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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ul 19. 2023

딸은 엄마의 영원한 민원 처리반

 신속하고 정확하고 무조건 빠르게!

친정은 차가 막히지 않는다는 전제조건 하에 빨라야 3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다. 자주 가기 힘들다. 부모님 생신이나 명절 때라도 꼬박꼬박 가야 하는 데 코로나 기간에는 거의 못 갔다. 그래도 올해는 벌써 2번 다녀왔다.


친정 엄마는 자식들이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꽤 부러워하신다. 가까운 데서 자식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살고 싶다고 종종 말씀하신다. (그만큼 챙겨주고 싶어 하신다) 멀면 아무 소용없다고, 아들딸 둘 다 멀리 살아서 나중에 죽고 나서 늦게 오면 어떡할 거냐고 가끔씩 서운 한 속내를 내비치신다.

엄마가 부러워하는 친구들은 막상 우리 엄마를 부러워하신다. 매주마다 자식들이 손주들까지  데려와 2박 3일 왔다 가면 몸살 난다고 하셨다. 오지 말라고 할 수 도 없고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신단다. 자식들이 어쩌다 한 번씩만 왔다 가고 평소에 신경 쓸 게 없는 세상 편한 엄마가 제일 부럽다고 하셨다.


친정을 멀리 두고 시댁 위층 옥탑방에 살 때 9살 어린 아가씨가 일찍 시집가서 바로 애를 낳고 친정에 자주 왔었다. 당연히 본인은 친정에 쉬러 왔었다. 2살 터울 동생을 낳고 나서는 더 자주 왔었다. 매주마다 그 모습을 보는 내 속내를 그 집에서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극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사를 했고 지금은 시댁이 차로 10분 내외다.


시부모님께서 가끔씩 핸드폰이나 컴퓨터 관련해서 당장 급한 일이 생기면 보통 가까이 사는 며느리를 부르신다. 귀하신 아드님이 처자식 먹여 살린다고 고생하는 게 애처로워서 며느리를 부르신다.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시집가서 애 둘 낳고 일하는 딸을 생각하면 더 애처롭고 눈물 나게 속상해하시며 또 며느리를 부르신다. 빠른 민원 해결을 위해서 딸 하나만 키우고 있는 며느리가 부리나케 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시아버지는 한 때 아이폰 유저(도통 적응 못하셔서 갤럭시로 바꾸셨음)이셨고 컴퓨터 게임도 하신다. 인터넷뱅킹은 물론이거니와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해외주문도 하시는 능력자라 안심이 된다. 비교적 큰 민원은 없다. 다행이다.


문제는 친정이다. 친정 부모님은 인터넷 뱅킹은 커녕 스마트폰 카톡도 겨우 설치했었다. 친정아빠는 어쩔 수 없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스마트폰을 사용하시게 되었다. 엄마는 띠동갑인 막내 이모와 지인한테 온 카톡 선물도 여러 번 날리셨다. 가까운 데 살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해결해드리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멀리 살아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짜증으로 번져가기 일쑤였다. 엄마랑 통화를 할 때면 고구마 수백 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철부지 시절을 뒤로하고 아이를 낳고 나도 엄마가 되어 법륜 스님의 <엄마수업>을 읽고 나서는 그러지 않기로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그럴 나이가 될 테니까. 나이 드신 분들은 절대 바뀌지 않으시니까.


그런 친정 부모님의 민원처리도 당연히 담당이다. 아 급한 상황이 아니면 친정 부모님 전화는 바로 받는다. (시댁 전화는 가끔씩 늦게 받거나 일부러 놓칠 때가 있다^^;;) 친정 부모님의 요구사항은 대부분 인터넷 결제와 주문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 즉시 해결 가능한 일이면 바로 주문하고 검색한다. 역시나 고객만족은 빠른 스피드가 생명이다.


친정 부모님이 요청하는 민원은 아래 종류들과 대게 비슷한 범주에 속하는 내용들이다. 

아래는 대표적인 예시다.

티브이 보는 데 맛집 나오는 데 저기 어딘 지 좀 찾아봐라
지금 건강 프로에서 관절에 좋다는 약이 나오고 있는데 주문할 수 있나? 얼만지 확인 좀 해봐 봐
이경제 흑염소 진액이 좋다는 데 속에서 받아줄지 모르겠다.
우선 한 달 치만 주문해줘봐 봐, 일단 먹어보자
장민호가 선전하는 단백질 뭐 거시기 있다는데 고기 대신 그걸 먹어봐야겠다
여름이라 땀 때문에 자꾸 눈이 더 아프다. 아이시안 떨어졌으니 석 달 치  주문해 줘라
홈쇼핑에서 저 옷이 맘에 드는 데 3벌이나 같이 판다. 일단 한 벌만 주문 가능 한지 알아봐라
집 근처에 우리 집으로 치킨 배달 되는 데 있으면  맛있는 걸로 한 마리만 주문시켜 줘라
방금 마트 갔다 왔는데 깜빡하고 다른 것만 사고 쌀을 안 시켰다. 신동진 쌀로 20kg 주문해 줘라
 당뇨 전단계에  카무트 쌀 넣어서 밥 먹으면 효과 있다는 데 진짜 효과 있는지 찾아봐라
우리 먹는 그 물 있지? 여름이라서 금방 없어진다
엄마 친구들이랑 이번주에 기차 타고 여수 가야 하는데 차 시간 보고 표 좀 왕복으로 예약해 줘라
엄마 신용카드 결제한 거 돈 빠져나가는 통장 바꾸고 싶은데 어디다 전화해야 하는 거냐


오늘도 민원 처리반은 뚝딱뚝딱 신속하고 정확하고 재빠르게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기계가 아니다 보니 가끔 실수할 때도 있다. 물이나 영양제가 가끔 우리 집으로 온다. 그럴 때면 몰래 재주문한다. 물량이 많아서 택배가 지연된다고 둘러댄다. 며칠 더 기다리면 온다고 안심시켜 드린다.


그나저나 오늘의 민원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민원이 아니라서 지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아빠의 통장에서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금이 5천 얼마인데 몇 달 전과 왜 금액이 다른 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신 엄마는 예전에 차를 팔아서 운전을 안 하는데 가입된 보험 항목을 조정하면 혹시 환급금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셨다. 그 즉시 설계사님께 전화를 해서 아빠의 통장 자동이체의 내용 확인했고 엄마의 환급금을 확인했다. 설계사님께서 엄마의 보험 변경 설계 승인을 요청하셨다. 내일 승인이 완료되면 엄마의 핸드폰으로 알람이 간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과연 엄마는 내일 알람 확인 후 혼자서 본인이 직접 핸드폰으로 인증 절차를 거친 후 무사히 통장 번호까지 등록하는 다소 까다로운 절차를 완벽하게 수행해 내실지 의문스럽다. 옆에서 도와줄 (젊은) 사람이 없는 게  문제다. 딸이 가까이만 살았어도 이런 일은 아무 문제가 안될 텐데 당장 갈 수 없어서 오늘도 마음이 무겁다.


내일도 엄마한테 분명 전화가 올 것이다. 화가 잔뜩 난 목소리가 아니길 바라본다. 곧 엄마 통장에 돈이 입금될 거라는 좋은 소식을 기다려본다.

민원 처리반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내일도 하루종일 핸드폰을 꼭 붙들고 있어야겠다.





덧붙임) 엄마도 오로지 한테만 전화를 한다. 친오빠는 이러한 사실들을 1도 모른다. 항상 나만 애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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