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미래 Sep 27. 2023

친정 가는 길은 떡볶이만 먹어도 괜찮아요

휴게소에서 떡볶이 먹는 건 당연하죠!

연휴 시작 전 날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빨래를 돌리고 집안 대청소를 했다.

세탁기가 쉴 틈이 없이 다시 이불을 돌렸다.

수요일이라 재활용 분리수거를 했다.

쌓인 설거지와 냉장고 정리까지 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한숨 돌리고 나서 세 식구의 짐을 싸고 빈 김치통을 챙겼다.

시간이 금방이다.

집에 온 남편과 점심을 대충 때우고 주방정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소화시킬 겸 잠깐 은행 가서 부모님 드릴 현금을 찾아왔다.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곧바로 출발했다.

네비를 찍어보니 7시 15분  도착예정이었다.

5시간?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습니다.

네네. 암요~친정 가는 길이니까요



"엄마!

우리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신경 쓰지 마시고 주무세요!"


"언제 도착하는데?"



차가 많이 막혀요.


그래도 설마 밤 열시는 아니겠지요?^^;;


(진심 농담이었다. 두 시 반 전에 출발했는데..)



서서히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멈추다가 다시 기어간다.

출발한 지 두 시간이 넘었다.

분명히 가고 있는데 도착 시간이 점점 더 늦어진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차 안에서 지쳐 잠든 아이가 살짝이 눈을 떴다.

화장실에 가고 싶단다.

다행히 휴게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급한 불을 끄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떡볶이와 어묵을 주문했다. 제일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제격이다.

훅 들어온 매운맛 떡볶이가 정신을 번쩍 차리라고 경고를 줬다. 뜨끈한 어묵 국물로 속을 달래 본다.


다시 출발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졸려하는 남편을 위해 백만 년 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또다시 수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오른쪽 다리가 저려온다.

설상가상 갑자기 저 멀리서 먹구름이 밀려온다.

후드득 비가 오기 시작한다. 하늘도 어두컴컴해진다.

벌써 저녁인가?

라이트 때문에 눈부심과 빛 번짐이 심해진다. 이럴 때를 대비해 안경을 가지고 다닌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

다음 휴게소까지만 가면 내 역할을 끝이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두 시간 넘게 꼬박 졸음과 사투를 했다.

기다리던 휴게소가 보이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를 반겨주지 않는다.


이런 써글!

죄다 나 같은 사람들인가?

휴게소를 앞에 두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곳에 입성하면 오늘 안으로 도착 못할 것 같다.

하는 수없이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한 시간 가까이 또다시 지루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겨우내 다음 휴게소에 도착해서 주차까지 완료했다.

세 시간 넘게 운전을 한 적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도착을 못하다니... 도착지가 아니라 휴게소라니, 참나!


시간상 저녁을 먹으려고 푸드코트에 들어갔다 끝이 없는 대기줄을 보고 여기서도 그냥 나왔다. 먹을 게 없다. 아까 먹었던 떡볶이가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어쩔 수 없이 또 떡볶이를 주문했다. 옵션인 핫도그샌드위치는 아까 먹었던 어묵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헛배만 불렀다. 제기랄!

내일 아침이면 엄마가 정성스레 해 주시는 따순 밥을 기대하며 이 순간을 꾹 참아본다.


다시 차에 올랐다. 역시나 마무리는 남편이다. 조수석에서 잠시 눈을 감아봤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로 밤 10시에 도착했다.

경기 북부에서 전라도의 기본적인 물리적 거리는 어쩔 수 없지만 평소의 두 배, 7시간 반이 넘게 걸리다니 명절은 명절인가 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나의 부모님이다.

7시 반 걸려서 온 친정집에 와서 아무 눈치 안 보고 편안하게 쉴 수 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누울 수도 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다.

늦잠 자고 일어나도 아침을 차려주시는 나의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찮으신 아빠도 우리를 결코 깨우지 않고 기다려주신다)

그러하기에 그 멀고도 지루한 길을 알면서도 각오하고 매년 명절 때마다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내일모레 추석 당일 아침 일찍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할 뿐이다.

명절 당일에는  집에서 7분 거리인 시댁에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제사도 없고 음식 장만도 없는 시댁이지만

(너무나 가까워 매달 자주 보는 사이라도)

단지 달력에 '추석'이라고 콕 박힌 글자로 인하여 우리 식구가  일찍 오지 않으면 매번 꽤나 서운해하시는 남편의 부모님도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시고 계신다.





덧붙임) 이번에 친정 아빠가 편찮으시고 사정상 친정에 먼저 오게 되었다. 추석날 사흘 뒤에 시어머님 생신이라 시댁은 친정 다녀 온 후 계속 출퇴근할 예정이다. 시부모님께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친정에 먼저 내려왔지만 긴~~ 연휴에 친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아도 너~~~무 짧다ㅜㅜ

매거진의 이전글 집에 있기도 집에 가기도 싫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