 먹으러 갈까?' 말을 걸었다. (속으로 이런 써글 X!이라 욕하면서) 마지못해  주는 척, 머리도 안 아픈 척하면서 따라나섰다. 도저히 그날은 애랑 같이 짜장면을 먹고 싶지 않았다. 홧김에 매운 짬뽕을 시켰다. 매운 짬뽕한테 호되게 당했지만 내 눈물을 쏙 빼준 짬뽕이 싫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종종 나는 짬뽕을 먹고 남편이 짜장 곱베기를 시켜 애와 함께 나눠 먹었다. 물론 내 짬뽕을 남편이 거들긴 했다.

작년 남편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숨은 맛집을 세 식구 주말 드라이브 코스에 포함시켰다. 콧바람 쐬러 가기 전에 그 중국집에 들린다. 이 집의 짬뽕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깔끔하다. 푸짐하면서도 저렴하다. 여기서도 짬뽕은 내 차지다. 그 옆에서 짜장면을 놓고 아빠가 티격태격하던 딸아이가 몇 년 사이 훌쩍 커버렸다. 초3인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짬뽕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제는 짜장면을 시킬 필요가 없다. 짬뽕과 탕수육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숨은 맛집의 짬뽕과 옛날탕수육>



4. 쌀국수


어린 시절부터 잔치국수를 좋아했었다. 엄마가 집에서 멸치 육수로 자주 만들어주신 잔치국수가 국수의 대장으로 알고 산지 40년이 훨씬 넘었다. 밖에서 혼밥 할 때면 부담 없이 국숫집 자주 가서 항상 잔치국수를 먹었다. 혼자 먹어도 부담이 없고 엄마 생각에 외롭지 않고 소화도 잘 되는 잔치국수는 라면과 함께 나의 면발인생의 참된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애석하게도 잔치국수와는 살짝 이별 중이다.

 작년 12월 호주로 이민 간 친구와 여군인 친구를 포함해서 대학친구들과 우리 딸 포함 애들 3명까지 다 같이 1박을 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난 우리에게 1박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밤은 깊어만 갔다. 몇백 년 만에 술에 물탄 듯 술도 술술 넘어갔었다. 다음 날 아침 친구 중에 한 명이 해장으로 쌀국수를 먹자고 했다. (난 속으로 중국집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도보로 이용 가능한 쌀국숫집이 있었다. 아이들은 볶음밥을 시켰고 어른들은 국물의 위로를 받기 위해 다들 쌀국수를 시켰다.

술 먹은 다음 날, 어렴풋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쌀국수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진짜로 술을 먹고 난 다음 날 쌀국수를 먹어보니 왜 이걸 먹을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속을 보호해 주는 부드러운 면발과 단백질 보충을 위한 고기, 콩나물을 대신해 아삭함을 주는 숙주까지 환상의 궁합은 실로 완벽한 해장 메뉴였다. 특히나 짭짤하면서도 담백한 육수가 자꾸 구미를 당겨서 국물까지 다 마셔버렸다. 평소 국물 요리를 좋아하지만 건더기 위주로만 먹고 국물은 최대한 자제하는 스타일이라고 이제는 말 못 한다. 쌀국수에 대한 사랑은 그때부터 계속 ~ing 중이다.

<딸과의 데이트 코스로 자주 가는 쌀국숫집의 쌀국수와 매운쌀국수>

평소 남편이 주말에 출근하는 날이면 딸아이와 단둘이 데이트를 즐긴다. 데이트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어느샌가 콩나물국밥집과 쌀국숫집을 자주 간다. 세 식구가 함께하는 주말에는 중국집을 가기도 하고 점심에는 라면을 먹기도 한다. (밥도 틈틈이 열심히 합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술 먹은 다음 날 해장으로 즐겨 먹었던 음식을 지금은 딸아이와 함께 먹는 게 도통 신기할 따름이다. 그만큼 아이도 많이 컸다. 음식은 무얼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을 누구랑 같이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제는 굳이 술을 마신 다음 날이 아니라 랑하는 가족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다.

그래도 시원한 맥주 한 잔은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 나 역시그 맥주를 소중히 모셔와 현재 김냉에 보관중이다.





덧붙임) 부디 딸아! 먼 훗날 엄마처럼 이 메뉴들을 술 먹은 다음 날 네 스스로 찾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 직접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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