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이탈리아 북부 여행 #10 밀라노1

밀라노 대성당을 바라보며 즐기는 마지막 만찬,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by Starrwy


[ Bye, 돌로미티. Hi, 밀라노 ]



리조트가 너무 좋아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아침. 1박이 짧아 아쉽지만, 약간의 여운이 이 여행을 더 기억나게 할 것이라 생각하며 체크아웃을 했다. 차에 짐을 가득 실으니, 묵직해진 느낌이 이번 여행에서 쌓은 추억의 무게 같다.


베네치아에서 돌로미티에 왔을 때와 반대로, 병풍처럼 높던 산이 점점 낮아지고 바로 옆에 있던 산이 서서히 멀어지는 풍경.


안녕, 돌로미티.




밀라노까지 가는 길 중간 지점의 휴게소에 들렀다. 내일 밤이면 이탈리아를 떠나기 때문에 지인으로부터 부탁 받은 것과 약소한 기념품을 대신할 간식거리를 사기로 했다. 꽤 규모가 큰 휴게소라 구경거리가 많다.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고보니 재밌게도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작년에 사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스프레드, 과자, 부탁 받은 리큐어 등등. 계산을 해주던 점원은 피스타치오로 점철된 우리의 장바구니가 흥미로웠는지 피스타치오 제품의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우릴 쳐다보며 눈썹을 들썩였다.




휴게소에서부터는 엄마가 운전하셨다. 이탈리아에서의 운전을 여행 전부터 기대하셨었는데, 돌로미티에서는 풍경은 너무 아름답지만 도로가 너무 좁고 구불구불해서 고속으로 달리는 재미는 좀 덜했던 것 같다. 이제 신나게 달릴 수 있는 시간! 마치 레이싱 선수가 된 것처럼 속도를 높여본다. 너무 신나!



가르다 호수를 끼고 있는 시르미오네를 스쳐지나 밀라노 입성. 시내로 진입하자마자 ‘아, 대도시구나’ 싶다. 건물도 높고 차량도 많고 신호 체계도 지금까지의 길보다 훨씬 복잡하다. 참고로 밀라노 도심(Area C)에는 거주민이거나 전기차/하이브리드 차량만 진입할 수 있는 구역 제한이 있으니 렌터카 여행 시 주의해야 한다. (진입 시 통행료를 내야 하거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가르다 호수가 보이는 시르미오네



[ 네 번째 천사와 렌터카 반납 ]


차량 반납 전 마지막으로 기름을 가득 채우고 차를 인수할 때 받았던 서류에 기재된 반납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엉뚱한 업체다. 건물 지하로 내려오기 전 간판에 우리가 대여한 업체명이 없고 렌터카라는 간판만 있을 때 눈치를 챘어야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입구가 아주 좁고 경사가 급해 차를 돌리기 어려운 상황에 엄마와 나 모두 낯빛이 어두워지려던 찰나, 한 직원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제가 차를 돌려 지상으로 빼드릴게요.” 능숙하고 빠르게 차를 빼내 준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베네치아의 선착장, 돌로미티의 산장과 케이블카 직원에 이어 이번 여행에서 만난 네 번째이자 마지막 천사다. 그가 알려준 방향으로 가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간판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무사히 반납 완료.



이제 뚜벅이 신세가 되어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이동한다. 지도 상 6분 거리지만 뙤약볕에 짐까지 지고 가니 체감은 30분은 되는 것 같다. 엄마께 죄송한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데, 그 때마다 계속 괜찮다고 웃어주시는 엄마 덕분에 힘을 낸다.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안내 받은 대로 두 번의 엘리베이터와 두 번의 잠금장치를 지나 입성한 오늘의 숙소. 주인의 센스로 미리 틀어놓은 에어컨 냉기가 우리를 반겼다. 천국이 따로 없다.


널찍한 거실과 화장실, 침대. 주인의 배려심이 돋보이는 부분은 침대 옆의 귀마개였다. 숙소가 큰길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었을 것 같은데, 다행히 소음은 크지 않았다. 건물 자체의 보안이 철저해서 안심이 되었다.




