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미래 Jul 14. 2023

제일 좋은 책은 산책

비 오는 여름 날 산책 해봤니?

산책을 좋아한다. 걷기 위해 산책을 하고 산책을 하기 위해 걷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집에 하루 종일 차분하게 있는 성격이 못된다.

물론 몸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아픈 날과 시댁 가는 날 등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날에는 원하는 만큼 걷지 못한다. 그런 날을 빼고는 걷고 또 걷고 틈틈이 걷는다.

찌는 듯한 더위에 낮에 충분히 걷지 못했다면 저녁 임무(밥 차리기)를 다하고 밤에 바깥공기를 마신다.  추운 겨울날에는 핫팩을 양쪽에 단단히 끼고 걷는다. 봄, 가을에는 피부에 닿는 그날의 온도가 너무 좋아서 미친 듯이 걷는 날도 있다.


주된 산책 코스는 단지 뒤에 있는 공원이다. 게다가 가까운 곳에 203m의 낮은 산도 있다. 얼마 전 전망대가 생겨서 운이 좋으면 북한산까지 훤히 보인다. 집 근처에 공원과 산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도서관은 수시로 왔다 갔다 한다. 집에서 좀 거리가 있는 작은 도서관도 종종 들린다. 좀 멀리 가고 나가고 싶은 날에는 버스를 타고 호수공원을 돌기도 한다.


꼭 산책이라고 해서 근처 공원이나 뒷산, 도서관만 가는 게 아니다. 산책을 가장해서(?) 동네 식자재 마트와 시장도 일부러 걸어서 자주 간다. 얼마 이상 채워야 무료 배송을 해주는 인터넷 배송으로 필요 이상의 소비를 막기 위해 틈틈이 두 다리를 움직인다. 끝자리가 3,8인 날에는 장이 열리는 날이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에 간다. 시장에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언제나 살아있다. 활기가 넘치고 정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 손에, 끌고 다니는 캐리어에 무언가 들어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이끌려 나 역시 발걸음이 빨라진다.


<비 오는 날 산책해 봤니? 의자에 앉을 수 없어서 더 열심히 걷게 되는 마법에 걸린다>


요 며칠 계속 비가 왔다. 비가 온다고 집에 마냥 집에 있는 사람이라면 산책을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창문 너머로 계속 내리는 비를 예의주시한다. 작달비가 가랑비나 가루비로 서서히 바뀌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서둘러 우산을 챙겨 공원으로 향한다.

비 오는 여름 날 산책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차분하고 고요하다. 풀내음에 취한다.

물을 흠뻑 머금은 대지의 식물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귓가에 맴돈다. 좀 더 단단해지고 깊게 뿌리내리려는 녀석들의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자연 앞에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내리는 비를 그저 맞기만 할 뿐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았는지 주위에 사람이 없다.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다. 오롯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비 오는 날에는 검색이 아닌 사색을 마주하기에 최고의 날이다. 허공 속에 맴도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정리한다. 비우고 꺼낼 수 있는 값진 선물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어제의 산책길 : 걷는 이가 눈앞에 아무도 없다>


<오늘의 산책길 : 도서관 가는 길, 역시나 사람이 없다>

산책 나간 공원은 1년 365일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뒷산에 올라가도 어떠 날은 북한산이 보이지 않는다. 마트에 가도 어제 그 물건이 그대로 있지 않다. 어쩌다 가는 장터에도 매번 파는 물건과 장사꾼이 다르다.

꼭 목적지를 정하고 멀리 가는 것만 여행이 아니다. 금의 나는 산책을 통해서 매일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상이 여행이다. 그 안에서 특별함을 찾는 즐거움에 빠져 살고 있다.


 매일이 그날 같고 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걷는 연습을 한다. 이 연습은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실전이 없는 연습이지만 인증이라는 걸 통해서 매일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아주 적은 시간이지만 일도 하고 살림하고 책 보고 아이 공부 봐주고 픽업도 하고 글도 쓰고 만보인증까지 하면서 나름 잘하고 있다고 오늘 하루만큼은 셀프 칭찬을 하고 싶다)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하며,

눈은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다.


- 존 러스킨 -


: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단 하루도 같은 날씨가 없듯이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산책을 통해서 그날의 특별함을 찾는 긴 여정을 저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사진출처) 어제오늘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

매거진의 이전글 고성에는 아야진과 송지호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