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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 아이 안녕하신가요?"

마음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by Starry Garden
"당신의 마음 아이 안녕하신가요?"


소설에 빠졌다. 장편소설은 최소 10만 자, 200자 원고지 1,000매 이상의 분량이다. 숱한 문단 속에서 마음에 걸린 문장은 줄을 긋고, 아쉬우면 태그를 붙이며, 그래도 아까울 때는 필사를 한다. 귀하게 걸러낸 문장은 힘이 된다. 특히, 글이 써지지 않을 때나 무기력할 때 좋다. 천천히 읽어가다 눈에 띄는 짤막한 문장이 있다. "독고 씨, 먼저 스스로를 도우세요." (<불편한 편의점>, page 38). 불편한 편의점의 주인공인 독고씨에게 염여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스스로를 돕는다. 나는 나를 돕고 있을까? 우린 가끔 힘든 시간을 보낸다. 볼 수도 없는 마음에 진물이 뚝뚝 떨어진다. 표현하기도 어렵다. 인간이 쓰는 언어의 한계인지, 표현하는 힘이 부족한 내 탓인지 분간이 안 간다. 이유를 알면 다행이다. 원인을 제거하거나,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내 생각이라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유조차 알 수 없을 때다. 돕고 싶지만,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까마득할 때가 종종 찾아든다. "때로는 뭔지도 모르지만 그냥 일단 토닥여줘야 될 때도 있습니다. 혹은 아예 토닥일 생각도 말고 못 본 척 질끈 눈 감아 버리고 귀도 닫고 그이에 온전한 시간과 공간을 내어줘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page 241) 토닥여주는 사람 곁에서 회복하거나, 나만의 온전한 시간으로 일어설 수 있다. 물론 필요하다. 함께 있어주는 분에게는 감사하다. 다만, 그때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 힘듦, 무기력, 두려움, 수치가 퇴적되어 있다 순간 부유하곤 한다. 무엇을 해도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끝없는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애써 외면하려고 해도 아픔이 존재감을 보이며 나타날 때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문장을 모아둔 다음 장에는 지그시 눌러쓴 문장이 있다. "친구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큰 위기를 많이 겪어보니 그 위기가 닥쳤을 대 결국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었다." (<3번의 퇴사, 4번의 입사>, page 217) 결국에는 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이 나를 도울 수 있다.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결국 많은 경우 대다수의 문제들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셈이지요. 그래서 내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다른 이보다, 어느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요." (<내 마음 다친 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page 21)에서 불현듯 깨닫게 된다. 관계는 항상 바깥쪽으로 향해 있었다. 타인의 생각, 타인의 행동에 따라 관계가 형성이 되는 줄만 알았다. 아니다. 시작은 나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것도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탓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정작 나에게 소홀하다. 나를 아는 일부터다. 이제는 어떻게가 중요하다. <내 마음 다친 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에는 방법이 나온다. 우선 기억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을 떠올려보자. "따스한 햇살 아래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걷던 생각." "중요한 발표를 준비했지만 떨었던 장면." 기억은 혼자 오지 않는다. 감정과 함께 다닌다. 어머니와 함께 걸으며 즐겁고, 기대라는 감정이 딸려오고, 중요한 발표에서는 긴장과 잘못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이 동반된다. 생생하다. 눈을 감고 깊게 생각하고 있으면 그 장면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게 된다. 이는 느낌이 아니라 '뇌' 덕분이다. "뇌의 감정 기관인 편도체는 감정에 시간 개념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즉,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란’다면 그것은 그저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금의 감정인 것이죠. 그렇게 과거로 치부해 온 감정의 덩어리들은 어느 순간 커다란 눈덩이가 되고, 결국 현재의 나를 짓누르게 되는 겁니다." (<내 마음 다친 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page 31).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감정 찌꺼기들이 거기다, 불필요한 기억들이 지금의 나, 현재의 나를 짓누르고 있는 탓이다. 가벼운 눈이라 착각하고 그대로 둔 눈이 시간이 지나 막대한 무게가 되더니 나를 짓누른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건, 겉에서 보기에는 어른인 나지만 사실 마음 깊이 숨어 있는 아이다. 마음아이.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 쓰라린 아픔을 품고 있다. 책은 친절하게 마음아이를 돌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감정표에서 그때 느낀 감정에 맞는 단어를 고른다. 다음에 아이와 만나야 한다. 성장한 내가 아픔이 있던 장면으로 돌아가 아이에게 하고픈 말을 하고,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 준다. 내게 욕하던 사람은 사과를 시키고, 날 수치스럽게 하던 친구에게 불리한 상황을 선사하기도 한다. 안다. 상상으로 고정된 사실을 바꿀 수 있냐고. 그럼에도 아이에게 변한 상황을 자꾸 보여줘야 한다. 멈춰있는 장면에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장면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은 내게 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마음아이에게 안겨 주고, 마음에 들어 하는지 잘 들여다봅시다. 늘 중요한 건, 그래서 마음아이가 괜찮은가니까요. 속이 한결 나아졌다면, 성공입니다." (<내 마음 다친 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page 149). 다친 마음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먼저 안아주는 일이 된다. 감정표에서 찾은 단어는 하나씩 풀어진다. 어깨를 누르던 눈을 털어낸다. 단박에 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한 나를 나는 안다. 천천히 빈칸을 채워나가면 조금씩 마음아이를 돌보는 과정을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생각도 행동도 궤도 수정을 해봐. 긍정적으로다가. 아까 말했지만 아저씨도 진짜 답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거든. 그런데 책을 읽고 꿈이 생기고 그래서 그거에 매진하게 됐다고. 지금은 잠깐 불시착이지만 말이야, 언젠가 내 꿈의 무대에 서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고." <불편한 편의점 2>, page 143) 같은 아픔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매번 같은 행동을 하며 다른 결과나 나오는 기대는 어리석다. 변화를 위한 시작은 마음아이를 돌보는 일 부터다. 아팠던 청소년 때의 나든, 그보다 어린 시절 가족 때문에 고통받았던 아이든 내가 먼저 찾고, 돌봐야 한다. 힘든 오늘에서 언젠가 날아오르는 기회를 선사하는 도약이 바로 나를 알아가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테다. 꾹꾹 눌러쓴 문장 산책을 마친다. 힘이 선물처럼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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