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존중과 합의로 자라난다.
"함부로 말하지 마, 정당한 가치를 받고 말해."
"보며 배우는 교육"
박사다. 운이 좋아 믿고 따를 스승님을 만났고, 때마침 좋은 연구과제가 있었던 덕분에 박사를 할 수 있었다. 석사 2년 박사 4년. 6년 동안 거친 훈련을 받았다. 대학원은 도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스승과 제자가 인연을 맺고 훈련을 한다. 물어보면 척척 답을 해주는 AI가 나와있고, 차는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운전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방법이 아닐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론 지식 전달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책만 있으면 될지 모른다(사실 그렇지도 않다). 현실은 아니다. 논문에 적힌 실험 방법을 그대로 옮긴다고 바로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논문을 쓴 사람이 거짓을 이야기한 일일까? 아니다. 무한히 쓸 수 없다. 지면에 한계가 있다 보니, 다 적지 못하고 간략하게 적어둔 탓이다. 논문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있다면, 오프라인으로 사람을 만나는 학회는 필요 없지 않을까? 글 사이사이에는 노하우가 스며있다. 글로 모두 전달할 수 없는 지식이 있다. 지식뿐만 아니다, 인간으로 연구자로 도덕도 배우게 된다. 인성이 경쟁력이다. 실력이 좋든, 운이 좋든, 비상하여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끝없이 올라갈 것 같지만, 숨길 수 없는 인성이 드러나 추락한다. 지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된다. 스승이 시간으로 퇴적해 쌓아 올린 체험을 전달하는 과정 전체가 대학원에서 이루어진다. 6년 동안 거치며, 단순히 학위를 받기만 하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곰곰 생각해보기도 하고, 가르침처럼 살아가는 스승님을 따라 묵묵히 걷기도 했다.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 정당한 가치를 받고 말해."
박사과정 때다. 교수님을 따라 경기도 전체를 출장 다닌 적이 있다. 과제는 가축 분뇨를 퇴비화하여 액비로 만드는데, 현실 조사가 목적이었다. 실험실과 논문에만 묻혀있다 현장을 보니 생경했다. 글 몇 줄과 숫자 몇 개로 표현하지 못한 현실에 놀랐다. 열악했고, 글에 가려져 보지 못한 부분을 인터뷰를 통해 알아갔다. 운영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로 받아 적기에 바빴다. 교수님은 현장을 나섰고, 난 뒤따르며 실무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에 내가 하고 있던 연구분야와 업체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운영하시는 분들이 궁금한 점 여럿 물어보셨다. 교수님의 엄정한 훈련 덕분인지, 질문에 어려움 없이 답했다. 그들의 고민이 평소해 하던 고민이기도 하고, 교수님이 매섭게 하던 질문이기도 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일정이 끝나 차로 돌아갔다. 교수님이 물으셨다. "무슨 이야기했니?" 나눴던 이야기를 짧게 줄여 말하는 내내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잠시 옅은 웃음도 섞으셨다. 훈련의 결과가 나쁘지 않다는 점검을 하셨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신다. 잠시 고민하시고 말을 시작하셨다. "잘했다. 다음부터는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 정당한 가치를 받고 말해야지. 나한테 혼나고, 하루에 12~13시간씩 공부하고 실험한 지식을 막 주면 안 되는 거야. 네 말에 가치는 네가 만드는 일로 시작한단다." 배움 노트에 교수님의 말이 새겨졌다.
"저작권은 존중과 합의라는 양분을 먹고 자란다."
미국 초대 국무장관이자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새로워져야 한다. 피는 즉 자유의 천연적인 거름이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저작권의 나무는 때때로 존중과 합의의 양분을 먹고 자라난다. 존중과 합의가 저작권의 천연적인 거름이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넣어 작품에 대한 창작을 자신이 했다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 있지만, 본격적인 저작권에 대한 개념은 출판 인쇄술이 보급되고 난 뒤부터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영국에서 국내법으로 저작물을 보호했다. 기술이 발전하더니, 정보 전파 속도는 빨라졌고, 넓어졌다. 국가 하나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섰다. 베른협약과 지적소유권협정을 통해 저작권 보호는 나라와 나라를 넘나들며 확장되었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존재를 뒤러처럼 세상에 보여주는 일이고, 정당한 대가를 받으므로 다음 작품을 만드는 디딤돌이 된다. 이때 존중이라는 비료가 필요하다. 작품을 만들어낼 때의 고통에 대한 존중과 보호다. 끝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모든 사항에 대하여 저작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제한한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창작에 대한 자유는 숨이 막힐 듯 멈추게 되고,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제약이 될 테다. 이때는 합의라는 또 다른 비료가 필요하다. 공유를 허용하고, 확대 생산할 수 있는 기회가 또 다른 문화를 만드는 가능성을 마련해야만 한다.
"지금 바로 여기."
학교에 거의 다다르고, 돌고 돌던 이야기는 차를 타기 전으로 돌아갔다. "다만, 배움을 나누는 일에는 머뭇거리면 안 된다. 배울 때 받은 혜택을 많은 이들에게 나눠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주저하지 마." 교수님 말씀에 어리둥절했다. 고민하는 내 모습에 뿌듯하셨는지 저녁을 먹으러 가자며 유쾌하게 웃으셨다. 언제 말해야 하고, 언제 말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했다. 세상에 흑과 백처럼 뚜렷하게 나눠지는 일이 몇 가지나 있을까? 그러기에 도제 교육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믿음이 생겼다. 경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우린 말하고 멈추기를 선택해야 될 테다. 스승님은 처음에 존중을 말씀하셨다. 스스로가 찾아낸 지식을 대접하고, 보호하라는 말. 정당한 대가에 따라 가치를 증명받으라는 당부다. 다음은 공유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이롭게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확대 재생산하라는 부탁이셨다. 여전히 어렵다. 오래도록 공구하며 나만의 답을 찾아낼 테다. 작은 실천부터 해본다. 시간과 노고가 담긴 작품을 귀하게 여기며 정당한 대가를 치르며 본다. 스승님이 보여주신 가르침이 적힌 배움 노트를 다시 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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