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일하고, 돈 벌러 다녀요.
"일이 재미있니? 아니면, 돈 벌러 다니니?"
따르는 선배가 있다. 가끔 통화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보통 선배가 전화를 해주시고, 가끔 내가 전화를 한다. 바쁘셨던 모양이다. 두 달이 가깝게 통화를 못했다. 내가 했어야 했는데 라는 말은 자주 한다. 무심한 후배임에도 계속 전화를 해주시는 선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오랜만에 전화를 하셨다.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는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어떤지, 괴로운 일은 없는지 물어보신다. 선배는 묵묵히 들어주신다. 경청의 힘을 늘 느낀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했어?"와 같은 경쾌한 반응만 하신다. 한참 내가 떠들고 있다 보면 고민은 사그라든다.
이번에는 한참 들어주시고는 적어두고픈 문장을 날리셨다.
"일이 재미있니? 아니면 돈 벌러 다니니?"
일하면 생각하는 이론이 있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스로우가 주창한 욕구 위계 이론이다. 우리 욕구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는 논리다. 가장 아래에는 생리적 욕구. 삶 자체를 유지하는 꼭 충족되어야 하는 욕구다. 의식주가 여기에 해당된다. 다음은 안전 욕구. 먹고 자는 일이 해결된 다음에는 안전하고 싶다. 생리적 욕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신체적인 위험이 없어지길 바란다.
위 층에는 소속감과 애정 욕구가 있다. 인류는 집단을 이뤄 지구를 정복했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사랑 욕구는 확장된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인정받고 싶어진다. 존중욕구는 지위를 얻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자신의 지위가 확보되면 자아실현을 목표로 한다. 자신기 가진 잠재력을 키워나간다. 마지막으로 자아 초월 욕구.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을 이른다.
돈은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감 및 애정 욕구를 위한 귀한 도구가 된다. 각 단계가 완전히 채워진다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생리적 욕구보다 소속감과 애정 욕구를 지향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최소한의 생맂ㄱ 안전 욕구만 채워진다면 자아실현을 향해 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이든 돈과는 완전히 무관하게 살긴 어렵다. 일은 어떨까?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를 채워주는 돈을 벌 수 있고, 일하는 곳에서 소속되어 일을 하게 된다. 운도 따르고 실력이 있다면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 되며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리고 끝에는 자아실현으로 가는 더 큰 도구가 되기도 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로 성과가 나고, 인정받고 성과가 내 자아실현으로 이어진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될테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잦다. 돈을 벌려고 꾸역꾸역 나가 일을 한다. 자율성 하나 없는 일에 자아실현은 요원하다. 선배가 전한 문장에는 돈 버는 일과 나만의 일을 구분되어야 한다는 뜻이 스친다.
돈 버는 일로 생리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있다. 간혹 사회적 욕구와 인정 욕구를 채우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나만의 일이 있다면 상관없지 않을까? 나만의 일이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를 채울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지만, 그를 통해 사회적 욕구, 인정 욕구 나아가 자아실현 욕구를 채운다. 자주 일하고, 돈 벌러 다니는 삶. 매스로우가 말한 단계를 모두 채울 수는 없겠지만, 균형 있게 채우는 일. 하나쯤 가져야 살아갈 이유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통화 끄트머리. 선배의 말을 까먹기 전에 적어둔다. 귀한 글감이다. 갑자기 끊어진 말에 선배는 나를 찾으신다. 뭐 하고 있냐고 묻기에 답했다.
"일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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