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보고 왔다. 이순신 장군님은 여전히 고독해 보이셨고, 빌런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강해보였다. 하지만, 불패의 이순신 장군님은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통괘함을 제대로 보여주셨다.
우리의 영웅이셨던 이순신은 그 삶 자체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단순히 존경심을 넘어서 내가 그의 일대기를 힘들때마다 꺼내 보는 건 바로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분은 무능하고 시기심 많은 왕과 상관을 모셨고, 능력 없이 자리만 차지하려는 동료가 있었으며, 아무런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조직에서 일을 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부하들을 이끌고, 강한 적에 맞서신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너는 충분히 괜찮은 환경이니 노력해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감사한 마음을 편지에 적어 과거로 보내본다.
To 전라좌수사 이순신
대한민국 전라남도 여수시 전라 좌수영 본영
전라좌수사 이순신께
안녕하십니까.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편지라 당황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장군께서는 맑은 날에 거북선에 지자, 현자 포를 설치하고 쏘셨을 겁니다. 성공적이라 다행입니다. 군사기밀을 어떻게 아냐구요? 지금은 다 알 수 있습니다. 일기 꼼꼼히 쓰신게 지금은 세계에서 보호하는 기록유산이거든요. 그래서 다 압니다. 저도 읽었거든요. 그리고 장군님이 주인공인 영화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이기도 합니다. 서울 한복판에는 장군님 동상이 커다랗게 서있습니다. 영화는 뭐고, 한국은 어디고, 동상은 무슨 소리냐구요? 그러실 만합니다. 여긴 미래거든요.
장군 앞에는 시련이 많을 겁니다. 그것을 예상하시고 열심히 준비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괴롭히는 사람이 가까이에도 있을 것이고 멀리에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지원이라는 건 있을 수 없을 테지요. 그래도 항상 길을 찾을 실겁니다. 무척 힘든 일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제가 확실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장군께서는 지금부터 지는일이 없으실 겁니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고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기실 겁니다. 제가 알거든요.
천기누설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이만 하겠습니다. 편지를 보낸건 장군께 감사해서 입니다. 제가 힘들때 마다 장군의 삶을 살펴보거든요. 시련을 이겨내는 모습에 저는 위로를 받습니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위협을 받더라도 그러한 삶을 살아낸 모습은 당시에도 그리고 미래에 있는 사람에게도 글로 전해져 용기를 주게 합니다. 장군께서 앞으로 처하실 상황에 비하면 제가 가진 문제는 모두 사소해 보이기 까지 하거든요.
또 감사할 것은 앞에서 말한 일기 때문입니다. 과중한 업무 중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히 쓴 일기가 감사한 이유는 그 당시에 장군의 생각을 생생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시더라도, 전쟁 준비에 바쁘시더라도 일기를 쓰셨더라구요. 그리고 그 일기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심이 담겨있기도 하구요. 가끔 '원'장군 욕을 많이 쓰셨던데, 그럴만 합니다.
시간은 참 꾸준히 흘러갑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안하든 말이죠.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제 생각도 날아가기 일수인데, 이걸 글로 붙아 놓는 일기가 제 삶이 참 중요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현재의 답답함을 쓰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되더라구요. 그러니 장군께서도 그렇게 일기를 쓰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장군의 말 한마디가 병사들을 동요하게 할 수 있으니,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싶더라도 못하셨으니 말이죠. 일기를 쓰시며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도 제 마음을 일기로 다독입니다.
이제 전쟁의 시작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또 보내드릴까합니다. 위험의 순간에 제 편지가 장군에게 도달할 테니. 늘 힘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곧 편지 쓰겠습니다.
2022.08.08 06:54, 고객님 EMS(EE*********KR)의 국제 과거운송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 우체국(1588-1300)
과거로편지를 보내는 실없는 소리를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실없다. 현실적인 일만을 한다고 꼭 좋은건 아니니, 잠시 현실을 떠나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이순신의 삶은 내게 위로가 되고, 그가 가장 사적인 생각이 담긴 일기는 내게 일기를 써보라고 권하는 것 같았다. 위로와 글쓰기를 권하는 장군께 꼭 한번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 써본 편지다. 그대도 혹시 과거의 인물에게 써보고 싶은 편지가 있는가? 이번이 기회다. 한번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