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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Dec 01. 2023

3년 동안 청약통장 덕분에 행복했어요

사실은 그곳으로 너무나도 가고 싶어요

나에겐 한 때 꽤 오래된 청약통장이 하나 있었다.

친정엄마가 오빠와 나의 먼 미래를 위해서 수십 년 전에 미리 만들어주신 청약통장이었다.

재테크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하기는 그렇고 부동산에 대해서 잘 몰랐던 그 시절, 엄마에게 대충 어떤 통장이라는 것만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 통장은 지하 깊은 곳에서 쓰일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티 안나는 이자를 불려 가며 묵묵히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친오빠는 전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오빠는 청약통장을 쓰지 않았다. 엄마에게 그 돈을 다시 돌려준 효자(?) 아들이다. 대신 재테크에 관심 많았던 새언니는 청약통장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본인만의 방법으로 안정적인 자가를 확보했다.


문제는 우리다. 아무것도 없이 맨 몸뚱이로 시작한 신혼집은 시댁 위층이었다. 그곳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 애 낳고 나서는 더욱더 그 옥탑방에 살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생각난 건 바로 엄마가 만들어주신 청약 통장이었다.


청약통장은 있었지만 당장 이사 갈 수 있는 아파트는 없었다. 한두 번 들이밀었지만 오래된 통장이라는 것 말고는 가산점이 턱없이 부족했다. 신혼부부 특공도 번번이 낙첨이었다. 만약 당첨된다 하더라도 그 시점에서 또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건 더 곤욕이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결국 그 통장을 또 쓰지 못한 채 우리는 30년 다되어가는 구축 아파트 1층 방 한 칸 정도 되는 소유자로 여기로 왔다.



3년 전 그즈음에 부동산과 주식, 코인으로 전국이 들썩이는 그때 집값 폭등으로 청약 열풍이 불었다. 은행빚이 잔뜩 껴있는 1 주택자가 딱히 청약을 넣는다 하더라도 당첨이 된다는 건 로또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관심도 두지 않았다. 평생 지금의 1층 집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바깥세상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행히 몇 년 동안 귀는 잘 틀어막았는데 보는 눈을 막지 못했다.


어느 날 외출 하기 위해 지하철역사 안으로 들어갔을 당시 귀신에 홀린 게 분명하다.

며칠 전에 없던 옆 도시 신축 아파트 홍보부스에서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찌 나를 알아보고 나한테만 손짓하고 있는 걸까?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나 오래된 구축 1층 아파트 사는 거 어찌 알았지? 게다가 청약통장 있는 것까지 용케 들킨 거야?'


다주택자도 청약 가능, 3년 후 전매 가능


정확히 대세에 휩쓸렸다고 핑계 대고 싶다. 위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2천 세대 가까운 대단지에 초품아, 수영장과 산책로를 품고 있는 대형 커뮤니티 시설만으로도 구축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흔들리는 갈대의 마음을 유혹하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드디어 엄마가 만들어주신 청약 통장을 쓸 기회가 온 것이었다.





별미래님! 110동 2003호에 당첨되셨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당첨이라고? 더군다나 20층이라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

드디어 내게도 볕뜰날이 오는 건가? 내 집에도 온종일 따스한 햇빛을 마주 할 수 있는 건가?

12층까지밖에 없는 지금 아파트 앞에서 자꾸만 20층이면 도대체 어느 정도 높이야? 허공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고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가끔씩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아파트가 잘 지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고 나중에 엄마가 오시면 같이 단지 안 사우나에 갈 계획까지 세웠다.

추운 겨울 한파에 매번 세탁기가 얼어서 1주일 넘게 빨래를 못해도 참을 수 있었다. 장마철 앞 베란다 틈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들어와도 너그러이 받아들였다. 엘베공사 기간 말고 1층이라 서러웠던 그 모진 시간들을 허허허 웃으면서 보낼 수 있었다. 나 이제 곧 20층으로 이사 갈 여자니까! 유후!



대단지라 공사기간이 3년이었다. 그 사이 1층 집은 집을 내놔도 팔리지가 않았다.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3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집도 안 팔리고 잔금을 치러야 할 날짜는 다가오고 있다. 초품아인데 그 학교는 내년 9월에 개교가 확정되어 아이들이 2번 전학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과 이 문제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그 사이 살짝 올랐던 집값은 '헉'소리 나게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신축으로 이사 가려면 다시 '억'소리 나는 은행빚을 져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지속적으로 연락이 오는 몇 군데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그 뒤로는 운명에 맡겼다.


"이 집이 먼저 팔리면 이사 가는 거고 신축이 팔리면 전매하는 거고!"




며칠 전 신축아파트 사전점검이 있는 날이었다. 청약통장의 주인이자 계약자는 당일 시간에 맞추어 도착을 완료했다. 신분확인을 마치고 나서 안내해 주는 매니저와 함께 지하주차장을 통과 후 지하 1층에서 엘베를 타고 20층에 도착했다.


"계약자님 축하합니다.

꼼꼼히 살펴보시고 하자는 모바일로 접수해 주시면 됩니다."


내 곁에는 사랑하는 내 가족이 아닌 낯선 여자와 그 여자가 부른 사검업체 직원 3명이 함께 있었다.




나를 싸그리 바꾸는 세가지 방법

: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오마에 겐이치 아저씨가 한 말씀)

- 지랄 발랄 하은맘의 십팔년책육아 중에서


- 신축 아파트가 지어지는 동안에 시간을 달리 쓰기 시작했다.

매일 걷고 읽고 쓰는 삶을 살기로 했고 함께 읽고 쓰고 함께 운동하는 (사이버) 동기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현실 앞에서는 이 동네가 너무 지겨워서, 실제로 맘 맞는 동네 아줌마가 없어서, 시댁이 아직도 너무 가까워서 그런 어설픈 변명 따위로 나의 공간까지 바꾸고 싶었다. 이사 갈 집이 있었으니 사는 곳까지 바꾸면 모든 게 완벽할 거라 믿었다. 그래서인지 신축 아파트를 더 애타게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검날 그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보고 오니까 어차피 빚내는 인생 그 집에서 빛내며 살걸 후회가 밀려왔다.

며칠 동안 20층의 후유증이 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어두컴컴한 1층집에서 시간을 달리 쓰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동굴 속을 헤매었지만 다행히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답을 찾았다.

사는 곳을 바꿀 수 없다 하더라도 공간을 바꿀 수 있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을 아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서 깨달았다.

이사를 하지 않고도 환경을 바꾸는 대대적인 '집안 이사'를 단행할 결심을 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13년 동안 (특히나 이 겨울) 나의 절친이 되어 준 별이 5개인 뜨끈뜨끈한 돌침대와 남편과 365일 한 몸인 리클라이너 소파를 당근에 내놓았다.

(현재 돌침대는 새 주인을 찾아서 떠났고 소파는 천갈이를 해서 변신을 할 예정인지 이번 주말에 업체 사람이 가져간다고 연락이 왔다)


앞으로 이 오래된 1층 구축 아파트에서 다가올 한파에 앞서 대대적인 '집안 이사'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나 조차도 궁금해지고 두근두근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로 신축 아파트에 대한 미련은 툭툭 털어내고 깔끔하게 잊어야겠다.





덧붙임) 신규 아파트에 모든 전매 절차가 마무리되면 나 역시 친정엄마에게 그 청약 통장에 쌓인 이자에 더 이자를 담아서 엄마에게 되돌려 드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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