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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아버지가 거친 욕을 하신 까닭.

가족은 언제나 내편.

by Starry Garden
아버지가 거친 욕을 하신 까닭.


인상 깊은 책이 있다. 재독이 아니라 삼독 사독까지 할 책인『팩트풀니스』다. 우리가 얼마나 세상을 왜곡해서 보고 있는지 깨닫게 해 줬다. 세계를 보는 새로운 안경을 껴, 눈을 뜨게 해 준 책이다. 막연하게 세상은 점점 나빠진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 굶어 죽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전쟁은 잦게 일어난다. 정말일까? 아니다. 점점 많은 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고, 예방접종을 맞고 있다. 전쟁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유아 사망률도 감소하고 있다. 통계로, 숫자로 보여주니 착각이 와르르 무너졌다. 한스 로슬링 선생님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럼에도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면 믿기 어려운 순간을 종종 마주한다. 여전히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세상은 이렇다'는 사실을 배우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안간힘을 써 버티고 있으면서 인정하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기 일쑤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동생이 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반려견인 희망이가 반갑다 하지만, 반응이 시원찮다. 눈은 쑥 하고 들어가 초췌해 보였고, 입은 달싹거렸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자기 방으로 휙 들어간다. 이내 나오더니 밥을 먹는다. 힘겨워 보이는 모습과 달리 전투적으로 식사를 한다. 에너지가 수혈되고 난 다음 비로소 입을 뗀다. 청중은 나, 아버지, 어머니. 그가 일하는 곳은 카페다. 넓은 주자창을 가졌고, 매일 빵을 굽는다. 신선한 디저트가 있으니 시내와 조금 거리가 있지만 찾아드는 이들이 많다. 가격도 합리적, 아니 저렴해 찾는 이들이 많다. 자리에 한계가 있는데 사람들은 몰려든다. 테이블이 비워지면 잽싸게 가서 치워야 다른 사람들이 앉는다. 쉴 틈이 없다. 손님이 남긴 흔적을 기계처럼 지운다. 자리를 닦고, 흐른 쓰레기는 없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다음 분이 앉을자리를 마련하고 쿠션을 바로 잡는다. 그럼 손님맞이 끝. 어디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문제없는 일련의 행동에서 진상은 문제를 찾는다. 진상은 창의적으로 이기적이고, 독창적으로 오만하다. 40대 배불뚝이 남자가 동생을 향해 각진 기분을 실어 부른다. 지금부터 이 사람을 배진상이라고 부르자. "저기요." 문장을 다 말하지 않아도 진상에게는 냄새가 난다. "내가 빵 자르고 먹으려고 하는데 먼지를 털면 어떡해요? 생각이 있어요 없어요." 우선 알아야 할 점이 있다. 동생이 정리한 자리와 배진상은 목소리를 크게 해야 할 만큼 떨어져 있다. 또, 배진상과 동생 사이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꼭 평소에 지저분 한 사람이 깔끔을 떠는 순간이 있다. 배진상은 바로 여기서 그랬다. 동생은 황당한 표정을 하고 있자, 오만한 그는 눈빛을 날린다. 아마 '왜 내가 화가 났는데, 저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지? 저 반항적인 눈빛은 뭐야? 내가 돈을 지불했는데, 서비스 제공이 별로지?'라는 생각을 담아 한 참을 봤다고 한다. 주문이 밀린 탓에 동생은 별다른 항의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일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일하느라, 생각이 멈췄다. 퇴근하고 생각 재생된 모양이다. 잠자던 화가 불타올랐다. 이야기를 듣고 내가 먼저 한 마디 하려고 하던 차. 아버지가 먼저 찰진 욕을 쏟아냈다. "XXX네 미친 X" 듣던 희망 이만 놀랐다. 청중들 모두 황당했다. 발음, 속도, 강도 모두 완전한 욕에 우린 잠시 멍해있다가 정신이 돌아오고는 빵 터졌다. 한 참을 웃고는 동생이 말했다. "아빠 욕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 아빠 욕이 다 덮었어."

온갖 수모를 겪을 때는 인류애가 상실된다. 다만, 어떤 수모를 겪고 있더라도 쉴 수 있는 집만 있다면 견딜 수 있다. 집은 물리적인 집일 수도 있지만, 가족이 있는 자리가 집이 아닐까? 우린 종종, 아니 자주 치이며 산다. 수십 년 동안 다르게 산 이들이 만나 어떻게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을까? 거기다, 각자 생각하는 상식과 도덕은 판이하게 다르다. 배진상은 눈빛으로 한참 동생에게 욕한 일이 정의이고, 상식이며, 도덕일 테다. 어쩔 수 없지만, 그들과 살아야 한다. 수모로 샤워를 하고, 인류애를 잃어버리고 나서 필요한 건 가족이다. 혈연으로 엮인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든 내 편을 들어주는 이가 가족이고, 그들이 있는 곳이 집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시원한 욕 한 마디는 믿음의 표현이다. 강한 힘은 수모를 가뿐하게 덮어 버리고, 마치 없었던 일인 양 되어 버린다. 어떤 모욕도, 어떤 불합리도, 어떤 수모도 내 편 하나만 있으면 된다. 딛고 일어서는 데에는 큰 돌이 필요하지 않다. 한 명의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자주 디디고만 일어섰다. 조건 없는 디딤돌이 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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