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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하루를 길게 보내는 방법.

소중한 이들과 함께 보내기.

by Starry Garden
하루를 길게 보내는 방법.


하루를 길게 보내는 방법.

사진을 받아 들고 두 손에는 치킨을 쥐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 시작한 하루라 아직도 오후 4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으니 12시간은 족히 깨어있고, 아직 해도 지지 않았으니 하루가 길게 남았다. 여전히 활동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는 일이 즐겁기까지 했다. "노새노새 젊어서 노새"라는 말이 떠오른다. 의지는 맑았지만, 몸은 고되었는지 눈은 스스륵 감겼다. 옛날에는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았나 싶었지만, 다 사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아버님이 능숙한 솜씨로 문을 여신다. 고요하던 공기가 길이 난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베개에 머리가 닿자 정신이 바람 따라 떠났다. '부스럭부스럭' 시계를 보니 1시간은 잤다. 고요한 바람 덕분인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인지, 낮잠을 푹잤다. 휴대전화 급속 충전으로 몸을 회복하니 다음 일정을 찾았다. 아직도 5시밖에 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한다. 진짜 일까? 반은 맞고 반은 그르다. 청소를 맡기고, 운전을 대리하고, 음식을 사 먹고, 쇼핑을 대신해 줄 수 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일 몇몇은 다른 사람의 시간으로 메꿀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필요 없는 활동을 제거한다면 꽤 긴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하나 더해서 시간의 밀도를 높이는 일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예를 들어, 의미 없는 영상을 보기보다는 깊은 의미를 내어놓는 영화를 보거나, 가십이 가득한 글을 읽기보다는 고전으로 묶여있는 책을 읽거나, 가볍기만 한 관계보다는 귀한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의미를 짚어내고, 고전의 질문을 생각하고, 소중한 이들과 추억을 만드는 일이 흘러가는 시간의 꽉 눌러 내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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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낙안읍성 가자.

"내일은 낙안읍성 가자." 밀도 높은 하루의 끝을 치킨과 밤하늘로 맺어 갈 때, 이야기를 꺼냈다. 역사를 즐겨 읽는 나에게는 여행지로 박물관이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지역을 찾아가곤 한다. 지역의 기록을 담고 있는 박물관에서는 역사 변화를 보고, 의미를 담고 있는 건축물을 살펴보며 상상을 하게 된다. 몇 백 년 전 여기에 살았던 이들의 분주한 발걸음, 전쟁의 끔찍함을 견딘 나무, 좌절에서 희망을 싹 틔우게 하는 이들의 몸부림까지. 답사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이긴 힘들지만, 책에 담겨 있는 사건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언제나 마련한다. 낙안 읍성은 내게 변화와 상상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여행 장소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 탐방을 선선히 승낙해 준 친구들 덕분에 설렘을 한 조각 안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신선한 공기 덕분인지 깊게 잠들었고, 상쾌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갈한 시골 밥상을 준비해 주신 어머니 덕분에 아침부터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나서기 전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원한 물과 우산을 꼭 챙겨가라고 당부하셨다. 고개를 갸웃하고는 챙겨 들고 나섰다. 이른 아침인 덕분인지 주차장도 넉넉했다. 주차를 하고 문을 여는 순간 '헉'소리가 나왔다. 더위가 존재감을 보였다. 어머님, 아버님이 주신 무기로 더위를 밀어냈다. 성곽을 돌며 난 설명을 시작했다. "삼국 시대에 만들어져..." "뭣이 중한데" 하며 한 명은 그네로, 둘은 그늘 아래로 달려갔다. 설명이 무엇이 중요하랴. 말을 거두고 그네를 밀고, 산책을 시작했다. 답사의 한자를 살펴보면, '답'에 '밟다', '디디다'라는 뜻도 있지만, '노닐며 구경하다'는 뜻이 있다. 또 다른 답사를 몸으로 느끼며 시작했다.


읍성보다는 파전.

중국 <<후한서>> <동이열전>에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사람들이 음주가무에 능하다고 했다. 온갖 침략과 정치권력의 이동은 있었을지라도, 사는 사람의 특성을 변하지 않고 내려온 모양이다. 쉬다 걷다를 반복하다 고소한 냄새에 시선을 돌렸다. 음식점이 줄지어 서있다. 우린 바로 눈을 반짝이며 메뉴판을 훑어봤다. 노릇하게 구워진 파전이 보인다. 음주가무의 민족의 피를 받은 우리는 눈빛 교환을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파전을 지불한 사람 선정하는 게임을 찾았다. 바로 투호놀이. 즉각 편이 갈라졌고 놀이라는 이름아래에 감춰진 사투가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화살을 10발. 어느 때 보다 집중하고 던지길 반복했다. 멀리 떨어지던 화살을 서로 길을 찾아가기 시작하더니, 아깝게 빗나갔다. 3발이 남았을 때까지 누구도 통에 화살을 넣지 못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마침내 한 발을 넣고는 끝났다. 까르르 웃으며, 우린 파전집으로 향했다.


그늘에 들어가니 삐질거리며 흘렀던 땀이 사라졌다. 이내 구수한 냄새의 파전이 도착하자, 친구들은 눈빛을 다시 한 번 교환한다. 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는 말에 모두들 동의하고 주문했다(운전을 해야 하는 나는 제외되기도 했고, 술을 하지 않기에 선선히 그들에게 술을 권했다). 죽이 척척 맞는다는 말이 여기에 딱 하고 어울렸다. 사극에 나오는 장면처럼 "크~~" 소리를 내며 시원한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는 찢어 놓은 파전을 털어 넣는다. 몇 번의 "크"와 우적거리는 일이 반복되니 모두 사라졌다. 시간은 기억을 퇴색케 한다. 추억이 되기도 하고 잊기도 한다. 낙안 읍성의 역사도, 문화유산의 기억은 잃어버릴 수 있지만, 기름진 파전을 잊지 않고 새로운 색으로 덮인 체 추억으로 변해 내 곁에 남을 것 같았다. 훌훌 털고 일어났다. 여전히 해는 떠있고, 우린 여전히 여행 중이었다.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행복한 고민으로 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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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길게 보내는 법.

시간은 어떤 감정도 없이 흘러간다. 함께 철 없이 놀던 친구들은 각자 자리에서 한 사람 몫을 당당히 해내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며 살아간다. 당장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에 놀란다. 이들과 놀던 때가 아득한 시간 너머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당황스럽다. 흘러가는 시간을 잡겠다는 허망한 생각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 지금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망상의 이유가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덕분은 아닐까? 여행을 하며, 긴 하루를 보냈다. 곰곰이 따져보니, 삶을 길게 보내는 힌트를 얻었다. 좋은 사람과 일찍 일어나 맛있는 걸 먹고,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 이 모든 일이 하루를 길게 보내고, 오래도록 추억을 남기며 결국에는 삶을 길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다. 그날 하루에 충실하게 지내는 것. 밀도 높은 하루를 쌓아 내 삶을 만드는 것. 여행은 단순히 놀러 가는 일이 아니라, 소중한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 리라를 생각의 싹이 뽈록 피어난다. 여행이 끝나간다. 내일이면 일상으로 복귀한다. 모든 일에 아쉬움을 남기겠지만 소중한 기억 하나 저장해둔다. 귀한 이들과 맛난 음식을 먹는 일을 무엇보다 우선하고 뒤로 미루지 않고, 기회가 닿기만 한다면 하리라는 다짐을 홀로한다. 긴 삶을 보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깡촌캉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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