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를 다시 쓰는 일
가득 담은 밥 위에 밥 한 숟가락을 더 올려주었다. 제육볶음처럼 자기 입맛에 딱 맞는 반찬이 있는 날이면, 밥을 다 먹고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딸을 위한 선심이었다.
“엄마, 돼지 키워?” 딸이 묻는다.
“돼지는 키워서 잡아라도 먹지~” 나는 웃으며 그 말을 맞받아친다.
나는 안다. 아이의 천명은 그런 유형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이미 자신의 천명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아이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그것을 알고 있으며, 또 알게 되리라는 것도. 이토록 밝은 아이를 보고 행복해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는 믿음이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도 안다. 자기가 들은 ‘돼지’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동물이라는 것을. 설령 그것이 뱀이나 개구리였어도 아이는 똑같이 여겼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차곡차곡 키워온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아직 다 자란 것은 아니지만, 아이는 그렇게 단단히 자라왔다.
어렸을 때, 아이는 매일 밤 잠자리에 누우면 물었다.
"엄마, 사랑해~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런데 엄마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네가 제일 좋다는 말을 한 번쯤은 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무슨 고집이었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늘 같은 대답을 했다.
그리고 서운해하는 아이에게 덧붙여 말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거야~ 엄마가 너한테 1순위라면, 너 스스로는 0순위라고 생각해야 해!”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사랑을 묻지 않는다. 엄마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 바로 자기 자신을 찾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아이에게 묻는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아이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나!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자기 자신을 안다미로 사랑하는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아이의 사랑은 넘쳐흘러, 천천히 나를 물들인다.
‘이 아이는 마치 자기 자신과 연애하듯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구나.’
거울을 보며 웃고, 실수에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사람과 닮았다.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히지 않은 채, 자신이 좋아하는 걸 당당히 표현하는 그 모습이 눈부시다.
“자부심은 오직 자신만이 자신에게 줄 수 있다”고 캐나다 작가 어니 J. 젤린스키는 말했다. 아이는 어쩌면 그런 자부심을 이미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누군가의 인정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한다는 걸 이토록 당연하게 여기는 아이.
오늘도, 내일도 자기 자신과 연애하듯 살아가며, 그 즐거움 속에서 더욱 환하게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