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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책친자는 싱가포르에서도 서점을 찾습니다.

by Starry Garden
책친자는 싱가포르에서도 서점을 찾습니다.


당나귀는 여행을 해도 당나귀다.

휴가. [명사] 직장ㆍ학교ㆍ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

여행. [명사]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두 단어는 설렌다. 휴가는 시간의 자유이고, 여행은 공간의 확장을 준다. 모두들 출근하는 순간 쉰다는 생각에 짜릿하다. 매일 보던 풍경을 떠나 신선한 공간을 거니는 건 재미를 만드는 일이다. 휴가와 여행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분의 말씀이 있다.

"당나귀는 여행을 해도 당나귀다."

오금이 저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당나귀가 본다고 해서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한계는 명확하다. 시간의 자유를 내어 확장할 공간은 싱가포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짚어보게 된다. 역사를 살폈다. 싱가포르는 무역의 중심지다. 인도에서 흘러들어오는 물품, 중국에서 쏟아지는 물건을 교환하기 딱이다. 싱가포르에 아랍스트리트가 있는 건 이슬람 상인 덕분이고, 차이나 타운이 자리 잡고 있는 건 중국 상인 덕분이다. 이들 문화는 교묘히 엮인다. 몇 번의 부침으로 싱가포르는 독립을 당했다. 작은 나라가 살 방법은 몇 없었다. 생존을 위하 엄격한 규율을 만들고, 외국 자본을 유치했다. 지정학적 위치는 여전했고, 자유로운 투자는 혁신을 낳았다. 그렇게 지금의 싱가포르가 만들어졌다.

책 몇 줄 읽고, 영상 몇 편을 본다고 나라를 다 알 수 없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며칠 그곳에 머물러 다고 알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똑똑한 당나귀가 되려 찾아보고 정리를 하니 가고픈 곳이 생겼다.


책친자는 싱가포르에서도 서점을 찾습니다.

여행을 가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서점을 찾는다. 대형 서점보다는 작은 서점을 찾는다. 지역 고유의 색과 문화가 융합된 결과를 볼 수 있다. 책은 문화의 기초다. 영화도, 드라마도, 노래도 글이 있다. 책은 다종다양한 문화의 뿌리이니, 서점이 문화의 단면을 보여줄 수도 있기에 찾는다. 싱가포르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3곳을 찾았다.


1. littered with books


따가운 햇볕을 피해 그늘을 찾아다니며 걸었다. 어쩔 수 없을 때는 양산을 피고 걸었다. 여름 싱가포르는 대단했다. 습식 사우나를 걷는 기분이었다. 눈에 띄는 건물. 우리가 갈 독립서점이다. 푸르른 건물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줬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외국인인걸 알아차렸는지 영어로 반긴다. "Hello" 찾는 책이 있는지 물어보는 말에 둘러보겠다고 답했다. 2층도 있다는 말을 남기곤 자기 자리로 갔다. 익숙한 냄새다. 묵은 책의 냄새와 향긋한 새 책의 잉크냄새가 뒤섞여있다. 좋은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휴대전화를 찾다 눈에 들어온 글이 있다. 해석하자면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대전화를 넣었다. SNS가 발달하고 나서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순간에 머물기보다는 사진으로 남기는데 급급하다. 유명한 사람을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렌즈를 건너서 보는 게 익숙한 요즘이다. 객을 밀어내고 주인인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고 했다.

이국적인 곳에서 익숙한 책냄새 속을 거니니 기분이 묘했다. 한국 같기도, 싱가포르 같기도 했다.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친숙한 표지.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다. 반가웠다. 한 참을 뒤적이곤 다시 자리에 넣었다. K문화의 힘이 눈에 서렸다. 짧은 영어로 직원에게 물었다. "베스트셀러 책을 보여줄 수 있어요?" 잠시 고민하더니,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책 한 권을 들고 온다. <head shot> 고맙다고 답하고 바로 구매했다. 영어로 쓰여 있어 암담했지만, 더듬더듬 읽었다.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사고가 난 18세의 복서의 이야기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내용이 짐작되었다. 나서기 위해 문을 열었다. 더위가 훅 끼쳐온다. 가기가 싫다. 책냄새가 발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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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ook bar


