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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Dec 16. 2022

뜨거운 첫 리뷰 작성

배달 앱보다 목소리

<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왼 손으로 드라이기를 들고 능숙하게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안방과 키가 거의 비슷한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서 거울을 보는 대신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 쇼핑몰의 배송 현황과 치킨 배달 현황을 번갈아가며 확인해보았다.

오픈 기념으로  바쁜 지 아직 치킨 출발 시간은 알 수 없었다. 감자튀김 서비스에 콜라까지 업그레이드 해준 다는데 이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오늘은 기다림의 미학의 날이니까.     


여유 있는 시간 속에 수분이 빠져나와 찰랑거리는 머리를 빗어본다. 트리트먼트까지 완벽히 소화해 낸 머리는 완벽 그 자체다. 비단 같은 황금 머릿결을 오늘따라 봐주는 사람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10분 안에 유혹할 수 있는 매력적인 얼굴은 아니어도 긴 생머리 덕을 톡톡히 봤던 20대의 뒷모습 미인(?) 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는 그런 미련도, 풋풋함도 없는데 아직까지 그 긴 머리만은 왜 포기하지 못하고 있을까? 피식 웃어본다. 아무 생각 없이 미소를 띠며 일어나다가 낮은 천장에 머리가 또 부딪힐 뻔했다. 아차 싶었다. 옥탑의 안방 생활도 여전히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딩동’

주인 없는 소파가 금세 익숙해졌는지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거실에 나와 살짝 잠이 들었나 보다. 엄마 품에 안긴 듯 따뜻해진 손 안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렸다. 정신이 번쩍!

결혼하고 부쩍 무거워진 몸뚱이를 겨우 일으켜 문 앞으로 다가갔다. 분명 도착 알람이 와서 문을 열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건 허공뿐이다.

알람이 잘 못 왔나 다시금 폰을 집으러 가려는 찰나, 이 놈의 개코는 오늘도 어김없이 열일을 하기 시작했다. 침샘을 자극하는 거대한 스멜이 4층 건물의 계단 복도를 장악했다는 소식과 함께 불길한 소식도 동시에  전했다.


분명 치킨은 왔다는 것은 100% 확실한데 4층 문 앞에 없다.

그렇다면? 설마? 설마??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절대로!! 제발!!!


생각과 달리 몸은 벌써 고양이 변신을 완료했다. 최대한 날렵하면서도 우아하게 한 계단 한 계단 발을 딛는다. 반 정도 내려오니 녀석의 위치가 확인이 되었다. 그 순간 거친 숨이 몸 안쪽으로 몰아쳤다. 심장박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분명 이게 아니었는데 뭔가 잘못되어가는 중이다.


스멜에 이끌려 자동 반사되는 몸과 두근대는 심장 박동 소리를 눈치챘는지 LED센서등이 움직임을 감지했다.

아뿔싸!

그 순간 10개나 있는 손가락 존재 이유를 의심했다.

아까 4층으로 올라올 때 당황한 나머지 스위치를 다시 내려놓지 못한 이 놈의 손가락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인가?

분명 2분 전쯤에도 LED 센서가 작동했을 것이다. 센서는 실수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계속 불이 켜지니 3층 현관에서도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3층 현관 불이 켜지니 복도는 더 밝아졌다. 고요한 깊은 밤에 ‘띠리리’ 3층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건물 전체를 요란하게 만들었다.


분명 4층이라고 주소를 정확하게 입력했다. 배달 앱을 켜 다시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신규 배달원의 실수를 전화해서 따질 준비는 완벽했지만 그런 찰나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신규 오픈점이라 배달 실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처 하지 못한 자신을 탓할 뿐.


“무슨 일, 아니 치킨 시켰냐?”

 복도에 진동한 스멜에 이미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냄새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3층 현관문만 살짝 열었을 뿐인데 거실까지 이미 도착했다.


“선미 엄마! 무슨 일 아니 누가 치킨 시켰어?”

“밥 안 먹고 퇴근했냐?”

“네, 배가 고파서요.”

