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주말의 도피 #1

11월 밤 비행기, 센트럴 올드타운 나들이

by Starrwy


[ 핸드백 하나 들고 떠나는 밤 ]


한 주가 무사히 끝난 금요일. 퇴근길은 언제나 그렇듯 막힌다. 하지만 그 붉은 테일램프의 행렬조차 설레는 건, 주말을 틈타 여행을 떠나기 때문. 출장으로 먼저 가 있는 동생과의 토요일 단 하루를 위해 홍콩으로 향한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가벼움’. 저가 항공사인 홍콩 익스프레스를 예매하며 아무런 수하물도 추가하지 않아, 오직 핸드백 하나만 들고 탄다. 짐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자유다. 훌쩍 떠나는 여행.

몸도 마음도 일정도 가볍다.


인천의 야경을 뒤로하고 책을 읽다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몇 년 만의 홍콩인지. 작은 창 밖으로 내려다본 홍콩의 바다 위엔 크고 작은 선박들이 밝게 불을 밝히고 있다.




수속이 끝나자마자 게이트를 나오며 이심을 연결하고 우버를 호출했다. 홍콩 공항에서 우버를 탈 때는 주차장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기사님이 메신저로 픽업 위치(Car Park 번호)를 보내준다. 나는 1번 주차장의 3번 자리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우버 기사님은 새벽의 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대낮같이 환한 상하역장이 생소하다. 부산의 밤바다와는 또 다른, 대륙의 거대한 기운이 느껴지는 풍경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새벽 2시 즈음 도착한 숙소. 리셉션에서 키를 받아 조심스레 문을 여니 그 소리에 선잠에서 깬 동생이 어둠 속에서 “언니?” 하고 반긴다. 발표를 마치고 피곤했을 텐데, 배고플 나를 위해 편의점 간식을 종류별로 사다 둔 동생의 마음이 고맙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오랜만에 동생과 같이 잠드는 밤. 어렸을 땐 같은 방을 써서 맨날 같이 잤었는데.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안정감과 향수에 휩싸여 홍콩까지 오느라 정신이 없었는데도 금방 잠이 들었다.



[ 차찬텡 - 홍콩의 낭만과 현실 사이, 밀크티와 드립 커피 ]


눈을 뜨니 창밖으로 뒷산이 보인다. 아침 일찍부터 러닝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에너지를 받으며 준비 완료. 숙소 근처 차찬텡(Cha Chaan Teng)에서 홍콩식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동생은 지도를 슥 보더니 자신감 있게 길을 안내했다.


인기있는 집이라더니 벌써부터 줄을 서있다. 홍콩식 프렌치토스트와 밀크티를 주문했다. 땅콩버터가 발라진 프렌치토스트는 ‘겉바속촉’의 정석. 칼로리를 잊게 만드는 맛이다. 하지만 특유의 노포 감성,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곳곳에 쌓인 먼지와 묘한 냄새가 섞인 위생 상태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기대했던 밀크티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는 연유의 묵직함보다는 시럽이 들어간 깔끔한 클래식 밀크티 파였나 보다.




입안을 헹구고 싶어 근처 카페로 피신했다. 원두의 향을 맡아보라며 건네는 직원의 친절함과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드립 커피를 앞에 두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동생과 마주 앉아 나누는 이 여유로운 대화가 그리웠다. 여행의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맛있는 커피 한 잔에 있을지도 모른다.




[ Old Town Central: 가장 홍콩다운 풍경 속으로 ]


이제 본격적인 시내 구경. 홍콩 여행의 필수품 옥토퍼스 카드는 앱을 다운받아 애플페이에 등록해두면 세상 편하다. 지갑에서 현금, 카드를 꺼낼 필요 없이 편의점, 트램, 식당 어디서든 휴대폰 하나로 해결되기 때문. 홍콩의 시그니처 2층 트램을 타고 이동하다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진 공원을 발견해 충동적으로 내렸다. 커다란 트리와 기차 장식. 계획에 없던 곳에서 만난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다.


주말을 맞아 분주한 센트럴 지역에는 성큼 다가온 성탄절 테마의 제품들을 파는 가게들과 중국/홍콩 느낌을 물씬 풍기는 소품들을 모아 파는 가게들이 여럿 있었는데 디스플레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홍콩은 알코올 도수 30% 이하의 주류에 대해 세금이 0%라 와인 애호가들에겐 천국 같은 곳이다. 바틀샵에는 탐나는 병들이 가득하지만 내겐 캐리어가 없다.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점심은 구글 평점이 좋은 딤섬집으로 골랐다.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많은 조용한 곳. 제철인 게살과 돼지고기가 들어간 시그니처 딤섬과 샤오롱바오, 관자가 올라간 새우 딤섬을 주문했다. 따끈한 차와 함께 곁들이니 속이 풀린다.




[ PMQ의 축제 같은 활기, 그리고 커피 수혈 ]


벽화 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PMQ가 나타났다. 옛 경찰 기숙사를 개조했다는 이곳은 두 개의 건물이 연결된 독특한 구조 안에 스튜디오, 옷 가게, 아기자기한 소품샵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층층이 들어찬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니, 문득 학창 시절 축제 날 다른 학교에 놀러 온 듯한 풋풋하고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홍콩의 습도와 언덕길에 체력은 이미 방전 직전. 동생이 꼭 가보고 싶다던 하프웨이 커피(Halfway Coffee)로 급히 피신했다.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북적이는 인기 카페였지만 운 좋게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침묵에 빠졌다. 그저 멍하니 앉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쉬는 그 순간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빈티지한 홍콩식 찻잔에 담긴 라떼 아트는 기대와 명성에 조금 못 미쳤지만(?), 진하고 고소한 커피 맛만큼은 흐릿해진 정신을 번쩍 깨우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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