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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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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Nov 04. 2022

서문 시장 수제비 먹다가 생긴 일

몇 백 년 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싸워.

* <'감주'가 '식혜'라고요?>와 같은 날입니다(이 글을 처음으로 보시는 분을 위해 앞부분을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식혜를 한 잔 먹고 난 뒤 식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시장 상인이 다투는 까닭.


어머니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셨다. 하지만 젊은 시절 오래도록 머문 곳은 대구다. 그래서인지 대구를 고향처럼 그리워하신다. 동생이 치아교정 때문에 대구 갈 일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때다 싶어 어머니에게 함께 가자고 하니, 어머니는 오케이를 외친다.


(좌) SRT에서 본 풍경, (중) 서문시장 입구, (우) 동산상가 입구


날씨는 쾌청했고, SRT는 빨랐다. 오랜만에 탄 기차 덕에 여행 기분은 제대로 났다. 두 시간 남짓, 동대구에 도착했다. 바로 우리가 간 곳은 '서문시장'이다.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형성된 시장으로 섬유, 액세서리, 이불, 그릇, 청과, 건어물, 해산물을 취급하는 이른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시장이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고, 잠시 걸었더니 배고팠다. 어머니 안내에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감주가 식혜라고요?>에서 어머니가 안내한 식당입니다). 도착한 곳은 '소문난 이모네 수제비'. 이른 점심시간 덕에 우리는 첫 손님이 되었다. 고추와 수저는 가득했다.


소문난 이모네 수제비


앉자마자 다가온 이모님은 가만히 주문을 기다리셨다. 우리는 칼제비, 수제비, 그리고 비빔국수를 시켰다. 물을 따르며 수저를 놓고 있는데, 부엌(?) 쪽이 시끄럽다. 싸우는 듯한 높은 목소리가 오간다. 가만히 들어보니 가게 간격을 두고 오가는 말싸움이었다.


우리가 수제비를 기다리는 옆 가게 아주머니께서 조금씩 물건을 옮기셨나 보다. 간격을 좁힌 아주머니는 나는 그런 적 없다고 일관하다, 이웃 가게 간에 의가 상한다며 되려 큰소리를 치신다. 언쟁은 언쟁이고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빠르게 나왔다.


수제비와 비빔국수


우리가 밥을 반쯤 먹었을 때까지 그 언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남성 한 명이 오셨다. 언쟁이 멈췄다. 그는 인사를 양쪽에 하곤, 두 분의 이야기를 듣는다. 주머니로 손이 간다. 카우보이가 총을 꺼내 듯 줄자를 꺼내 든다. 줄자를 한번 쭉 빼고는 무릎으로 한번 꺾더니 간격을 잰다. 그렇게 세 번을 이리저리 간격을 측정하곤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양쪽을 보더니 판사처럼 판결을 내린다. "사장님 간격을 좁히셨네. 왜 아니라고 우겨요. 그리고 사장님(소문난 이모네)은 5cm 정도 나온 거예요. 뭘 그렇게 소리를 내요. 간격은 원상 복귀하세요. 오후에 확인하러 옵니다."


판사 같던 남성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부산스럽게 짐을 옮긴다. 순대를 파는 가게 이모님이 싸우던 가게를 보고 소리치신다.


"몇 백 년 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싸워. 화합하며 살아."


몇 백 년 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싸워


뜨거웠던 언쟁은 이제 손님 소리로 바뀌었다. 손님이 가득 차있다. 계산을 하고 나가 시장 안쪽으로 갔다. 북적 거리는 사람 덕에 어머니와 바짝 붙어 다녔다. 액세서리도 사고, 납작 만두도 샀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머물다 나왔다. 아까 수제비 먹었던 곳을 지나쳐 가니, 다투던 두 분이 보인다.


응? 서로 웃으시며, 이야기하신다. 웃음소리가 크게 난다. 화해하신 모양이다. 갑자기 바뀐 공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어머니에게 여쭤봤다.


"두 분 싸운 거 아니에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한 마디 한다.


"가까이 함께하다 보면 부딪치며 서로에게 맞춰가는 거지. 다퉜다고 해도 몇 백 년 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싸워. 화해하면 좋지."



한 줄 요약: 가까운 이들과 다투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화해할 땐 화해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P.S.

얼마 전 다툰 동생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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