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이탈리아 북부 여행. #1-2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플로리안 카페, 라 페니체

by Starrwy

[ 너무나 베네치아 같은 풍경 ]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나와 관광지가 밀집한 지역으로 향하는 길. 여기저기 핀 꽃들이 햇빛을 받아 본연의 색을 반짝임으로 한 겹 더 감쌌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골목 이곳 저곳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예쁜 배경으로 엄마도 한 컷 찍어드렸다.


이윽고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보인다. 목을 꺾어서 올려다봐야할 정도로 큰 규모다. 하얗고 거대한 성당이 주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살루테(Salute)'는 '건강'과 '구원'을 의미하는데, 1630년 베네치아에 창궐했던 흑사병이 끝난 것을 기념하며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웅장한 돔과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라고. 내부까지 돌아보지는 않았는데, 미사 중인지 내부 행사 중인지 무언가 진행되는 소리가 들렸다. 성당 입구에 있는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에는 비발디 음악 연주회가 성당에서 열다는 소식이 적혀있었다. 성당에서 그런 연주회를 볼 수 있다면 아주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여행을 아프지 않고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길 바라며 짧게 기도한 후 성당을 나왔다.



배를 타고 운하 건너의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한다. 선착장에서 광장을 향해 걸어가다가 뒤를 돌자, 한풀 꺾인 태양이 비치는 운하의 모습이 장관이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앞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바로 앞엔 곤돌라가 지나다니는 찰나. 너무나 베네치아 같은 풍경에 넋을 잃었다.


가끔은 앞만 보며 달려갈 게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때도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일상에서는 자주 잊게 된다.



탄식의 다리를 잠시 구경했다. 탄식의 다리는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잇는 다리인데, 공화국 당시 두칼레 궁전에서 재판을 받은 죄수들은 형벌이 확정된 후, 이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이송될 때 다리에 난 창문을 통해 마지막으로 바깥세상의 풍경을 보며 탄식을 했다는 유래(?)가 있다. 유명한 바람둥이이자 탐험가인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갔다가 탈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과연 인기 관광지가 맞는지 그 아래를 곤돌라 여러 대가 지난다.



산마르코 광장에 도달했다. 아침의 택시기사가 조언해줬듯, 소매치기범이 매우 많은 곳이라 긴장도는 조금 올라간 상태. 조각이 화려한 성당, 궁전, 종탑을 구경하고 광장 가운데에 서자 이상하게도 시간 감각이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곳곳의 카페들에서는 콰르텟이 생음악을 연주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싼 광경. 몇 백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풍경이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저녁 시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광장 한 켠에 있는 플로리안 카페에 들렀다. 입구부터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느껴진다. 금색을 테마로 프레스코화가 온 천장과 벽에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어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작년 피렌체에 갔을 때 들른 카페 질리(Caffè Gilli) 보다 더 사치스럽게 꾸며진 곳 같다는 인상이었다. 두 카페 모두 1730년 전후로 지어졌는데, 이곳 카페 플로리안에는 괴테, 바이런과 같은 유명 인사들이 자주 들렀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의 출입을 허용한 최초의 카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여성들이 카페 조차도 출입하기 어려운 시대가 있었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너무 놀라울 따름이다.



메뉴를 한참 고민하다가 플로리안 스프리츠를 시켰다. 이탈리아식 식전주로 유명한 스프리츠를 카페 시그니처로 만든 듯 했다. 음료를 기다리며 찾아보니 플로리안 스프리츠는 전통적인 스프리츠의 틀을 따르면서 자체 개발한 로소 나르디니 리큐어(오렌지, 용담, 바닐라, 키나 칼리사야 등의 허브와 향신료로 만들어 독특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냄)를 사용하여 캄파리, 아페롤 등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스프리츠와는 다른 고유한 풍미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잠시 바깥에서 들리는 음악 연주를 감상하고 있자니, 감자칩과 올리브를 곁들인 주황빛의 칵테일이 두 잔 나왔다. 청량과 열정 그 자체인 칵테일을 한 입 마셨다. 일반 스프리츠보다 조금 더 쌉쌀한 맛이 나는 듯 하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베네치아의 카페에서 알콜이 들어가 조금 붉어진 얼굴을 부채로 식히고 있자니 더욱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칵테일을 홀짝이다가 저녁을 예약해둔 시간이 되어 일어났다. 베네치아에서 보기 드물게 널찍하고 현대적인 인테리어의 스테이크집이었다. 엄마와 나 둘 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일단 샐러드와 파스타, 스테이크를 시켰다. 샐러드는 꽤 먹을만 했지만 파스타가 좀 생각 외였다. 아스파라거스와 생선이 들어간 파스타였는데, 전반적으로 너무나 비려서 도저히 먹기가 어려웠다. 원래도 비린맛을 좋아하진 않아서 신선한 게 아니면 해산물을 자주 먹지 않는데 이번 음식은 정도가 지나쳤다. 스테이크는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맛있다고 하기도 애매한 부분. 최근에 동생과 나의 생일을 기념하여 한국에서 맛있는 스테이크집에 다같이 가서 아주 만족스럽게 먹었었는데 그 기억 때문에 비교가 되어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음악회 시간도 점점 가까워지고, 조금 걸으며 소화도 시키고 싶어 계산을 요청했다. 우리가 음식을 다 먹지 않은 상태에서 나가겠다고 하니 종업원이 깜짝 놀라며 아직 식사가 안 끝났는데 왜 나가겠다고 하는지를 물어왔다. 뭐라고 말할지 순간 고민이 됐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얼른 가야한다고 둘러댔다.




