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살아가는 것.
행복을 찍는 왕자 사진관입니다.
음식은 분위기와 사람이 전부다.
음식 맛은 30%는 분위기, 40%는 함께 먹는 사람, 30%는 요리사의 솜씨가 아닐까? 김밥을 한 줄 먹더라도 사랑하는 이와 한강에서 노을을 보며 먹으면 맛있다. 단연코 허겁지겁 혼자 편의점에 앉아서 먹는 맛과는 다를 테다. 여행을 떠나서 먹는 음식이 맛있고,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이미 70%가 높게 충족된 덕분이다. 좋은 분들과 선선한 야외에서 신선한 야채를 곁들인 삼겹살, 붉게 익은 새우는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정말 맛있으면 말이 없어진다. 인간의 언어다 얼마나 한계가 명확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침묵의 길이와 맛은 비례한다. 그렇게 몇 분은 침묵이 도도하게 흘렀다. 먹다 정신을 차렸다. 맛있다는 말을 연거푸 쏟아냈다. 맛으로 몸을 한가득 채우고 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시티 투어 아니고 읍내 투어
아버님 냉장고도 채워드리고, 머물 때 먹고 싶을 것들을 사야 해서 길을 나섰다. 새벽에 출발한 덕분인지 오후 1시가 막 지나고 있었던 참이었다. 시골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읍내로 나가는 길이 설렜다. 매일 보던 프랜차이즈 카페도 반갑고, 커다란 대형 마트는 없지만 지역 마트도 반가웠다. 후다닥 마트로 들어갔다. 카트를 가득 채우고도 아쉬웠다. 집을 무료로 제공해 주신 아버님께 드릴 게 없는지 고민하다 낙찰된 품목이 있었다. '막걸리'. 농사가 바쁜 기간이라 야외 활동도 잦고, 새참을 먹으며 한 잔으로도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술. 20병 한 박스를 샀다. 묵직한 물건을 차 트렁크에 채웠다. 한가하게 걷고 두리번 거리며 나만의 속도로 걸었다. 읍내 투어의 진정한 이유를 달성하러 길을 나섰다.
행복을 찍는 왕자 사진관입니다.
사진을 영어로 하면 'Photography'다. 어원을 따져보면, phos는 빛과 graphos는 쓰다, 새기다를 합성해 만든 단어다. 과학으로 따져보면, 물체에서 반사된 빛을 필름이나 디지털 신호로 적어둔 기록지 라고 할 수 있다. 순간을 적어두는 사진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완전히 잊고 있지만, 사진을 보면 우린 이야기가 재생되고, 감정이 상영된다. 시공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매체다. 요즘에는 대부분 사진 파일로 가지고 있지만, 실물로 없는 지라 소중함이 덜하곤 한다. 깡촌캉스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진관에서 찍기로 했다. 빛으로 흘러가는 순간을 기록해 두고 언제든지 꺼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검색하니 사진관 두 개가 나왔다. 고민 한 톨도 필요 없었다. 왕자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 찍으러 왔어요? 조금 뒤에 오실 수 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이 안경 위로 우리를 보시며 말하셨다. 비슷한 생각을 한 이들이 먼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네"라는 답을 하곤 우린 읍내를 거닐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지금 이 순간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까? 골똘히 생각했다. 한 바퀴 정도 돌고 다시 방문한 왕자 사진관. 촬영장소는 위라고 하며 따라오라고 하신다. '삐걱삐걱'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벽 면이 사진으로 빼곡하다. 준비를 할 테니 기다려달라는 말에 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결혼이라는 가장 행복한 빛. 군대를 제대하고 의기양양한 빛. 오랜 시간을 함께 견딘 부부의 빛. 한바탕 소풍을 끝내고 가신 분의 빛이 내린다. "이제 찍읍시다." 마음으로 쏟아진 빛을 털어내곤 촬영을 시작했다. "찰칵찰칵" 우리의 행복 빛이 기록되었다.
살아가는 이유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몇 해 살지 못했지만, 고된 날들이 있다. 잘하고 싶은 의지와 현실의 실력 격차에 좌절하기도 하고, 이유도 없이 당하는 일들에 무릎이 꺾인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작아지도 못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덮친다. 이유를 찾다 찾다 찾지 못해 돌아오는 곳이 바로 나 자신이다. 누군가 잘못했다 지적하지 않아도 스스로 착실하게 자책하는 날들도 있다. 피할 수도 없다. 스스로가 하는 일이라 멈추는 일도 쉽지 않다. 그때 필요한 건 가느다란 빛 한 줄기다. 왕자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 내게는 어두운 길로 갈 때, 돌아오는 길을 안내하는 빛처럼 보인다. 살아가는 이유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번쩍거리는 좋은 차가 없어도, 넓은 집이 없어도 된다(물론 있으면 좋지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작은 이유다. 하루를 견디고, 1년을 살게 한다. 고단한 하루가 연속되고,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은 터널에 있더라도, 또다시 살아갈 빛을 한 줄기 한 줄기 모으며 살면 된다. 좋아하는 사람과 가볍게 한 끼 먹고, 좋아하는 장소에서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 읽고, 더위가 가신 저녁에는 시원한 호수를 걷고. 모두가 빛이다. 작디작은 빛을 모아 사는 게 삶이다.
다만 살아가는 것.
사진을 찍고 시시덕거리며 한 장씩 나눠 가졌다. "이건 아버님 드리고, 이건 어머니 드리자." 웃음이 끊어지질 않았다. '표정이 왜 이러냐.', '고개 돌리니까 오히려 좋다.', '다음에도 찍자.' 선명하게 오늘을 기억하고 싶다. 훗날 어떻게 해석될지 모르겠다. 지금 순간을 잊기 전에 기록하고, 기록하며 추억해 본다. 살아가다 힘겨운 날이 온다면 돌아서서 지금 빛을 쬐며 다만 살아가고 싶다. 그날의 빛이 또 하루를 살게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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