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축한 신뢰를 쓰는 중.
새로운 가족을 맞이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대박 사건, 친구가 딸을 낳았다>에 그 친구입니다). 아이 선물도 주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짧게라도 만나자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약간 핼쑥해진 듯했다. 친구는 가까운 카페로 나를 안내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요구르트를 주문하고 앉았다. 나는 잊기 전 선물을 주고는 요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전셋집 이야기, 직장 이야기가 오간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글을 쓰고 있노라고 말했다(당시 친구 중에 유일하게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아는 친구입니다).
너에 대한 글을 조금은 쓰겠노라고 선언했다.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선선히 승낙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바로 이어 경제 이야기 투자 이야기를 했다. 궁금해 물어봤다.
"부모님도, 여자 친구도 내가 퇴사하고 글을 쓰는데, 아무도 걱정을 안 하더라. 너도 그렇고. 왜 그런 거야?"
친구는 조금 남은 아메리카노를 한 번에 들이켜곤 웃으며 말한다.
"신뢰가 있어서지. 너 지난 10년간 열심히 살았거든, 그 신뢰를 차곡차곡 저축해둔 거야. 그래서 지금 위험해 보이지만, 너의 판단을 믿는 거지. 지금 그 저축한 신뢰를 쓰고 있는 거야."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일어서며 한 마디 한다.
"저축된 신뢰가 무한한 건 아니니, 성과를 보여줘. 사실 걱정 안 된다. 너는 충분히 성과를 보일 테니까."
아내와 아이에게 가야 한다며, 내 잔까지 들어 정리한다. 걸어가는 친구에게 한마디 했다.
"같이 가자"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나를 믿고 있음을 이제 알았다. 내가 내린 판단 믿고 모두가 기다려 주신 거였다. 나를 믿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낯 간지려 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 지금도 속으로만 되뇐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줄 요약: 신뢰는 저축된다. 필요할 때 꺼내 쓰도록 평소에 저축하자.
P.S.
브런치 아이디를 알려 달라는 친구에게 격하게 거절했다. 평소에 나를 잘하는 친구이기에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알려줘야겠다. 그에 대한 글이 3개나 되었으니 말이다.