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은 엄마의 이야기

사랑은, 나를 다시 쓰는 일

by 열쩡

나이의 무게쯤은 개의치 않은 듯, 방송통신대학교 3학년으로서 묵묵히 배움의 길을 걷고 계신 엄마는 올해 예순여덟이시다. 우연히 발을 들인 주부학교에서 늘 1등만 하시던 엄마는 그때 알게 된 공부의 즐거움을 지금까지 놓지 않고 꿋꿋이 이어오고 계신다.


한 달 전, 집에 김치가 떨어져 ‘엄마찬스’를 쓰러 친정에 갔다. 김치 몇 포기 얻어올 요량이었는데, 엄마는 과제 용지를 내밀며 조심스레 도움을 요청하셨다.
“이거 좀 도와줄래?”

과제는 지금까지 배운 중국 명시를 활용해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이미 에세이의 본문을 다 써놓으셨고,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글에 어울리는 시를 하나 고르는 일이었다. 나는 엄마의 글을 조용히 펼쳐 들고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식당에서 일하면 “중학교에 보내주겠다”는 말만 믿고 상경했지만 끝내 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했던 엄마의 깊은 아쉬움.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으며 누렸던 따뜻한 행복. 그리고 너무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붙잡고 버텨야 할지 몰라 헤매던 짙은 막막함까지. 그 모든 이야기가 엄마의 조용한 문장 속에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눈물이 났다. 엄마의 고단한 삶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던 내 이기적인 마음에 화가 났다. 아빠의 부재로 힘들었던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는데. 사는 게 버거울 때마다 ‘어른인 엄마보다 어린 내가 더 힘들다’는 자기연민에 빠져 엄마를 원망했다. 어린 남매를 홀로 책임져야 했던 엄마의 무거운 어깨는 생각조차 못 했다. 그저 내 아픔에만 몰두한 채, 엄마도 울고 계셨음을 잊고 살았다.


“엄마, 이거 엄마가 직접 쓴 거야? 나~ 몰랐네! 엄마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는지!”
“네 머리가 그냥 좋은 게 아니야~ 다 나 닮아서지!”

서로 직접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엄마와 나 사이에 얇게 켜켜이 쌓여 있던 앙금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리고 ‘나는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며 무의식중에 쌓아 올렸던 아이들을 향한 부담감도 아스라이 흩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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