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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Sep 04. 2022

할머니 거긴 어때?

15년 전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할머니는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벌써 15년 전 일이다.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경상북도 영주'까지 가니 벌써 장례식장이 차려져 있었다. 주무시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장례 3일 차 되던 날 입관을 했다.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입관할 때 볼래?"


"아뇨"


그렇게 끝이었다. 매년 성묘를 가지만, 아직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실감 나지 않는다. 할머니 집에는 더 이상 사는 분이 없어 폐허나 다름없다. 하지만, 언덕을 올라 그곳에 가면 아직도 할머니가 계실 것 같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것도, 입관을 보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할머니가 계시는 그곳은 어떨까? 편지를 써본다.


To. 할매


할매! 나야. 매년 성묘를 하러 가는데, 알고 있지? 3년 전까지만 해도 멧돼지가 할머니 묘를 파더라고. 약도 치고 기피제도 심어 놓고 울타리도 쳤지. 효과는 없어지만. 웬일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없더라고. 다행이야. 편지를 쓴 건,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해서야. 아직도 어디 계실 것 같거든. 혹시 어디에 계셔? 꿈에도 한번 안 나오시더라.


장례식 마지막 날 입관이란 걸 하잖아. 나 그때 할머니를 볼 용기가 없었어. 어른들은 입관을 봐야 정을 떼어 내고 살 수 있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더 보기 싫더라. 그래서 지금까지 할머니가 어디에 계신다고 생각하나 봐. 음 나쁘진 않은 것 같아. 그냥 가끔 할머니 생각하면 먹먹할 뿐이야.


할머니 생각이 언제 제일 나는 줄 알아? 두부만 보면 그렇게 할머니 생각이 나더라. 기억나? 가을에 두부 해주시겠다고, 마당에다 솥 걸어놓고 두부 해주셨잖아. 내가 언덕 아래에서 소리 내면서 올라가면 할머니는 언덕 아래로 뛰듯 내려오셨잖아. 두부만 보면 생각나더라고.


할머니는 어디에 계셔? 거긴 어때? 여기 계실 땐 허리도 아프고, 일을 많이 하셔서 손가락도 많이 휘셨는데. 거기선 아프지 않으시지? 맞다. 할머니 액션 영화 좋아하셨잖아. 거긴 영화관도 있어? 아참, 할아버지도 만났어? 거기선 할머니 속상하게 하시진 않으시지? 그럼 좋겠다.


내가 너무 조잘거렸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 편지를 보내니 한결 좋다. 어디다가 붙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할머니 시간 되시면 꿈에 와서 주소라도 알려줘. 편지 보내볼게. 답장을 쓸 수 있으면, 거긴 어떤진 무얼 하고 지내시는지도 알려줘.


할머니 보고 싶어. 편지는 가끔 쓸게. 할머니랑 이야기하는 느낌이야.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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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생각할 때는 먹먹할 뿐이었는데, 어딘가 있으실 거라 생각하고 편지를 쓰니 눈에서 그리움이 왈칵 쏟아졌다.


뜨거운 여름에서 서늘한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따뜻했던 할머니가 한층 더 그리워진다. 할머니가 계신 곳은 어떨까?


할머니 거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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