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워 너를 담다

사랑은, 나를 다시 쓰는 일

by 열쩡

사랑을 믿지 않았다. 세상이 '무지개' 같은 다채로운 빛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믿었던 그 믿음이 깨지면서, 내 세상은 무지 '개' 같은 온통 깜깜한 밤이 되어버렸으므로.

믿을 건 오직 나뿐이었다. 더듬더듬 고샅을 헤매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지만, 돌아보면 나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주위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 위로, 사랑을 잃은 아이 하나가 늘 울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버려둔 엄마를 되찾고 싶었다. 엄마의 다정한 눈길이 그리웠다. 하지만 그녀의 눈길은 어느새 나를 넘어 더 먼 곳을 향해 있었다.

강산이 변하는 시간은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웠고, 그 사람과 함께 또 다른 사랑을 낳았다.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종종 두려웠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책임인지 헷갈렸고 이 사랑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내 안에는 엄마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나 또한 힘든 상황이 닥치면 도망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나는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를 결코, 그 시절의 나처럼 혼자 외로움을 견디게 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항상 아이를 주시했고, 아이에게 최적의 가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있었을 뿐,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아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엄마의 사랑 대신, 나는 자기애로 버텼다. 사랑을 갈망했지만, 받지 못한 사랑은 어느새 내 안에서 왜곡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그렇게 배움 없이 내 아이를 마주했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은 살피지 못한 채, 단순히 물리적인 외로움만 막아주고선 최선을 다했다며 위로했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끝내 나 자신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람.’

그 자각이 내 마음을 깊숙이 찔렀다. 사랑은 내 안에 나를 비우고, 상대를 채우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에게 진짜 사랑을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느리지만 사랑은 결국 나를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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