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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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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Nov 22. 2024

"성공 못해도 돼. 밥 꼭 챙겨 먹고."

그래도 되는 거야?

"성공 못해도 돼. 밥 꼭 챙겨 먹고."


  드라마에 풍덩 빠졌다. <정년이>. 국극에 도전하는 정년의 좌절과 성장을 그린 이야기다. 난생처음 알게 된 국극. 이젠 드라마 덕분에 흥미를 넘어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기분이 커진다. 국극은 무엇일까? 1945년 해방 이후 여성들이 모여 창극을 통한 공연 예술이다. 국악의 소리, 연기, 춤이 엉킨다. 연극 같기도 하고 뮤지컬 같기도 한 종합극이다. 


  드라마 <정년이> 줄거리는 간단히 정리해 볼까? 정년은 목포 소녀다. 어려서부터 소리를 하려 하지만, 번번이 어머니는 막아선다. 하늘이 내린 재능을 막는다고, 숨긴다고 없어지지는 않는다. 우연한 기회는 정년이를 서울로 이끈다. 쉽지 않다. 기댈 곳 하나 없는 곳에서 정년은 소리만 의지한 채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마음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정년이 목포를 떠나는 과정이다. 정년이는 창고에 갇힌다. 어머니는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소리를 못하게 막는다. 국극 입단 시험날이 다가온다. 지금 출발해도 늦는다는 소식을 정년이 언니 정자가 듣는다. 짧게 갈등한 정자는 결연한 의지로 자물쇠를 파괴한다. 정년은 탈출한다. 정자와 정년은 달린다. 서울로 떠나는 동생을 향해 언니는 진심을 담아 몇 마디 한다. 


  "암시롱도 않다니까. 야 그런 꿈이 있다는 것도 다 니 복이다, 어? 

   니 마음이 정 그러면 가서 끝까지 한번 부딪혀 봐.

   성공 못 해도 자꾸 집 생각나도 서러운 생각 들면 돌아와!

   내가 밤에도 문 안 잠글랑게, 응?"

   (중략)

  "밥 꼭 챙겨 먹고."


  정년이 성공한다면,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바로 정자일 테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칭찬을 하는 사람. 힘들 때 세상이 모두 나를 속인다 느낄 때. 어디 하나 받아주는 곳 없어 내가 쪼그라들 때. 서러운 생각에 나마저 내가 필요 없다 느낄 때. 그때 주저 없이 자신을 받아 줄 사람이 바로 정자다.


  세상에서 진 짐을 기꺼이 언제나 함께 지겠다는 다짐. 모든 걸 잃어버린다고 해도 자신을 나눠서라도 채워주겠다는 의지. 이 한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 두려움은 한 없이 작아지지 않을까? 언제든 피할 수 있는 인간 도피처가 바로 정자다. 그것도 문도 안 잠그고 언제나 기다린다는 말에 뭉클했다.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니, 저항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게는 그런 존재가 있을까? 위험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위해 끝까지 부딪혀보라는 응원. 성공 못해도 괜찮다고, 서럽다면 언제든 오라는 믿음을 남기는 이. 같은 장면은 여러 번 돌려보다 공자 말씀이 떠오르더니 모양을 바꾼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라."


  "남이 나에게 믿음을 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에게 믿음을 주지 못함을 걱정하라."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더니, 무의식 중에 난 정년이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누군가의 짐을 함께 질 수 있을까? 모든 걸 잃어버리고 온 누군가에게 날 떼어내서 줄 수 있을까? 성공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오는 이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이 꼬리를 물다 멈췄다. 아직은 정자처럼 모든 걸 내어주긴 내 그릇이 작은 모양이다. 함께하겠다는 말도, 나눠주겠다는 말도 아직이다. 다만, 정자가 한 말 중 하나는 할 수 있겠다 싶다. 내게 소중한 이들과 이야기 끝에 하고픈 말을 기억에 아로새겨본다. 


  '밥 꼭 챙겨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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