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를 다시 쓰는 일
나는 원래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끔 일하는 매장에 고객이 아이를 데리고 오면, 주위 사람들은 “어머, 너무 귀엽다!”라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나는 속으로 ‘뭐가 그렇게 귀엽다는 거지? 이게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하며 무덤덤해 했다. 그 무렵 나는 남자친구도 없었고, 결혼은 당연히 먼 나라 이야기였으며, 출산은 더더욱 나와는 무관한, 마치 저 우주 밖의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했다.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해서 이제는 지구 반대편까지도 하루 조금 넘는 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됐고, 우주의 비밀도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었다. 그래도 겨울에 만난 우리가 그다음 겨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봄이 오기 전에 아이를 만나게 된 일만큼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과 출산으로, 어느새 나의 삶은 조용히, 그러나 놀라울 만큼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다.
처음 세상을 마주한 아이는 자신을 돌보는 존재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탐색하느라 바빴다. 처음 아이와 마주한 나는, 나만을 바라보는 이 작은 존재를 향한 감정이 사랑인지 책임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거창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책임’이라고 말하기엔 아이가 너무 반짝였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심장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마음의 혼란은 틈만 나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뜸을 들이느라 전기압력밥솥이 칙칙 거리며 김을 내뿜는 순간, 아이는 그 소리에 혹해 압력추 쪽으로 갑자기 손을 뻗었다. 나는 깜짝 놀라 우는 아이를 안고 급히 싱크대로 달려가 아이의 손을 찬물에 식혔다. 그러고는 겁이 난 나머지 아이에게 큰 소리를 냈다. 다시는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지만, 정작 그 순간 다정하게 안아주지 못한 나 자신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 마음에 공감조차 못하는 네가 무슨 엄마야?” 하는 자책이 나를 때렸다.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나는 늘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 시험받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그 시험의 결과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의 행동에서, 말투에서, 문득문득 나 자신이 비친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 윤슬처럼 내 모습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