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향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ry Garden Nov 03. 2022

'감주'가 '식혜'라고요?

같은 말이라도 때에 따라 다르다.

*제목은 <추자가 호두라고요?>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감주'가 '식혜'라고요?


대구에 갔다. 어머니, 동생 그리고 나. 동생의 교정을 핑계로 어머니를 모시고 짧은 여행을 갔다. SRT를 타고 도착한 곳은 동대구. 다시 온 지 7년. 그곳은 무척 변해있었다. 신세계 백화점이 위풍당당하게 서있고, 공터에는 아파트 단지가 지어져 있다. 동생은 치과에 다녀오고 어머니와 나는 잠시 사찰에 들렸다. 


그리고 다시 만나 우리가 향한 곳은 서문시장이다. 시장 입구는 여전했다. 시끌시끌했고, 친숙한 사투리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온다. 시장을 잠시 거닐었다. 시장에는 먹을거리가 눈과 코를 사로잡았다. 납작 만두와 떡볶이도, 겉바속촉 호떡도,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어묵도. 그중 눈에 띄는 게 있었으니! 바로 '감주'였다.


시장에 걸려있는 감주


어떤 가게에서는 감주와 식혜를 함께 쓰고 어떤 가게에서는 감주만 써놨다. 혹시나 해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감주가 뭔지 알아?" 여자 친구는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알지, 그거 술이잖아." 대구에서는 식혜가 감주라고 하니, 처음 듣는다고 한다. 


동생에게 여자 친구가 감주가 식혜인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동생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해 물어보니, 감주가 술이라고 답한다. 유혹만 하던 음식 향에 배는 꼬르륵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말하지 않아도 표정만으로 우리를 아시는 어머니. 우리를 수제비 집으로 안내했다. 


그곳에 앉으니 이모님이 감주 한 잔씩 주시고 주문을 기다리신다. 달콤한 감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감주이자 식혜


같은 말이라도 때에 따라 다르다.


식혜는 밥과 엿기름으로 삭혀 만든 발효음식이다. 지역에 따라 식혜라고 부르기도 하고 감주라고 하기도 한다. 혼용해서 쓰는 이유는 식혜의 발효 기간을 늘리면 달콤한 맛이 알코올로 바뀌기 때문이다. 또, 간혹 술을 드시지 못하는 조상님을 위한 제사상에는 술 대신 식혜가 올라가기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쓰는 단어도 때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른 뜻을 가진다. 감주는 술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하고, 달달한 식혜가 되기도 한다. 식혜도 모음 하나가 바뀌면 식해로 전혀 다른 음식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단어로 올바른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연함을 전제로 한 대화는 삐걱대기 일쑤다. 지레짐작은 어긋남의 시작이 된다. 


상대를 위한 말과 행동은 아마 사소한 것부터 묻고 맞춰가는 것부터 아닐까. 내게 당연하다고 상대에게도 당연한 건 없으니 말이다. 사소한 것부터 어긋나고, 자주 삐걱거리는 대화에 도착지가 좋을 리가 없다. 도착지에는 오해가 있을 수 있고, 혼선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으며, 왜곡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 


소통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같은 말을 하는지, 같은 뜻을 가진 단어인지, 상대를 위한 배려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같은 말이라도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르다.


주문을 받은 이모님은 감주가 담긴 페트병을 들고 나와 눈을 마주치신다.


"감주 한잔 더 주세요. 맛있습니다."



한 줄 요약: 당연한 건 없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소통을 어렵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