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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Aug 23. 2023

집에 있기도 집에 가기도 싫습니다.

오늘을 기다렸는데 말이죠

절대 남편이 재택근무라서 나온 게 아니에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 등굣길에 따라 나온 거예요.

항상 헤어지는 그 신호등 앞에서 인사하고 되돌아오려는 찰나, 기왕 나온 거 얼마 전 새로 생긴 과일야채 가게 한번 가볼까? 하고 방향을 틀었지요.

(제가 베테랑 좋아하는 거 아시쥬? 하필 새로 생긴 과일야채가게 간판이 베테랑 야채과일입니다. 어제 샀던 오천 원에 4개였던 황도복숭아 맛이 괜찮아서 오늘도 살 수 있나 작정하고 나온 게 분명할지도 모릅니다)


가는 길에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집니다.

현금 찾으러 인출기가 있는 곳으로 급하게 몸을 내던졌습니다. 돈 찾는 그 사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억쑤로 내리네요.

(비가 이리 오는데 집구석에 있는 인간은 마누라가 왜  오는지 연락조차 없습니다. 네. 당연하죠. 어린애도 아닌데 우리 사이 그런 사이 아니니까요. 지난 일요일 싸우고 나서 더 그렇고요)


우두커니 서서 그저 잠시나마 멍을 때려봅니다.

비가 언제 그칠까요?

시간을 10분 전으로 되돌리고 싶더라고요.

숨 막히더라도 그냥 잽싸게 현관문을 통과 후 안방 침대로 돌격할 걸 괜히 왜 나온 걸까요.


차라리 베테랑 칼국수였다면 이런 날 온몸이 빗물에 젖더라도 속으로 절로 어깨 춤추며 후루룩 쩝쩝했을 테지만 칼국수집이 아닌 베테랑 야채과일 가게 간다고 이러고 있다니..쯧쯧

하염없이 기다리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아이 하교 시간 다가올까 봐(오늘 방과 후까지 있는 날이라 일주일 중 제가 제일 기다리는 날입니다ㅜㅜ) 야채과일 가게 쪽으로 돌진했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밖에 쭉 나열해 있던 과일들이 가게 안쪽에 박스채 싸여있네요. 아직 정리가 덜 된 상태네요. 너무 일찍 왔나 봐요. 어제 그 자리에 있던 쪼매난 바구니에 담겨  있던 제가 찾는 복숭아도 없고요.


다시 한번 난 왜 어쩌다가 여기로 왔나? 후회가 밀려오네요.

한숨 쉬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 M커피가 눈에 보이네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오픈했더라구요. 누군가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왠지 저 사람이 제 것까지 주문할 것 같은 이끌림에 여기까지 왔네요 ㅋㅋ

결국 내 돈 내 산으로 라떼 한 잔 주문하게 되었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비가 계속 억쑤로 내리길 바라면서 앉아 있는데 왜 또 빗줄기는 약해지나요?


<아침부터 빈 속에 라떼 들이키는 중입니다>


집에 가기 싫어요.

집에 가면 제 손을 원하는 설거지와 빨래, 방바닥에 깔린 머리카락 그리고 점심밥을 기다리는 남편까지 저를 격하게(?) 환영해 줄 텐데 말이죠.

차라리 아이 하교시간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집에 애라도 있어야 분위기가 사는데 오늘만큼은 냉랭한 집안 공기에서 잘 버틸 수 있으려나요, 에헴!


아침부터 계획에 없던 카페행이 결국 글 발행을 위해 미리 계획된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후다닥 이런 식으로 글 하나 뚝딱 해치웠네요 ㅎㅎ 슬슬 다시 움직여야겠어요.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야채과일가게에서 한 봉에 5백 원인 콩나물이라도 사서 들어갈게요.


그리고 짜증은 나지만 돈 버는 남편이니 굶길 수는 없으니 근처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 사서 던져놓고 잽싸게 다시 나올게요. 부족하면 알아서 라면 끓이겠죠.

이번엔 노트북 메고 도서관이나 가야겠습니다.

아이가 오는 그 시간까지 안방 침대에서 버티기엔 오늘 하루가 너무 소중하니까요.







덧붙임) 남편 투명인간 취급할 수 있는 기술과 노하우 있으면 살짝 댓글 부탁드립니다. 재택근무까지 하니까 오늘따라 더 우울해지네요. 하하하



사진출처 : 실시간 직접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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