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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Nov 15. 2023

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

소설집 연수를 읽고 꽂힌 한 부분

지난주 독서모임 글쓰담에서 만난 책은 정류진 소설집 '연수'였다.

소설집 내 5개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모두 우리 주변에 실제 일어난 이야기인 듯한 착각에 빠져 몰입하며 공감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책도 다 읽었고 모임도 끝났는데 계속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서 잠시 글을 쓰게 되었다.


5개의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 '연수'는 주인공 주연이가 운전 연수를 받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풀어놓았다.

에서 주인공의 운전 연수 선생님과 주인공 엄마의 이야기가 잠시 스쳐 지나간다.


운전연수 선생님의 카톡 프사는 테니스를 하는 딸사진이고 프로필명은 '한국의 샤라포바'다. 선생님은 딸아이의 레슨비를 벌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고 계신 듯했다. 딸의 테니스 우승컵을 들고 세상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선생님은 그 순간이 아마도 그녀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고 쓰여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어머니는 주연이가 반에서 일등을 하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장학금을 받고,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 법인에 입사할 때마다 엄마는 가장 기쁜 순간이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의 가장 기쁜 순간이 차례대로 갱신되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 버리는 일들이,

일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되어버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결코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10살 때 친오빠가 같은 초등학교 국민학교 6학년 전교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때 엄마의 모습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내년이면 칠순이 되시는 친정엄마도 소설 속 주인공의 엄마처럼 친오빠와 나, 우리 남매를 키우면서 매번 그러한 일들로 기쁨의 순간을 누리면서 살아오셨을 거다.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친오빠가 공기업에 합격하고 나 역시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 엄마는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는 행복한 엄마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친정엄마는 기쁨의 순간들이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오빠는 아직도 재직 중이지만 난 육아휴직 후 다시 그 회사에 복직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멀리 사는 자식들을 뒤로하고 지금은 오롯이 혼자서 아빠를 책임지신다. 다행히 아빠의 건강 상태가 호전되었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아빠의 수술과 입원으로 엄마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졌고 본인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게다가 이제는 자식들도 먹고살기 바쁘고 제 식구들 챙기기 여념이 없다. 더 이상 엄마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드릴 일이 별로 없다는 현실에 서글퍼진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식구들 모두 아프지 않고 아무 일 없이 그저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제일 좋은 일이라고 전화드릴 때마다 말씀하신다. 그런 엄마가 오늘따라 더 사무치게 그리울 뿐이다.



나는 앞으로 행복의 순간들을 마주할 것이다. 지금 초3인 딸이 성장해 가면서 소설 속 주인공의 엄마들처럼 딸 덕분에 기쁨의 순간이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이가 커갈수록 기쁨의 순간들도 계속 갱신될 것이다. 

(지금은 수학 단원평가 100점만 맞아와도 매우 기뻐하는 어쩔 수 없는 K엄마... 그래서 100점 맞은 애 너 말고 몇 명이야? 이런 어리석은 질문도 빼놓지 않는 바보 엄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 버리는 일이, 내 일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럼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 소설집 연수 중에서


앞으로 소설 속 주인공의 엄마처럼 나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수순을 밟게 되겠지?

아마 저 글귀를 만나지 않았으면 내 일생의 기쁜 순간들은 다른 사람(딸)에 의해서 갱신되는 삶을 사는 게 그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욕심이 생겼다. 


내 일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을 나 스스로 만들어가고 싶다.

내 손끝으로 나의 기쁨의 순간들을 계속해서 갱신하고 싶다.

그 기쁨의 순간을 여러사람에게 전하며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당장 소설 속 주인공처럼 공인회계사 공부를 시작해서 회계법인에 취직할 일도 없고 내일 치러지는 수능을 다시 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저 지금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고 묵묵히 그 길을 향해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밟아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 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언젠가는 (1년 전 브런치 작가의 합격의 기쁨을 누린 것처럼) 나 자신 스스로가 기쁨의 순간이 갱신되는 때가 올 거라 믿고 싶다. 그때가 되면 친정엄마의 기쁨의 순간도 또다시 갱신되겠지? 그와 동시에 내 아이에게도 지금보다 더 당당하고 멋진 엄마가 되는 순간도 함께 찾아오려나? 작지도 않은 희망을 가슴속 깊이 품어본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힘차게 용기 내서 발행 버튼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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