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몇 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 등굣길을 같이 따라나서는 애엄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야쿠르트) 프레시매니저님은 종종 그 모녀를 보고 둘 다 대단하다고 말씀하신다. 허나 언제까지 아침마다 그렇게 같이 다닐 건지 주변에서 수근 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애를 강하게 키워야지 아직도 그렇게 졸졸 따라다니냐고 손가락질당한 적도 있다. 동네 사람들은 유난스러운 그 엄마가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는지 이유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딸이 하나여서 유난스럽게 키운다고 보이는 데로 으레 짐작해 버린다. 그저 자기들만의 이유를 만들어가며 돌아가면서 떠들어댄다. 남들이 그러하든 말든 그 애엄마는 주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온 지 벌써 몇 년째다. 그 애엄마는 오늘도 여전히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신발을 신는다.
단, 지금은 몇 년 새 훌쩍 커버린 딸이 엄마가 학교 앞까지 같이 가는 것을 원치 않을 뿐이다. 그나마 그 집 딸이 엄마랑 같이 집을 나섰다가 헤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등굣길 딱 하나 있는 횡단보도 건너편이다. 딸아이의 머릿속에 무슨 기억이 남아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횡단보도까지는 엄마가 따라나서도 흔쾌히 받아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횡당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린다. 엄마가 먼저 앞에 서있고 녹색불이 켜지는 걸 확인한다. 양쪽의 차들이 멈추고 나서 안전하게 횡단보도 안으로 함께 건넌 후 헤어진다. 엄마는 안도하며 혼자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서 집으로 돌아와 아이 학교 등교 앱 알람이 오길 기다린다. 알람이 울린 후, 그때부터 엄마의 평범한 일상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친구들이 전부 학원에 가고 딸아이가 혼자 하교하는 날이면 변함없이 또 집 앞을 나선다. 교문을 지나는 딸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다시금 횡단보도를 함께 건너서 집으로 돌아온다.
몇 해 전 그 애엄마는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 등원길에 딱 한 군데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끔찍한 교통사고 장면을 목격했다.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은 장면이었다. 사람이 실제로 차에 치어서 길 한복판에 쓰러지는 사고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 이후의 삶은 여자가 애를 낳기 전과 후의 삶이 극도로 달라지는 것처럼 한동안 그 여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게다가 본인은 그렇다 쳐도 아이가 받은 충격과 공포감이 걱정되어 그곳을 지날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괜히 죄 진 사람처럼 일부러 그 길을 피해 다녔다. 동네는 되도록 남편한테 애를 맡기고 밤에만 혼자 돌아다녔다.
저기요, 저랑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얼마 후 갑자기 집안에 일이 생겼다. 중요한 서류 발급을 하러 낮에 나가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해가 중천일 때 신발을 신었다. 방심했던 그 순간 주민센터 가는 길에 큰 사거리에서 낯선 남자가 말을 걸었다. 누가 봐도 경찰이다. 사전에 누군가가 그 애엄마의 인상착의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지 경찰은 한눈에 그 애엄마를 알아봤다. 경찰은 애엄마를 붙잡았다. 지난 그 교통사고 사건 해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운전자는 자기 신호에 직진했을 뿐이고 횡단보도 바깥쪽에서 여자가(강아지와 함께) 무단횡단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의 사회 구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사람하나 살려야 하지 않겠냐고......
(막판에는 귀찮은 듯 당장 이 사건 말고 해결해야 할 사건이 수십 건 밀려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애엄마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그 상황을 못 봤다고 잡아떼지는 않았다.
경찰은 경찰서에 직접 와서 진술이 어려우면 휴대폰 문자로 간단히 보내달라고 했다. 피해자가 신호등의 적색불과 녹색불, 횡단보도와 횡단보도 바깥쪽 중에 언제 어떻게 움직였는지 직접 본 대로만 사실대로 진술해 달라 했다. 계속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으니 당신의 문자 메시지 하나로 이 사건의 종지부가 찍힌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게 되었다.
애엄마는 내키지 않았다. 이런 간단한 진술 하나로 그 사건에 얽히고설킨 몇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무서웠다.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사 계획도 없는 데 이 동네에서 아이와 함께 계속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괜찮더라도 과연 앞으로 나는 내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말 한마디 잘 못했다가 (운전자의 측근들) 누군가가뒤에서 돌멩이라도 던질까 봐 두려웠다. 심장이 자꾸만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