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흐려져도 사랑은 남는다

사랑은, 나를 다시 쓰는 일

by 열쩡

왜 나는 망각하는 걸까? 구름빵 뮤지컬에서 나눠준 모닝빵을, 구름빵이라 부르며 맛있게 먹던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그때 함께 먹었던 모닝빵이 최애 빵이 된 아이의 소중한 순간을.


아이를 만난 건 2014년, 몸보신을 위해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중복의 다음 날이었다. 세 번째 제왕절개. 이미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했던 고통은 여전히 나를 덮쳐왔고, 시댁에 맡겨둔 두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으로 정신이 아득했다. 하지만, 수유실에서 아이의 작은 배냇짓을 마주한 찰나, 지금 내가 이 아이에게 줘야 할 것은, 첫 모유가 아닌 첫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자란 오빠가 있다. 오빠는 아이와 나이 차이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엄마의 옆자리를 놓고 아이와 다툰다.

또 아이에게는 천성적으로 인류애를 장착하고 태어난 언니도 있다. 고작 21개월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가 엄마인 양 아이를 살뜰하게 보살핀다. 오늘 저녁 아이와 오빠의 식사를 챙긴 것이 바로 이 언니이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겐 서로가 단짝인 아빠, 그리고 엄마가 있다. "부모 사이가 좋으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라는 말은 보편적 진리가 아니다. 아이는 늘 엄마의 사랑에 목마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아이는 조용하고 무심하다. 그것이 타고난 성정인지, 혹은 스스로 내린 체념인지 알 길은 없지만, 가끔 잠결에 내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의 온기를 느끼면 미안함에 눈물이 난다. 어쩌면 아이가 좋아하는 모닝빵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엄마와의 몇 안 되는 추억인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을 맴도는 기억의 편린들이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돌덩이가 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내게는 셋 중 하나지만, 아이에겐 단 하나의 엄마이기에. 어리광 한 번 제대로 부려보지 못하고 커버린 아이의 시간이 아련하게 스며든다.

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부대)

기다려주지 못하는 건, 부모나 아이나 매한가지인 것을. 오늘은 아이를 꼬옥 끌어안고 말해줘야겠다.

"너는 나의 마지막 다소니야!"


왜 나는 단정하는 걸까? 구름빵 뮤지컬을 함께 본 아이가 좋아하는 빵은 당연히 모닝빵이어야 한다고. 모닝빵이 최애인 아이는 당연히 그 뮤지컬을 함께 본 아이여야 한다고.


마침 찾아야 할 사진이 있어 앨범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날 나와 뮤지컬을 본 아이는, 막내가 아니라 둘째였다. 자기도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동생이 태어난 뒤로는 응석 한 번, 투정 한 번 마음껏 부려보지 못한 아이. 그 아이가 안쓰러워, 단둘만의 데이트를 계획했던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시간의 먼지에 덮인 기억은 흐려지고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그날의 사랑만은 마음 깊은 곳에 별처럼 새겨져 오래도록 빛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사랑의 별들이 아이가 걸어갈 길을 따스하게 밝혀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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