[ 라 페니체 극장 ]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니 나오는 라 페니체 극장.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서 깊고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라고 하여 기대가 됐다. 극장 이름인 '페니체(Fenice)'는 이탈리아어로 '불사조'를 의미하는데, 이름처럼 여러 차례의 화재를 딛고 다시 재건된 역사가 있다고 한다. 라 페니체는 조아키노 로시니, 빈첸초 벨리니, 주세페 베르디 등 이탈리아 유명 작곡가들의 걸작이 초연된 무대라는 의미가 있기도 하다고.


극장 내부는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말 그대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금색과 하늘색이 이 정도로 고급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카메라에는 다 담기지 않는 찬란함. 여기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게 일편 뿌듯해졌다.



우리는 2층의 박스석을 예약해서, 1층을 구경하고 위로 올라갔다.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니 열쇠로 우리 방을 열어준다. 아주 좁은 공간인데, 그 와중에 두 열이다. 두번째 줄의 의자는 앞 열의 의자보다 조금 더 높지만, 슬쩍 보기에도 편한 의자는 절대 아니었다. 콘솔 밖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엄마와 나는 일단 공연장에 있다는 것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나머지 자리를 구매한 사람이 도착하고, 공연이 곧 시작되었다. 1부는 성악이 함께하는 공연. 그런데 주위가 어두워지니 자꾸만 눈이 감긴다. 시차를 포함해 일단 너무 오랫동안 깨어있던 탓에 자꾸만 등을 대고 눕고 싶다. 인터미션에 나가서 숙소로 돌아가자로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조금 아쉬우신 것 같았지만 내 상태가 꽤 비몽사몽으로 보였는지 이만 나가자고 해주셨다.




[ 베네치아 마지막 낭만과 첫 번째 천사 ]


구글 지도를 켜서 리알토 다리의 선착장으로 가는 길. 문을 닫은 가게들의 쇼케이스에 진열된 각종 물건들이 반짝 거린다. 오페라 주인공처럼 화려한 옷을 입은 인형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괴함과 아름다움 사이.




해질녘 리알토 다리는 사람들로 석양을 보려고 하는 인파로 가득찼다.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다리로, 12세기에는 나무로 지어졌다가 자꾸 무너지자 더 튼튼하게 석조로 다시 지었다는데 1591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리알토 다리를 배경으로 몇 장 기념 사진을 남기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기차역으로 가는 수상버스를 타고 싶은데 대체 어떻게 승차권을 사는 건지 모르겠어서 서성이고 있자니, 어떤 분이 다가와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지 물어보고 탑승 위치와 방법을 알려준다. 결국 같은 수상버스를 타는 건데 베네치아 시민이 타는 곳과 관광객이 타는 입구가 다른 거였다. 그 분은 배에 타고 나서도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서 어떤 정류장에 내리면 되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천사님이 계시다면 혹시 이 분일까?


요란한 모터 소리를 배경으로 배가 나아가는데, 하늘이 점점 분홍색으로 변하며 우리에게 마지막 베네치아의 낭만을 선사한다. 예전 가족들과 마카오에 갔을 때 들렀던 베네치아 호텔이 생각났다. 호텔 내부에 산 마르코 광장, 리알토 다리, 그랜드 운하(곤돌라 포함) 등을 재현해두어서, 그때도 구경하기에 충분히 재미있고 색다른 느낌이었는데 하늘이 탁 트인 오리지널 베네치아 운하를 가로지르자니 감동이 더하다. 곤돌라는 아니지만 엄마도 꽤 맘에 드신 눈치.


좋은 추억이 또 다른 좋은 추억과 겹치며 더 커졌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은 대성공이다.


배에 함께 탔던 천사님은 우리가 내릴 정류장에서 제대로 내리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봐주었다.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배에서 내려 다시 기차를 타고 메스트레역으로 복귀했다. 기차역의 매점에서 물과 내일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 과일 조금을 샀다.


숙소에 들어오니 모든 피로가 우리를 잠식했다.

간신히 씻고 모든 건 내일 아침의 우리에게 맡긴다.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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