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성장을 보는 일이 참 좋더군요.
단골이라 좋은 점은? 할인만이 아닙니다.
미용실 뜨내기 정착하다.
단골집이 있다. 단골 하면 식당이 떠오르지만, 미용실이다. -헤어숍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미용실이라는 말이 더 정감이 간다- 따지고 보니 5 년은 넘었다. 동생이 인연을 맺어줬다. 내 머리카락은 자기주장이 강한 직모다. 조금만 길게 되면, 옆머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보인다. 잔뜩 성질이 난 고슴도치처럼 쭉쭉 뻗는다. 앞머리도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하면 낭패다. 그래서 늘 머리를 짧게 자르고만 다녔다. 그러다 파마에 도전했었다. 머리카락 상황을 모르던 미용사께서-현재 단골 미용실이 아니다. 파마-펌 보다는 파마가 친숙하다-를 해주셨다. 정말 뽀글 뽀글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주장 강하던 머리는 다소곳 해졌지만, 이상한 머리에 친구들은 놀리기 바빴다. 난감한 머리카락 상태를 잘 아는 동생이 추천했던 미용실이 5년째 단골인 이 미용실이다. 원장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다. 자연스러운 커트와 파마를 받았다. 눈을 비비며 거울을 다시 봤다. 모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신 모양이다. 자연스러웠다. 여기저기 뜨내기처럼 다니다 정착했다.
단골의 장점은?
단골의 장점은 여럿이다. 우선 가면 인사를 나눌 분들이 많다. 디자이너 -미용실마다 부르는 말들이 다르다-분들과 인턴 -이 또한 미용실마다 부르는 말이 다르다- 분들이 맞이한다.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한다. 다들 바쁘신 터라 긴 이야기는 못하지만, 한 달 만에 만나 반갑다며 인사를 해주신다. 원장님이 오시기 전 다른 디자이너 분들과 짧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인턴 분께서 마실 음료를 말씀하실 때, 별일 없으셨냐며 말을 건다. 다음 장점은 큰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앉고 길이 정도만 이야기하면 끝이다. 졸며 머리를 끄덕거리고 있다 보면 샴푸를 할 때가 되었다고 날 깨우신다. 안경을 벗은 터라 다 되어도 사실 잘 보이지 않는다. "안경을 쓰시고 보시죠"라는 말에 "안 봐도 잘했을 겁니다."라는 웃음으로 화답한다. 직접 보면? 당연히 잘 돼있다. 나보다 내 머리카락을 더 잘 아시는 분들이다. 정말 큰 장점은 바로 마지막에 있다. 성장을 목격할 수 있다.
성장을 목격할 수 있다는 기회.
미용실이 확장 이전을 했다. 내가 처음 갔을 때보다 더 좋고 주차장도 있는 건물로 갔다. 괜히 내 어깨가 으쓱했다. 여기에 있는 의자 한 귀퉁이는 내가 기여했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이전했을 때 얼마나 축하를 했던지, 가던 길에 있던 꽃집에 가 제2의 개업이라며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 있는데, 바로 인턴에서 디자이너가 되신 분이다. 처음에는 안경을 벗어 잘 보이지 않아, 누가 누군지 몰랐다. 한 참을 다니고 머리를 샴푸 해주시는 분이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용실 초창기에 들어오신 지 얼마 안 되셨다. 모든 이들의 시작은 고생이 동반된다. 짠한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의 일을 열심하는 그분을 응원했다. 지금은 자신의 의자를 가지고 있는 당당한 디자이너가 되셨다. 내가 성장한 것처럼 얼마나 기쁘던지, 요즘은 만날 때마다 바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배시시 나오기까지 한다.
누군가의 성장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내가 자주 가며 좋아하던 자리가 넓어지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이가 성장하는 현장. 그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을 여실히 느낀다.
시간이 만든 관계.
단골은 두 가지 요건이 갖쳐줘 야한다. 손님이 꾸준히 가야 하고, 가게가 계속 있어야만 한다. 가게가 존속된다는 건, 실력이 있다는 방증이다. 가만히 있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부단히 노력하기에 손님을 맞이할 수 있다. 꾸준함이 동반되어야 단골이 비로소 완성이 된다. 종종 아름다운 이야기도 들린다. 20년 넘게 있던 가게의 주인께서 아프셔 문을 닫게 되니, 단골들이 나서서 병원비를 갹출하고 다시 오시길 기원한다. 또 다른 일화도 있다. 한국인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40년 동안 운영하던 샌드위치 가게다. 무려 40년. 브로드웨이 배우들은 가게 마지막날 모여 주인에게 멋들어진 사진을 준비했고,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잠시 거쳐가는 장소지만 시간이 켜켜이 쌓여 관계를 형성한 결과로 보였다. 단순히 서비스를 더 준다고, 할인을 해준다고 단골이 되는 건 아니다. 관계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일이 되기에 단골이 좋다. 머리카락이 눈을 찌른다. 곧 미용실에 갈 때가 된 모양이다. 얇은 시간 한 겹을 쌓으러 가야겠다.
혹시나 궁금해하실까 해서 장소를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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