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잘 살아야 된다.
"네가 태어난 날 너희 부모님은 세상을 다 얻었다고."
가끔 찾아보는 영상들이 있다. 수험생 동기 부여 영상이다. 넋 놓고 본다. 화려한 언변에 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생각 없이 보다 보면, 이유가 궁금해진다. 아득히 먼 시간, 이미 수능을 끝낸 나는 왜 보고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본다. 어려운 시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힘든 시기를 이겨나게 해준 말로 오늘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은 아닐까? 무척 힘들었다. 비슷한 시대에 태어난 모든 이들을 경쟁상대로 느낀다. 함께 해야 한 친구는 흐릿해지고, 경쟁만 남게 된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 항로가 결정되는 건 아닌지 두렵다. 내가 간 대학이 곧 내 등급이 된다. 소처럼 평생 바꾸지 못할 귀표가 붙을 시험에 무서워진다. 그때, 선생님들이 하는 말에 힘을 내고, 주저앉아있다 일어선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양도, 대상도 변했지만, 여전히 섬뜩하다. 특히 자주 보는 영상이 있다. 수학 1타 강사가 재수생을 대상으로 말하는 모양이다. 고등학교 3학년을 연장한 이들. 거기다 생에 초기, 소중한 1년을 태워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를 위해 달린다. 친구들은 대학생으로 훨훨 날아가고, 자신은 멈춰있다는 생각에 쪼그라들고 있던 모양이다. 그들의 두려움이 선생님에게 전달된 모양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말하곤 소리친다. "너 태어나는 날! 너희 아버지는 무엇을 얻었다고? 세상을 얻었다고 생각하셨다고. 농담이 아니야. 나도 내 자식이 태어난 날. 세상을 다 얻은 줄 알았어!"
살다 보면, 정말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있고, 반복되니 지겹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실패에 내 탓을 하며, 다시 시도에 의미를 찾다가 포기한다. 이런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배우로 성장한 이가 고난의 시간을 지내며 "내 인생이 점점 버라이어티해지는 군. 얼마나 잘되려고 이럴까? 에피소드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지 뭐."라는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페르시아 지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우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왕이 명령한다. "날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똑똑한 왕자가 잠시 고민하다 쓴다. "이것 또한 지나 가리라." 만능 문장에 오늘을 견디기도 한다. 생각으로 버티다 버티다 안 될 때가 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라는 생각이 덮어버린다. 그때, 떠올릴 최후의 문장이 1타 강사의 일갈이 된다. 난 누군가에 기적이다. 내가 태어난 날 우리 부모님은 세상을 얻으셨을까?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내가 태어났다. 내가 실패로 스스로를 깎아 먹어 한 톨도 남지 않아도, 난 부모님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존재라는 생각에 울컥한다. 부모님에게 나는 고작 20대, 30대 몇 번의 좌절로 나를 흠집조차 낼 수 없이 단단하다.
궁금하다. 부모님은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간단하다. 전화를 걸어 여쭤보면 된다. 기적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너한테 하는지 아니, 너는 기적을 알라고, 너는 매번 기적을 살라고. 내 인생은 험하고 아프기도 했지만 내게도 한순간 축복이 왔어. 엄마랑 밥 한 끼 먹는 거. 그 흔한 게 얼마나 기적적인지 이제는 알아."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지음, page 184) 날 세상이라고 생각한 순간을 겪은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 있는 기적을 살 고 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오직 내 편을 전화 한 통이면 연결할 수 있다. 전화를 건다. 그들에게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어 본다. 늘 받기만 한 자식이라 죄송하지만, 오늘을 살기 위해 난 여전히 부모님이 필요하다. 그들의 실오라기를 잡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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