책에 더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동생이 독립서점을 운영할 때 항상 하던 고민이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book bar는 새로운 길을 알려줬다. 사진을 찍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익숙한 단어가 보인다. "올데이즈" 낯선 제목이 보인다. "Second Chance". 불편한 편의점이다. 적절한 제목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책이 있기에 구매를 마음먹고는 들어갔다. 달달한 향, 고소한 냄새가 은은하게 난다. 책을 넘어서 보니 안쪽에는 카페가 마련되어 있다. 브런치, 커피가 제공되는 모양이다. 누가 봐도 책방지기(서점을 자주 돌아다니다 보니 예측하는 능력이라고 할까?)와 누가 봐도 단골의 아우라룰 뿜어내는 손님이 이야기를 나눈다.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책을 두고 나누는 수다 같아 보였다 (증거로는 책을 콕콕 찌르며 이야기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눈치만 는다) 읽기 쉬운 동화도 마련되어 있어 잠시 거닐었다. 휴대전화가 쉼 없이 진동한다. 아차! 함께 간 이들이 어디로 갔냐고 언제 오냐는 성화다. 후다닥 나왔다. 아쉬웠다. 무언가 빠진 것처럼 허전했다.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낮게 탄식했다. "Second chance" 안 사 왔다. 여자친구가 낮게 읊조린다. "두 번째 기회가 있겠지." 그녀의 라임에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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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Wardah books


다음날 아랍스트리트를 걷기로 했다. 모스크가 가까 있는 덕분인지 비슷한 복장을 한 분들이 많이 오갔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서점으로 향했다. Wardah book의 Wardah는 장미를 뜻한다고 한다 (당나귀처럼 미리 알지 못했고, 다녀와서 찾아보곤 알게 되었다) 교차 검증은 안 되었지만, 책방 사장님 어머니가 좋아하던 꽃이라고 한다(이것도 여행이 끝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아랍 전문 서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히잡을 쓰고 있는 분이 계산대에 자리를 잡고 계셨고, 가까이서 책을 보니 종교 색이 짙은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내가 살 수 있는 책이 있을까 고민하며 둘러보다 2층으로 향했다. 삐걱삐걱. 서점이 조용한 탓에 발걸음 마저 조심스러웠다. 2층은 다행히 종교과 무관한 책들이 있었다. 여기에도 당당히 한국책을 만났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영어로는 어떤 표현이 있을까? 하며 들었다. 책들의 숲을 한참 산책하고는 내려왔다. 계산을 하려다 머뭇거렸다. 함께한 여자친구에게 계산을 부탁했다. 히잡을 쓴 분은 유쾌한 목소리와 웃음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그 책 한국 책을 번역한 거야. 아니?"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안다고 한글로 읽고 영어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해서 샀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빙긋 웃으며 자리를 피해 줬다. '한국에는 어떤 책이 유명하냐', '이 책은 어느 정도로 재미있냐'며 이야기를 나눴다. 짧은 영어가 아쉬울 정도였다. '좋은 여행이 돼라'는 쾌활한 말을 듣고는 나섰다. 여행의 또 다른 이유를 깨닫게 된다. 편협한 사고를 넓히고, 체험을 통해 선입견을 파괴하는 일. 그렇게 마지막 서점을 뒤로한 채, 더위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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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여행.

여행을 갈 때 굳이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닌다. 시간 틈만 나면 읽어본다. 꽤나 있어 보인다. 있어빌리티의 끝장이다. 다른 이유도 하나 있는데, 낯선 공간에서의 안정감 때문이다. 아무리 먼 이국에 와있다고 해도, 한글로 되어 있는 책을 읽다 보면 한국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듯 미약한 불안이 날아가버린다. 책이라는 물건이 나를 지탱하게 한다. 반대로 마찬가지 아닐까? 일상이 힘들 때,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날 수 없을 때, 추억이 스민 책을 펼쳐보려 한다. 추억이 담긴 책이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때 그 장소로 이끌 것 같다. 힘든 순간을 지탱해 줄 책이 곁에 있다. 언제라도 싱가포르로 떠날 수 있겠다. 비스듬히 의자게 기대어 책방으로 가본다. 점원이 나와 내게 인사하는 것 같다. '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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