[ 600년의 걸작, 밀라노 두오모 ]


원래 계획대로라면 운하 근처(Navigli)에 가서 와인도 한 잔 하며 낭만을 즐길 생각이었지만, 개운하게 씻고 시원한 바람을 쐬니 몸이 늘어진다. 홍삼을 한 포씩 먹고 잠시 쉬면서 무거운 짐을 들었다놨다 하면서 깎인 체력을 좀 더 보충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밀라노 대성당 근처로 예약해 두어서, 근처를 좀 둘러보고 갈 수 있게 조금 이른 시간에 숙소를 나섰다. 중앙역 앞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데, 어디에서 티켓을 사야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여기 저기 줄이 늘어서 있어서 어디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챗gpt에게 물어보니 역사 내 매점(Tabacchi) 같은 곳에서 판다고 한다. 1회권은 2.2유로, 1일권은 7.6유로다. 1일권은 개표 후 24시간 동안 탈 수 있다. 우리는 내일도 사용할 목적으로 1일권을 샀다.


지하철역 출구로 올라오자, 조금씩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이 모습을 드러낸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압도적’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걸까. 십여 년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엄마와 함께 와서 보니 감격스러움이 더해져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 거대한 대리석 건축물은 완공까지 무려 약 600년이 걸렸다고 한다. 1386년에 착공해 1965년에야 마지막 청동 문이 달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에서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르고 싶어 건축을 서둘러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고.


밀라노 대성당 가장 높은 첨탑 위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마돈니나(Madonnina)’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수 세기 동안 도시를 굽어살피며 밀라노의 영적인 수호자 역할을 해왔다고. 과거 밀라노에는 ‘그 어떤 건물도 마돈니나보다 높을 수 없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는데, 도시가 현대화되며 고층 빌딩이 들어서자 그 규칙을 깨지 않기 위해 건물 옥상에 마돈니나의 복제품을 설치하는 솔루션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성모님이 여전히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심'을 상징하도록 말이다.




바로 옆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역시 명품샵의 화려함과 건축의 웅장함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닥의 모자이크와 유리 천장의 환함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 이태리 정취와 마지막 만찬 ]


저녁 식사는 밀라노 대성당의 파사드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2층 식당. 엄마는 “이태리 정취를 느끼기에 최적”이라며 만족해하셨다. 식전주로는 Hugo를 주문했다. 엘더플라워 시럽과 프로세코가 들어간 이 술은 남티롤 지역에서 처음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쓴맛 없이 청량하고 상쾌해서 알게 모르게 쌓인 여행의 피로를 잊기에 딱이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새우 요리는 익히지 않은 생새우라 처음엔 당황했지만, 한 입 먹어보니 기우였다. 열을 가하지 않아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식감과 아래 깔린 소스의 조화가 훌륭했다. 이어 나온 송아지 튀김(Cotoletta)과 잿방어 튀김도 훌륭했다. 창가 너머로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두오모를 바라보며, 엄마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기념했다.




[ 스타벅스의 금의환향 ]


식사 후 산책길, 거리엔 버스킹 음악이 흐르고 귀가 호강한다.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밀라노에 들렀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옛 중앙우체국 건물(Palazzo delle Poste)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이곳은 들어서자마자 높은 천장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에 압도된다.


다음 날 참여한 투어 가이드의 설명과 추가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꽤 흥미로웠다. 커피 자부심이 남다른 이탈리아에 스타벅스가 깃발을 꽂기까지,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사실 스타벅스의 전 CEO 하워드 슐츠는 1983년 밀라노의 에스프레소 바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지금의 스타벅스 제국을 건설했다. 말하자면 밀라노는 스타벅스에게 일종의 ‘정신적 고향’인 셈이다.




이 상징적인 자리에 스타벅스가 들어서기까지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Blackstone)'의 치밀한 전략이 있었다고 한다. 블랙스톤은 불황기에 처했던 이탈리아의 노후화된 역사적 건물들을 매입하며 일명 '밸류애드(Value-add)'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가치가 떨어진 오래된 건물에 스타벅스와 같은 핵심 점포를 입점시켜 건물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린 것이다.


물론 현지인들의 반발은 거셌다. "피자 종주국에 냉동 피자를 파는 격"이라며 매장 앞 야자수를 불태우는 시위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이에 스타벅스와 투자자들은 정면 돌파 대신 ‘장인 정신’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약 200억 원(2,000만 유로)이 넘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외관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되, 내부는 이탈리아 장인들과 협업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수만 개의 대리석 조각을 수작업으로 맞춘 ‘팔라디아나’ 양식의 바닥과 토스카나산 대리석을 통째로 깎아 만든 바(Bar)까지. 그 섬세한 디테일을 보니 밀라노에 온다면 한번은 꼭 방문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로스팅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커피 향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곳에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스타벅스를 나서니 어둑어둑해진 풍경. 막 공연이 끝난 스칼라 극장과 그 앞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상을 보고 다시 갤러리아를 통과해 밀라노 대성당의 야경을 감상했다. 조명을 받아 빛나는 밤의 모습도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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