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입니다.
*리누 작가님의 <올리브 탄피>에 나온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
지금은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돼있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나가다 보면 '애완 용품점'이라고 홍보하는 가게가 보이기도 한다. 애완(愛玩)이라는 한자를 가만히 뜯어보면 무척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愛)와 완(玩)의 뜻은 다음과 같다.
애(愛)
1. 사랑, 자애, 인정
2. 사랑하는 대상
3. 물욕, 탐욕
완(玩)
1. 희롱하다
2. 장난하다
3. 놀다
희롱하거나 장난치며 노는 사랑스러운 대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언어는 때때로 생각을 지배한다. 또는 지배적인 생각이 단어로 뛰어나오기도 한다. 애완이라는 단어가 주로 쓰였던 그 시절에는 함께 지내는 동물을 장난감 정도로 가지고 논 모양이다. 그렇게 그 녀석들은 장난감처럼 다뤄지고, 아프면 고장 난 장난감 버려지듯 파양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반려(伴侶)이라는 말을 쓴다. 두 한자 모두 '짝'을 의미한다. '짝이 되는 친구' 친구는 동등한 관계로 함부로 하지 않는다. 장난감도 아니고, 녀석이 아프거나 힘들 때도 옆에 있으며 함께하는 것이 바로 짝이다. 언어가 강력하게 생각을 지배하면 좋겠다. 반려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금도 무수히 많은 친구들이 유기견 센터로 보내진다. 그중에 또 무수한 친구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강제로.
그 아이들은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지만, 무서워한다. 밥도 잘 먹지 못하고 깨끗한 물도 마시지 못한다. 그렇게 슬픈 삶을 마감한다. 그 친구들은 아마 애완으로 시작된 건 아닐까? 한 생명을 받아 안는 일을 가벼이 생각하고 그저 살아있는 장난감으로 취급하다가 자신이 힘들면 분리수거하듯 버려진 건 아닐까?
애완이 아니다, 반려다. 반려라 생각하면 인연을 맺을 때 무척 고민이 되고, 버려지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짝이 되고 가족이 되었는데, 어떻게 버릴까? (이따금 뉴스에서 보이는 폐륜적인 일들이 있어 이 말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감을 안다. 그 일은 뉴스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가족입니다.
<올리브 탄피>에 나온 애완과 반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이 글을 써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이 되니, 버려진 친구들 소식에 마음이 더 아프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또, 버린 이들에 대한 분노와 버려졌는지 모를 아이들에 대한 슬픔에 마음 한쪽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버린 사람이 돌아올 거라는 믿음에 기다리는 모습에 마음이 아릿해진다.
애완이 아니고 반려임을 모두 알고 있으면 좋겠다. 단어가 우리의 생각을 강력하게 지배했으면 한다. 소중한 생명이고 한번 받아 안았다면, 이제는 가족이 된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데, 우리 집 막둥이 '희망이'가 다가온다.
오늘은 더 꽉 안아주고 싶다.
한 줄 요약: 애완이 아니라 반려입니다. 반려는 곧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