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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보는 이유.

어깨 으쓱 한 번 하려고요.

by Starry Garden
오래된 시트콤을 보는 이유.


밥친구가 있다.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줄여서 웬그막. 예전에는 <순풍산부인과>를 보다 이제는 넷플릭스에 있는 웬그막을 정주행 하고 있다. 25분 정도로 짧아 밥을 준비하고 먹으면 두 개가 뚝딱이다. 최근에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시트콤이 없다 보니 옛날 시트콤에 의지를 한다. 눈치 없고 식탐 많은 노주현 (노주현 扮). 놀부라는 별명처럼 온갖 심술을 부리는 노구 (신구 扮), 작디작은 일에 쉽게 삐치시는 노홍렬 (이홍렬 扮). 가족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 그럼에도 가족이라고 묶여 산다. 보다 보니 재미있는 점이 있다. 어떤 큰일이 있다 하더라고 다음 화로 넘어가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간다. 노주현이 보증을 잘못 서서 빚이 생겨도 화를 내는 그 이야기가 끝나면 끝이다. 노주현 아들인 노영삼이 전교 꼴찌를 해도, 친구와 다투다 어머니가 불려 가도, 장난치다 창문을 깨뜨려 먹어도 다음 화로 넘어가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밥을 먹고 일상을 살아간다. "매일매일을 미국 인기 시트콤의 주인공이라고 상상하며 살아라. 실수를 했다면, 어딘가에서 날 찍고 있는 가상의 카메라를 향해 입을 내밀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 그걸로 끝이다. 한 화가 끝나면 모든 것이 리셋되고 다음 화가 시작되듯이 엉망진창인 오늘도 끝나면 내일이 된다." (<비눗방울 퐁> page 201) 매일을 시트콤처럼 살고 싶어진다. 얼마 살지 않았지만, 살다 보면 참 마음처럼 안 되는 게 삶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온 신경을 써서 한 일이 망가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작은 좌절을 하거나, 일이 망가지며 낙담한다. "연필심이 뚝 부러졌다. 심이 너무 많이 드러나도록 연필을 깎아 둔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힘을 세게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부주의하지 않았고 경솔하지 않았는데 망가지는 일들이 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귤의 맛> page 37) 운이 없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때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잦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쉽게 볼 수 있다. 반대 경우도 잦다. 정말 열심히 노력한 이들이 실패로 좌절하고, 로또를 구매하는 아주 작은 노력을 했지만 엄청난 큰 성공을 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를 조망할 필요도 없다. 그럼 누군가는 이야기할 테다. "길게 보면 모른다." 길게 볼 수 없어 모르겠다. 농경 사회에서는 세대를 넘어 관찰할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요즘에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에 살고 있으니, 일약 성공을 이룬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굳이 찾지 않는다면 알 수 없다. 간혹 처참하게 실패하는 이들이 있지만, 모두를 보여주지 않으니 '나머지는?'이라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행운처럼 온 기회를 잡아 계속 잘 사는 이들을 본다면, 숱한 노력에도 계속 안 되는 이를 보고 있으면, "길게 보면 모른다"라는 말이 쉬이 나오진 않는다.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적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때 은지는 처음으로 잘못하지 않아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에 영향을 받고 책임을 지고 때로는 해결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도." (<귤의 맛>, page 120)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전생이나 신의 뜻을 가져와야만 설명이 되는 일이 잦다. 거기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들로 억울하게 책임을 져야 하고 온전히 내가 해결할 때면 더 깊은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세상이 '억까'에도 고고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 책을 뒤져보면 마음이 더 아프다. "누구나 그렇듯, 내가 인터뷰한 분들도 유약하고 비루하고 소심한 보통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이 독자에게 공명과 감동을 줬다면, 그건 그들이 불퇴전의 용기와 무오류의 인생역정을 보여주는 위인이어서가 아니라 좌절의 상흔과 일상의 너절함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과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반짝이던 순간>, page 7) 그분들도 평범한 이들이고, 너절한 하루를 견디고 계셨다. 나와 별다를 일 없이, 자신이 하지 않은 일들에 책임을 지고, 때때로 불행을 견디 산다. 그럼에도 그분들을 돌아보는 이유는 바로 "세상에 대한 낙관과 사람에 대한 희망"이라는 거창한 뜻 때문에 대단해 보인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게 그분들처럼 희망이나 낙관을 이야기하긴 어렵다. 거대한 뜻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린다. '하루를 잘 지내자.' 내 의지, 내 경솔, 내 힘과는 관계없이 연필심이 뚝하고 부러진 날도, 내 잘못이 없지만 책임을 진 날도,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 동분서주한 날도, 지내야 한다. 쉽지 않은 날을 견딜 때, 시트콤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 삶을 지키는 문장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어려운 일을 주문하지 않는다. 굴곡 있는 삶이지만 결국 난 평범한 미래에 도착해 있으리라는 믿음처럼, 하루를 견디는 생각이 필요하다. 나를 지켜주는 문장이 여럿이면 어려움이 그 문장을 다 건너오지 못한다. 어디에 선가는 걸려 하루를, 지금을, 현재를 지낼 수 있게 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억울할 때, 어깨를 으쓱하자.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이야기를 그려나가자. 그럼 우리 삶이라는 시트콤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엮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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