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를 다시 쓰는 일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지만,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시간을 더 내어주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서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이 처음부터 적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동생들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일이라면, 그 허탈감은 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23년 1월, 아이가 어느 정도 컸다는 생각에 15년의 공백을 깨고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을 구하겠다고 아이에게 선언했을 때, 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 그냥 집에서 우리 기다려주면 안 돼?”
지금도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엄마인데, 이제는 엄마의 시간을 1/3이 아닌 1/6, 아니 그보다 더 적게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물론 아이와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 나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새벽 근무,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한 직장을 구했다. 퇴근 시간이 오후 3시이니, 가끔은 하교하는 아이와 만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버틸 수 있었다.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힘든 만큼 보람도 컸던 시간이었다.
1년 6개월의 계약 기간을 끝내고, 지금은 다시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며 수시로 문제집을 들고 와 이것저것 물어보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능 모의고사를 본 아이와 ‘수능에 한문이 있다, 없다’를 두고 옥신각신하다 덜컥 1억 내기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라떼’만 찾던 나는 ‘없다’를 선택했고, 보기 좋게 아이에게 졌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아이와 수다를 떨다가 자연스럽게 요즘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엄마 다시 일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첫째가 딱 잘라 말했다.
“거기 다니면 관절염 약값이 더 나와. 다니지 마!”
촌철살인 같은 말에 얄미운 마음이 들어, 나도 맞받아쳤다.
“엄마가 돈을 벌어야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나라도 더 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아온 아이의 한마디.
“내기에서 엄마가 진 1억, 매달 할부로 깎아줄게. 만약 일 나가면 다 받을 거야.”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의 말이 마치 솔로몬의 판결처럼 명쾌하게 느껴졌고, 마음 한편이 시원해졌다. 며칠 동안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하던 고민은 하늬바람에 실려 저 멀리 사라졌다.
우리의 일상은, 당분간 이 평범한 현재 속에 조용히 머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