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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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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Dec 20. 2024

"태풍이 오면 저항하지 마세요."

지나가길 기다려야 합니다.

태풍이 오면 저항하지 마세요.


  평소 팟캐스트를 듣는다. 재미있는 대화에 끼는 기분도 들고, 양질의 정보를 얻기도 하니 곁에 둔다. 거기다, 출연하는 분들의 삶을 듣게 될 때는 뭉클하다. 영상이 대세이지만, 난 여전히 목소리로 전달되는, 라디오 같은 팟캐스트를 듣는다.


  최근에는 독특한 분의 인터뷰를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3명의 자식들이 요트에 의지해 지구 반바퀴를 돈 가족의 이야기다. '낭만'을 실현하며 사는 가족들 같았다. 그리스에서 시작한 여정은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를 돌아 한국에 까지 왔다. 


  우여곡절을 듣고 있으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가 걱정스럽게 눈썹과 입꼬리가 내려가기도 했다. 여러 에피소드 중 기억에 오래 남은 건 태풍을 만났을 때다. 바다는 멋져 보이지만, 정말 강한 힘을 가진 곳이다. 자연이 성을 한 번 내면 무섭다. 지구를 정복했다며 으스거리는 인간이 초라해지기까지 한다. 


  여행을 떠난 가족들도 태풍을 만났다. 여러 대처 방법을 말해주셨다. 돛을 내리고, 속도를 늦추는 것. 종합하면 한 문장이 된다. 


  "태풍이 오면 저항하지 마세요."


  사람마다 지는 무게가 다를 테지만, 돌아보니 몇 번의 태풍을 만났다. 물론 격랑을 만나 배가 무지 흔들리는 날들도 있었다. 최근에도 강한 바람에 디딜 수 없는 파도가 날 흔들기도 했다.  아무리 무난한 삶에도 위기는 있고, 고통이 섞여 들어간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었다면 다들 피하고 살았을 테다. 어려움을 피하려는 최선의 선택은 나중에 보면 아닌 경우도 있으니, 우리는 운명적으로 위태로운 지경을 만날 수밖에 없지 싶다.


  거기다, 내 노력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서 오는 일이 더 많다. 어떤 일이 되는 것을 운칠기삼이라는 말로, 때로는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지 않을까?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생각보다 의지로 돌파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자책을 부지런히 복습하고 예습까지 한다.


  안다. 위기는 필연적이다. 안다. 내 탓이 아닌 경우도 잦다. "잠잠한 바다만 항해하게 된다면 훌륭한 항해사가 나올 수 없다"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말을 떠올리지만, 힘들긴 매한가지다. 이해는 하지만, 파도가 들이치면 불안하고 떨린다. 격한 바람이 지나가고 앉아 있으니, 또 올 파도에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팟캐스트가 단서를 준다. 돛을 내리고 속도를 줄인다. 저항하지 말고 태풍에 몸을 맡긴다.


  가는 속도를 늦춰 천천히 이 태풍이 끝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상처도 입는다. 요트 일부가 망가지고, 때로는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 영원히 부는 태풍이 없고, 끝나지 않는 고통은 없다. 그때까지 숨을 죽이며 크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노련한 항해사가 되는 일도, 예리한 두뇌로 위기를 피하는 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커다란 태풍이 오고 파도가 나를 친다면, 돛을 내리고 속도를 늦출 뿐이다. 내가 크게 다치지만 않길 바라며. 다음 맑은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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