“선미는 오늘도 늦나 보다, 아직 안 들어왔어

“같이 먹으려고 시킨 거 아니야? 얼른 들어와”

“혼자 먹기 많으니까 3층으로 시킨 거지”

“네.  같, 같이 드실 수 있으세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 혹시나 해서요”

“우리야 좋지, 얼른 들어와라”     


굶주린 고양이가 생선을 발견하고 냉큼 낚아채려는 모습은 들키지 않았다. 오히려 환대를 받기 시작했다. 혼자 먹을 생각은 저만치 접어두고 여우 모드 장착이다.

“근처에 새로 생긴 치킨집인데 오븐으로 구워서 살이 안 찐데요, 그래서 시켜봤어요.”

“콜라도 큰 거 주고 감자튀김까지 있네?”

“오픈 기념 서비스예요.”

“선미 엄마, 거 시원한 맥주 좀 가져와봐. 이럴 때 한 잔 마셔야지.”

“오늘은 나도 한 잔 마셔볼까?

“.....................”     





대학교 입학 후 이과계열로 교차 지원한 학과 덕분에 역사에 관련된 수업을 들어볼 기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일부러 교양과목으로 신청한 적도 없다.

대학교 졸업 후 안정된 직장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공무원 시험도 준비해 본 적도 없다.

노량진에는 유명한 젊은 일타 강사들이 많다고 들었다.

지금 0 Kacl치킨 앞에서 고려말과 조선 건국 시대를 열과 성을 다해서 말씀하시는 분은 분명 노량진에서 인기 있을 리 없다. 어쩜 장래 희망이 역사학과 교수님은 아니셨을까? 노년시작을 증명하듯 이마머리의 경계는 사라지 살짝 내려앉은 안경과 그 사이로 치켜든 두 눈, 소통 없는 일방적인 말투가 거침이 없으시다. 팔 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서러움이 말끝마다 묻어난다. 그렇게 그 앞에서 알아듣는 척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은 전혀 생각(나 혼자 산다 지금쯤 누구 나왔을까?)을 하며 흘려듣기를 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는 같은 레퍼토리가 여러 번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느 정도 다 알아듣게 되었다.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금방 정리가 될 상황이었다. 원망의 눈초리도 보낼 사람이 없다는 게 서글퍼졌다.

여우로 변신은 했지만 곰 아홉 마리 정도 꿀꺽한 여우의 영혼은 곰보다도 못한  꿀 먹은 벙어리였다.


고려말과 조선 건국의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나 혼자 산다의 본방 시간도 끝나갔다.  

큰 기대를 했던 0Kcal 오븐으로 구운 치킨은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억지로 쑤셔 넣었는지 그 맛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화려하게 계획했던 혼자만의 불타는 금요일 밤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불(쌍한) 금요일이었다.


자정이 한참이나 지난 시간에 겨우 4층으로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다.

오랫동안 곧은 자세로 앉아 있어 허리도 아프고 피곤이 몰려왔다. 이대로 잠들면 안 된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결의에 찬 마음으로 스마트폰의 배달앱을 클릭했다.

8장의 쿠폰이 줄지어 기다리는 양념치킨집 사장님의 4층 특급 배달 그리워하며 ‘오븐으로 구운 치킨’ 집  리뷰 작성을 클릭했다. 배달앱 주문 첫 후기 작성이었다.

"×+÷$#÷×*%$#@÷×÷/<=÷×$%&*$#!"



그 뒤로 한참 동안이나 치킨을 시킬 때 새로 오픈한 치킨집이거나 다른 동네에서 시키는 경우, 치킨뿐 아니라 다른 배달음식을 시킬 때에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행동이었지만 배달 앱보다는 목소리를 이용했다.


"어디시죠? 주소 불러주세요"
"여기 1234-5번지 4층인데요"
(가끔씩 되묻는 경우가 있었다. "그 1234-5번지가 4층도 있었나요?")
"네! 3층 아니고 4층이에요! 꼭 4층으로 갖다 주세요! 꼭이요! "


*옥탑이라 외부에서는 눈에 지 않는 작은 창문밖에 보이지 않아 죄송합니다.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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